What's the weather like? (Written by. Cherry)
2018. 7. 26. 18:58
What's the weather like?
w.Cherry
혹시 그거 알아요?
비만 오면 나타나는 게 뭔지.
가끔 동네 사람들 사이에서 수군거리는 말. 바로 ‘비만 오면 나타나는 저택’ 이야기다. 정확히는 ‘보이는’이 맞다. 아무도 그 위치가 어디인지도 궁금해하지도 않지만 (만약 궁금해하면 다치는 걸 본능적으로 느꼈겠지) 그냥 그렇더라 하고 몇 년 전부터 떠돌던 말이다. 누구는 귀신의 집이라고 또 누구는 저주받은 연인이 살고 있다고 하고. 하지만 다 틀렸다. 귀신도 저주받은 연인은 무슨. 대신 저기 햇볕도 잘 들지 않는 숲속 깊은 곳에는 뱀파이어가 살고 있다. 비만 오면 나타나는.
따사로운 여름날의 햇볕이 가득했던 날들은 지나고 공기 중의 가득 찬 습기와 꿉꿉한 하늘이 밤사이 찾아왔다. 일기 예보에선 장마전선이 나타나 긴 기간 동안 이어질 것이라 말하였다.
온종일 밤낮을 가리지 않고 쏟아지는 비 때문에 마을 사람들은 죄다 우산을 쓰고 돌아다니지만 여기 홀딱 젖은 고양이 모습을 하고 거리를 돌아다니는 남자가 있다. ktx를 타고 지나가면서 봐도 이 마을 사람은 아닌 것 같고 길을 잃어버린 듯 터덜터덜 돌아다니고 있다. 거기에 행세는 얼룩이 묻은 셔츠와 찢어진 팬츠까지. 다만 그 속에서 특별함을 찾아본다면 얼굴이다. 얼굴로 먹고사는 일을 하겠다고 어림잡아 짐작할 정도로. 며칠 동안 밤을 지새운 티가 나지만 잘난 본판은 숨기지 못했다. 이미 지친 얼굴로 발 가는 곳으로 몸이 따라가는 것 같았다. 의식은 반쯤 날아간 상태로 말이다.
잠시 해는 갠듯하였으나 다시 빗발이 세차게 쏟아졌고 주변에 상점들로 가득한 거리에서 어느새 푸르른 숲이 드리운 광경이 주변을 메웠다. 도저히 바닥난 체력은 돌아오지를 않았고 몇 끼를 굶다 보니 뱃가죽은 등가죽에 붙기 직전이었다. 태양도 기울기 시작해 어둑해진 주변에 한줄기의 희미한 빛이 보였다. 헛것인지도 모르지만, 지푸라기로 잡는 심정으로 두 발을 이끌고 불빛으로 다가갔다.
턱
뒤에서 누군가가 팔목을 잡더니 그 와중에 곱게 잠겨있던 셔츠의 첫 번째 단추와 두 번째 단추를 풀고 드러난 하얀 목덜미에 이를 콱 박고 흐르는 핏방울까지도 이성이 남아있지 않을 얼굴로 빨아들였다. 마지막 남은 힘으로 걷고 있었으나 생경하고 꽤나 느껴지는 통증에 비 오는 날 슈트를 입고 자신을 흡혈한 사람의 품에 정신을 잃고 쓰러졌다.
제법 피를 마셨는지 생기가 없던 두 눈에 혈색이 감돌자 뒤늦게 자신이 벌려놓은 상황과 창백한 얼굴로 자신의 품에 안긴 사람을 번갈아 바라보며 한 손으로 머리를 쓸어 넘겼다. 물로 다른 한 손으로는 정신을 잃은 이를 단단히 붙잡고 말이다.
“...미치겠네”
*
머리에 감도는 깨질듯한 통증에 눈을 떴다. 끝없는 천장과 고급스러운 외관, 그리고 자신의 몸을 감싼 푹신한 이불까지. 이불을 들쳤더니 며칠을 입었는지 기억도 안 나는 옷 말고 실크로 된 얇은 로브만 걸치고 있었다. 자신이 언제부터 누워있었는지는 모르지만, 이불 속에 파묻혀 처음 보는 광경에 눈을 데굴거리고 있었을 때 끼익- 하고 방문이 열렸다.
“일어났네?”
“...누구세요?”
“이 집 주인.”
