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LORAL (Written by. 시나)
2018. 10. 26. 23:15

FLORAL

 




w. 시나






Pt.1

튤립처럼

 

 

 , 또 동아리 호출이다. 축제 시즌도, 대회 준비도 아니라 광고 만들 것도 없는데 주말이고 연휴고 뭐가 됐던 간에 일단 불러댄다. 톡방에 공지된 시간보다 1시간이 지나서야 부원들이 다 모인다. 겨우겨우 모여서 하는 말은 시시콜콜한 잡담뿐. 또는 그마저도 죽쳐 놓는 몇몇 때문에 생겨나는 고요함. 이름만 동아리지 그냥 심심하면 불러내는 개 같은 모임이다. 면접 없이 들어갈 수 있다 하여 자진해서 들어왔지만, 면접이 없는 이유가 있겠지 라는 생각을 차마 하지 못하였다. 내년에 나가야지, 나가야지 하면서 똑같이 되갚아야지 라는 쓸데없는 고집에 벌써 3년을 버텨왔다. 어쩌면 후배들에게 보이는 모습은 내가 경멸하는 그들과 같을지도. 하여튼 이 놈의 동아리 회의를 위하여 점심으로 매점에서 간단하게 샌드위치나 하나 사 먹고 달려왔다. 동아리실에 들어서자 이미 원스텝은 지나갔다. 애써 만든 활기찬 분위기는 떠나갔다는 말이다. 이제 익숙해질 때도 되었으니 매일 앉던 자리에 앉아 의자를 돌리며 과자나 집어 먹고 있었다. 한참 동안 의자 돌리는 소리. 펜 탁탁 거리는 소리, 과자 먹는 소리 등의 잡스러운 소리만 들려오던 중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오며 하얀 문이 열렸다.

 

 

늦어서 죄송합니다.”

 

마스크에 모자를 눌러쓴 한 남자가 숨을 허덕거리며 들어왔다. 기나긴 정적을 깬 그에게 모두의 스포트라이트가 쏟아졌다.

 

.. 죄송합니다. 잘못 들어왔네요. 실례가 많았습니다.”

 

그는 뒷걸음질 치며 다시 문을 닫고 나갔다. 그는 내게 짧지만 강렬했던 첫 인상을 남기고 떠났다.

 

 

 

 얼굴을 모두 가려 눈을 제외하곤 하나도 보이지 않았지만, 일단 살짝 보기에도 확실하게 눈은 틀림없는 미남이었다. 다들 나와 같은 생각을 하였는지 그가 문을 닫고 나가자마자 그에 대한 관심이 쏟아졌다.

 

 

쟤 누군지 알아?”
.. 얼굴은 익숙한데 누군지 모르겠어.”

선배의 말에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여자 애들 사이에서는 유명한가 보네. 왜지? 잘생겨서? 아니면.

 

매일 마스크 쓰고 다니는 선배로 유명하던데요. 방금 나타난 딱 저 모습. 여름이건, 겨울이던 간에 마스크에 모자는 어딜 가나 필수품.”
, 이제 기억났다. 쟤 패디과 아니야?”
어어. 맞아, 맞아. 패디과 3학년 김진우잖아. 조용한데 또 인기는 많은 싸가지.”

 

단지패디과 3학년 김진우라는 기본 정보만 주어졌을 뿐인데 여학생들을 중심으로 모두들 그에 대해 아는 척을 해가며 한 마디씩 보탰다.

 

 

 

 

 

 패디과이면 수업 많이 겹칠 텐데. 공과 새내기 애들도 알 정도인데 왜 나는 모를까. 나만 모르고 남들은 다 아는, 김진우라는 애에게 점점 호기심이 생겨났다. 그래서 나는 평소보다 주위 소리에 더욱 귀를 기울였다.

 

 

 

 어느 날 복도를 지나던 중, 애타게 찾던 그 이름이 들려왔다.

 

 

진우야.”
?”

 

돌아보니 여자 한 명과 남자 한 명이 서있었다. 둘 다 익숙한 목소리. 분명 아는 사람들이다. 일단, 좀 더 이야기를 들어보기로 했다.

 

나 너,,”
선배. 그만.”

진우라 불려지는 남자가 선배로 보이는 여자에게 멈추라는 손짓을 한다.

 

저 가볼게요. 고마워요.”

 

그녀의 말에서 동사는 달랑 잘라버리고 진우는 자리를 떠나버렸다. 그 여자 선배는 진우와 반대로 걸어갔다. 나는 그의 뒤를 좇았다. 그는 1층으로 내려가 건물 주위를 잠시 서성이는 듯하다 곧이어 벤치에 앉아 고개를 숙였다. 나는 최대한 자연스레 그의 옆에 가서 앉았다. 그러자 그는 나를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우리 어디서 본 적 있지 않아요?”
. 오늘 피곤한데. 그런 작업 멘트 싫어요.”
자아도취에요? 사람 말도 다 안 듣고선 왜 내가 그 쪽 좋아한다고 생각해요? 나 그쪽 안 좋아해요. 관심만 있을 뿐.”

 

싸가지라 하더니 싸가지 맞다. 자기 감정을 주위에서도 맞춰주기를 원하는 이기적인 싸가지.

 

자아도취 아니고요. 아까부터 계속 따라오시길래 그렇게 생각했죠. 그리고 관심 꺼주세요. 아무랑도 잘해볼 생각 없으니까. 저 사랑 혐오해요. 마지막으로 저희 만난 적 없으니 가주세요. 아니면 그대로 앉아있으세요. 제가 갈게요.”
아니. 잠시 착각한 것 같은데 저희 만났었어요. 동아리실에서. D 207호 들어왔었죠?”
.”
봐봐요. 만났었다니까.”
그래서요?”

마스크와 모자로 자신의 모습을 감춘 것처럼 자기 자신을 스스로 감추는 것 또한 매우 강해 보인다. 마치 깊은 상처가 있는 사람처럼 말이다.

 

친하게 지내요. 전 시각디자인 전공하고 있는 송민호라고 해요. , 참고로 동갑.”
. , 나에 대해 이미 잘 아는 거 같은데, 예의상 소개할게요. 패디과 김진우에요.”
말 편하게 해요.”
.”
“…
점심 먹었어?”
아니.”
먹으러 가자.”
싫어. 나 혼자 밥 먹는 거 좋아해.”
, 그럼 오늘부터 취향 바꾸면 되겠네.”
. 우리 오늘 처음 봤어.”
처음 아니라고 몇 번을 말해.”

 

진우는 내게 져준다는 표정을 지으며 함께 밥을 먹으러 갔다.

 

 

 

 답답해 보이던 마스크를 벗자, 아 이래서 싸가지인데 인기가 많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남자가 봐도 잘생겼다. 지나가다가 뒤돌아볼 만큼. 내게도 그런데 여자들에게는 어떻게 보이겠는가. 그런데, 그런 외모로 사랑 혐오자라니. 꽁꽁 싸매고 다닐 만하다. 결국 강제적인 식사를 마치자, 잘 먹었다는 인사 한 마디와 함께 본인이 먹은 것만 계산하고 나갔다.

 

 

 

 

 

 

 진우가 나를 피할수록 더 붙잡고 싶었고, 친해지고 싶었다. 그냥 어떤 사람인지 알아가보고 싶었다.

 

 

 

 안녕.”

학교 근처 꽃집에서 장미를 손질하고 있는 진우를 만났다.

 

왜 왔어?”
그냥 지나가다가 예뻐서 들렸는데? 나 꽃 좋아해.”

거짓말처럼 들리더라도 사실이었다. 나는 꽃이 좋았다. 종별로 향이 다른 꽃이 매번 새로워 흥미가 생겼다.

 

. 나한테 볼일 있으면 저기 앉아서 기다려. 하던 일만 마무리 짓고 갈게.”

 

다행히 거절은 안 당했다. 매일 거절은 안하고 차갑기만 하다. 어찌됐건 싸가지에게도 착한 면도 있기는 한 것 같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는 내 앞에 앉았다.