자기 소유의 집 같았지만, 한치도 흐트러져있지 않은 모습으로 들어와 침대 옆 협탁에 죽과 미지근한 물을 놓으며 침대 끄트머리에 앉았다. 여전히 가시지 않는 두통에 저도 모르게 미간을 찡그리자 손에 쥐고 있던 따듯한 차를 건네었다.
“제가 왜 여기 있는데요?”
“기억도 안 나나 보네”
“...”
“어제 너 내 집으로 오려 했지?”
“모르겠어요. 전 불빛만 봤는데….”
“그게 내 집인데.”
“아 네…. 그럼 목에 이 상처는 뭐예요?”
“내가 급해서.”
“혹시 뱀...파..이어 뭐 그런 거예요?”
“맞아.”
“뱀파이어씨? 정말요?”
“송민호. 뱀파이어씨는 무슨.”
“전 김진우예요”
“알아”
“어떻게요?”
“...좀 쉬어”
조금 전 건네받은 따듯한 차를 마시고 두통이 좀 가셨는지 한층 맑아진 표정으로 먼저 악수를 건넸다. 민호는 잠시 고민하는 듯하더니 두어 번 손을 흔들고 진우가 다 먹을 때까지 기다린 후 새것처럼 비워진 그릇을 들고 방 밖으로 나갔다. 혼자 남겨진 진우는 체력을 회복한 몸을 이끌고 널디 넓은 방에서 한 발짝씩 걸음을 떼며 왠지 익숙한 느낌의 저택을 요리조리 둘러보기로 마음먹었다. 혼자 산다고 하기엔 너무 큰 건물이었다. 복도를 따라 길게 늘어져 있는 수많은 방과 미묘한 느낌의 그림들을 따라 제일 넓은 공간으로 나와 폭신해 보이는 소파에 살짝 앉았다. 자신이 생각했던 ‘뱀파이어’의 이미지와는 조금 달리 전체적으로는 밝았다. 아까 그 사람 빼고. 자신의 집에 있는 물건과 같아 보이는 것들 몇 개가 눈에 들어왔다. ‘취향이 나랑 비슷하네….’라는 생각이 들었는데 저 멀리서 타닥타닥 소리를 내며 작은 고양이 한 마리가 진우에게 달려왔다.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며 저를 반기는데 모르는 이가 보면 꼭 옛 주인 보는 것처럼 말이다. 여기저기 핥아대는 모습을 보자 진우는 자신이 키우던 고양이들이 문득 생각났다. 어떻게 여기 왔는지 기억은 도통 나지 않지만 퇴근하고 저를 반겨주던 고양이의 모습만은 떠올려졌다.
“죠니야”
진우가 고양이에 정신이 팔려있는 사이에 쥐도 새도 모르게 어느샌가 나타나 자신을 언제부터 보고 있었는지 모르겠다만 불쑥 말하였다. 고양이도 주인은 알아보는지 자신의 품에서 벗어나 애교를 부리고 있었다. 미소를 짓는 얼굴을 가만 보니 처음 봤을 땐 생기가 돌았었으나 그사이 또 무슨 일이라도 있었는지 얼굴엔 핏기가 가셔 누가 봐도 뱀파이어인 행세를 하고 있었다.
“저…. 혹시 아파요?”
“아니 신경 쓰지 마.”
사실 꽤 오랫동안 사람의 피가 아니라 동물의 피를 마셔서 몸이 적응한듯싶었으나 인간의 피를 다시 맛보았고 짐승들의 피는 입에도 못 대고 있었다. 오래간만에 뜨겁고 달콤한 피를 마셨더니 주체할 수도 없이 더 갈구했다. 진우는 민호가 몸을 틀어 복도로 걸어가는 걸 봤는데 조금 발걸음 소리가 들리는 듯하였으나 대신 쿵- 소리가 나 놀래 종종걸음으로 달려가 봤더니 바닥에 쓰러진 민호를 발견했다. 아픈 거 맞네. 아니 이럴 거면 조금 전에 당당한 자세로 신경 쓰지 말라고 말하지나 말던가 자신의 덩치보다 큰 무거운 몸을 겨우 이끌어 제일 침실 같아 보이는 곳으로 들어가 이불 위에 눕혀 두었다.
물을 먹여줘도 나이 지긴커녕 이마에선 식은땀이 흐르고 있고 열은 점점 더 끓고 있고 이러다 정말 큰 일이라도 날까 봐 발만 동동 구르고 있었는데 민호가 피가 필요하다며 자신의 손을 잡아끌자 침대 위로 엎어진 진우의 하얀 팔뚝 안쪽에 도드라지게 드러난 송곳니를 박아넣어 여린 살을 정신없이 빨아들였다. 순간 놀래 소리를 지를 뻔하였으나 그래도 한번 빨려봤다고 제법 얌전히 있는 게 보였다. 하지만 두 눈으로 직접 보는 건 못하겠다고 고개는 다른 쪽으로 돌리고 있었지만.