 

 

나 왜 왔는지 안 궁금해?”
지나가다가 들렸다며. , 볼일 있다 했지? 뭐야?”
그냥 너랑 그때 이후에 한 번도 안 마주쳐서 오랜만에 이야기 좀 하려고. 잊은 건 아니지? 친하게 지내기로 한 거.”
. 그런데 이번엔 내가 궁금한 게 있는데..”

 

의외였다. 나를 완전히 잊고 산 줄 알았는데 그래도 잠깐이라도 내 생각을 하긴 했나 보다.

 

송민호, 너 어디 아파?”

깊게 찔러오는 한 마디에 잠시 머뭇거렸다. 대답하기 전에 그렇게 생각하게 된 이유라도 들어보고 싶었다.

 

?”
이거 말해도 되는지 잘 모르겠는데. 몰라. 그냥 당사자가 너니까 다 말할게. 너도 솔직하게 말해줘.”

 

 사실 나 너 원래 알고 있었어.”

이건 또 무슨 이야기인가.

 

원래까지는 아니고, 그 때 처음 봤어. 너 헤어질 때.”

 

..

상대 족에서 네가 계속 자기 못 알아본다고 헤어지자 했었잖아.”

그랬지. 내가 사랑도 했었지.

 

그게 무슨 말이야? 사랑하는 사람을 못 알아본다는 게 말이 돼?”

 

 다 봤구나. 아무도 보지 않았으면 좋았었을 그 장면을 진우는 보고도 모르는 척 해왔던 것이다.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그녀와 공원에서 만나기로 한 날이었다. 나는 일이 생각보다 늦게 끝나 약속 시간보다 살짝 늦게 도착하였다. 그녀는 먼저 도착해있었다. 미안한 마음에 벤치에 홀로 앉아 있는 그녀의 뒤로 가 그녀의 목에 내 팔을 감았다. 하지만, 그만 나는 실수를 저지르고 말았다. 내가 팔을 감은 여자는 그녀가 아니었던 것이다. 그 모습을 목격한 그녀는 나의 바람으로 생각하였다. 아무리 내 실수라고 설명을 하여도 믿기는커녕 더욱 화를 내었다. 그래서 결국 우리는 이별을 맞이하게 되었다. 나 스스로에 대한 믿음으로 저질렀던 순간의 실수로 사랑하는 이를 떠나 보내야만 하였다.

 

 

김진우.”
.”
나 많이 아파.”
“…
어디.”
안면실인증 있어.”
?”
안면인식장애라고들 부르는 거.”
.”
그래서 나 친구도 없잖아. 간혹 가다가 친구도 못 알아보는 애랑 너라면 친구하고 싶겠어?”

혹여 그가 미안해할까 봐 약간의 진심이 섞인 농담을 던졌다. 사실 강인한 척, 괜찮은 척을 애써 해가며 내뱉은 말이었지만, 사실상 이별 통보였다.

 

 

.. 아니. 민호야, 그래도 나 너 친구잖아.”

내가 나의 비밀을 고백할 때면 모두의 반응은 같았다. 처음에는 그래도 나는 친구라고 항상 곁에 있을 거라며 든든하게 말해준다. 예의상. 이후엔 필요 없는 동정 섞인 위로를 한 마디씩 던지다가 결국 내 곁을 떠나버린다. 하지만, 진우는 나를 위로하려 하지 않았다.

 

그냥 그렇게 살아가는 거지, .”
그렇지.”

 

고마웠다. 위로가 아닌 이해를 해주어서.

 

 

 

 

 

 

 더 이상의 질문보다는 그냥 그런 거라며 받아들여주던 진우의 모습에 자연스레 내 감정이 이끌려갔다. 분명 좋은 사람일거라는 확신이 들었다. 더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고 싶었다. 단 둘이 더 다양한 일들을 함께 해보고 싶었다. 나 자신 스스로에게 위로하는 법도 배우며 성장할 수 있을 것만 같아서. 그리고 어딘지 모르겠지만 분명 상처가 있을 그 또한 치유해주고 싶었다. 그날따라 이런저런 생각이 더 많이 들었다. 그래서 그를 보기 위해 꽃집으로 향했다.