“먹게 해줘.”
“뭐를요…?”
“네 피. 많이는 말고 조금씩만.”
“알겠어요, 알겠으니까 이거 팔 좀 놔요….”
서로가 정신없던 사이에 아까부터 애매한 자세가 신경 쓰이던 진우였다. 민호 위에 올라타 꼭 저가 덮치는 모양새처럼 하고 있으니 말이다. 거기다 한 손은 가슴팍에 얹어져 있고. 빠져나오려 했지만 붙잡아선 위아래. 위치를 바꿔 자신이 아래에 가 있고 민호가 위에서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눈을 어디에 두어야 할지 모르겠는 진우와는 다르게 얼굴과 매듭이 헐렁해진 로브 안으로 드러난 속살을 바라보았다. 창문 밖은 이미 어둑해져 있고 먹구름 사이로 빛을 내는 달이 진우를 비추어 어둠 속에서 진우와 민호의 눈동자만이 빛을 내고 있었다.
“김진우, 진짜 몰라?”
“뭘요?”
“모른 척하는 거야 아님. 진짜 까먹은 거야.”
*
3년 전 그때도 비가 오고 있던 건 같았다. 대체 어디서 나타났는지도 모르겠는 사람이 집 앞대문 옆에 쪼그려 앉아 오들오들 떨고 있었다. 아무리 남에게 관심이 없다 해도 창밖엔 빗방울이 그칠 줄을 모르는데 언제 그칠까 하는 표정으로 기다리고 있는 모습을 그냥 무시하기엔 민호는 생각보다 여렸다.
거의 몇백 년간 왕래가 없었던 곳에 제 발로 사람이 기어들어 오긴 오랜 만인지라 다짜고짜 잡아먹기도 그렇고 어찌할 줄을 몰라 자신의 서재에서 손톱을 잘근잘근 씹고 있었다. 그러나 정작 당사자는 처음엔 살짝 긴장한듯하였으나 이내 마음이 놓인 듯 소파에 머리를 기대 새근 잠이 들었다. 제 발로 들어온 집의 주인이 대체 뭐 하는 사람인지는 알고 세상 편히 잠에 들었던 것인지 그 모습을 모며 허탈해한 민호였다.
원래 마음 정 보다 몸 정이 무서운 법이라고 한 두 번 몸을 내어주자 그사이 정이라도 들었는지 아니면 정말 오랜만에 만난 감정을 나눌 수 있는 생명체를 만나서인지는 모르겠지만 빠르게 서로에게 빠져버렸다. 어느새 단순히 피를 나누어 줄 수 있는 몸 말고도 진짜 몸, 느낄 수 있는 몸을 원했고 또한 마음도 갈구했다. 위험하다는 기분이 피어나도 애써 무시해버린 채로.
시간은 점점 흘러 길었던 장마가 끝이 날 때쯤이 되자 이미 서로에게 흠뻑 빠져있었다. 몸도 마음도. 보름달이 뜬 밤에 환한 달빛을 받으며 사랑을 나누고 그대로 쓰러져 잠이 들었다. 하지만 일어나보니 어젯밤까지 곁에 있던 진우는 흔적조차 없어진 상태였고 혼자 남겨진 민호는 얼이 빠져버렸다. 눈을 감아도 눈을 떠도 자신에게 싱긋 웃어주던 진우가 생각나 제 상태로 돌아오기까지 한참이 걸렸다.
그렇게 단 하루도 잊은 적이 없던 날들을 뒤로하고 해 질 녘 오랜만에 나간 시내에서 진이 빠진 상태로 집으로 향하다 한 남자가 눈에 보였다. 이 시간에 대체 누가 겁도 없이 여길 오나 했는데 설마 하고 다가 가보니 진우였었다. 반가움과 흥분감이 동시에 밀려와 반듯한 셔츠를 풀고 난데없이 이를 박아버린 것이었다. 정신없이 빨아먹다 보니 지쳐 쓰러진 진우를 안고 집으로 데려온 거였고.
*
“진짜 모르겠어?”
“몇 년 전에 기억이 통으로 날아가서 저도 몰라요….”
“허, 그럼 이건? 넌 뒤 보다는 가슴에 더 느끼던데”
이미 반쯤 벗겨진 로브 안으로 차가운 손을 넣어 가슴께를 가볍게 쓸자 찬 기운에 몸은 움츠러들고 유두는 더 도드라졌다. 다 벗겨진 것도 좋지만 로브가 어깨에 아슬아슬하게 걸쳐져 있는 모습이 더 자극적이었다. 입고 있던 셔츠를 벗고 가슴팍을 맞대어 키스하자 팽팽한 바지 사이에 있는 민호의 것도 고스란히 느껴졌다. 물론 진우도 만만치 않았지만.
“흐응, 하으읏”
민호의 위에 올라타 쳐올려 지는 동시에 직접 허리를 흔들며 어찌할 줄 모르는 모습을 보자 더이상 참을 것도 없었다. 몇 번 더 살결을 짓이기고 자신의 가슴팍 위에 엎어져 쌕쌕거리는 숨만 뱉어냈다. 그래도 풀리지 않는 욕망이 남아있는지 이곳저곳을 만져댔다.
‘뱀파이어라 그런가 엄청 잘하네….’ 침대에 누워 아까 민호가 말했던 것들에 대해 생각을 해보았다. 아마 3년 전쯤일 것이다. 비행기에 몸을 싣고 해외로 촬영을 갔었다. 그 후가 문제였다. 머릿속의 여름의 기억 중 ‘비가 왔었다’라는 건 존재하지 않았다. 주변 이들에게 물어보아도 다들 기억도 못 하고 얼렁뚱땅 넘어갔던 일이 있었다. 기억 안 나는 시간이 여기서 보낸 시간일 줄 누가 알았겠는가.
그렇게 초승달이 떠 있는 밤하늘이 점점 채워지는 달빛에 환해지고 있는 동안 아낌없이 드러냈다. 관계가 사랑의 전부는 아니지만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기에. 이제는 빨리는 것에 익숙해진 덕분인지 자연스럽게 내어주지만, 아직도 쳐다보는 건 못하고 있는 모습을 보며 피식하고 웃기도 하고 말이다.
“이게 뭐예요?”
민호가 갑자기 다가와 손을 펴보라 하더니 장미 모양이 새겨진 유리 조각을 진우에게 보여주었다. 네 거라면서. 창밖에 떠 있는 보름달에 비추어 보니 파란빛이 감돌아 눈동자에 들어왔다. 같이 몸에 지니고 있으면 생각날 때마다 꺼내어 자기 생각을 할 수 있다고 꼭 멀리 보내는 애인 대하듯이. 그리고 어디 가서 그렇게 예쁜 눈으로 빤히 쳐다보면 질투 날 것 같다는 둥 어울리지 않게 투정도 부리고 말이다.
그 뒤로는 잘 생각이 안 난다. 어쩌다 보니 깨질듯한 두통과 함께 큰 나무 밑자락에서 정신이 들었고 매니저가 진우를 안으면서 눈물이 핑 돈 눈으로 어디 갔었냐 걱정했다며 그랬다. 당사자는 어리둥절하지만. 챙겨온 깨끗한 옷을 입으라고 하고 부축하며 밴에 몸을 실었다.
[다음 소식입니다. 몇 주간 행방이 묘연했던 배우 김진우 군이 촬영지와 멀리 떨어진 곳에서 발견되었습니다. 김진우 군은 광고 촬영차 떠났던 지역의 악천후로 차질이 생긴 후 실종이 되었었으며 계속된 비에 수색작업에도…….]
“진우 형 세탁 맡긴 옷 걸어둘게요”
“응.”
“맞다 이건 뭐에요? 유리 조각 같은 게 있던데 다치지 않으셨어요?”
“모르겠는데? 이리 줘봐”
무슨 소린가 싶어 살펴보았더니 꽃 모양이 새겨져 있는 조각이었다. 버릴까 생각하다 가지고 있어도 나쁘진 않을 것 같아 가슴팍에 뚫린 주머니에 조심해 넣었다. 낮에 청명한 하늘과 뜨거운 햇살에 인상이 쓰였지만 그나마 살만한 밤이 되자 달이 떠오르고 간간이 밤하늘에 박힌 별들이 눈에 띄었다.
그런 생각이 들었다. 다시 비가 왔으면 좋겠다고. 이유는 모르겠고 이왕이면 오래오래 말이다. 또 무슨 일이 생길지 누가 알겠는가. 그건 아무도 모르는 일이지.
누가 기다리고 있을 수도.
Written By. Cherry (Twitter Account : @cherrysop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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