 

 

앉아있을게.”
.”

항상 그래왔듯 카운터 옆에 위치한 2인용 테이블에 앉아 그가 일을 마치기를 기다렸다.

 

 

오늘은 왜 왔어?”
그냥 너 보고 싶어서.”

아닌 것 같은데.”
맞아. 거짓말이야. 나 너한테 할 말 있어서 왔어.”
뭐야. 말해봐.”
진우야.”
“…
내가 뭐 도움 줄 거 있어?”
. 나랑 만나자.”
, ?”
만나자고. 진지하게. 나 너 좋아한다고.”
“…”
“…”

나 아직 너랑 그런 거 할 마음 없어. 미안해, 민호야. 우리 이렇게 만나는 것도 재밌잖아? 매일 이렇게 만나면 되지, ?”

 

진우는 마치 어린 아이를 달래듯 내 마음을 사양하였다. 너무 성급했던 것일까. 지금 이 상태 그대로도 너무 행복한데 도대체 어느 정도의 행복을 난 더 원했던 것일까. 그래. 내 병을 알고도 마음을 받아준다는 건 정말 어려운 일이다. 그가 나를 처음 봤을 때처럼 그 또한 상처를 받을까 봐 두려웠을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는 사랑 혐오자였다. 나라고 달라질 것은 없었다.

 

나 갈게.”
.”

고마워. 짧지만 지나간 내 마음이 담긴 한 마디였다. 이 한 마디가 그에게 전하는 마지막이 아니길 바라며 더 이상의 부담을 주지 않기 위해 자리를 떴다.

 

 

 

 

 

 

 살면서 처음으로 받아본 이해. 그게 진심이건 아니건 간에 잊혀질 수 없을 것이다. 병명을 진단받았을 때와 함께 내 인생에서 절대 잊혀지지 않을 것임은 틀림 없다. 그런 말을 내게 해준 진우 또한 그와 함께 잊혀질 수 없었다. 그렇게 말이라도 할 줄 아는 사람은 그가 처음이었으니까. 당연히 마음을 접어야 하겠지만, 나는 그러고 싶지 않았다.

 

 

 

안녕.”

 

학교에서 진우와 마주치자 형식적인 인사를 하였다. 늘 그래왔듯 나는 혼자였고, 그는 여럿이었다. 그런 차이 때문인지, 아니면 그냥 내가 불편해서인지 나를 못 본채 하였다.

 

 

 

 

 

 

Pt.2

나팔꽃처럼

 

 

 

 

 

 

 나는 사랑 혐오자이다. 말 그대로 사랑을 매우 싫어한다. 사랑의 존재는 믿지만, 하고 싶지는 않다. 무엇이 됐건, 언제가 됐건 끝은 이별이기 때문에. 그 이별은 오랜 시간 너무 아프기에 싫다. 나와 항상 함께하는 마스크와 모자도 그 이유 때문이다. 사랑에 대해 논하고, 사랑 때문에 내가 흔들리는 것도, 그리고 남들이 나 때문에 흔들리는 것도 모두 다 싫다. 심할 때에는 사람들이 나에게 사랑이란 감정 조차 느껴주지 않았으면 이라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그래서 나는 그들이 나에게 하는 사랑 고백에 대해 아무런 감정, 아무런 생각이 없다. 하지만, 민호는 달랐다. 그의 마음을 알게 되었을 때, 다른 때와 다르게 마음이 편치 않았다. 그게 사랑이란 걸까. 사람들이 한평생 미처 살아가는. 살면서 한 번쯤 찾아온다던데 지금일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도 잠시, 나의 정체성에 대해 명확하게 해야 했다. 나는 지금껏 줄곧 나의 의지로, 나에 대한 내 생각만으로 스물 그리고 몇 해를 사랑을 하지 않고 살아왔다. 그런 내가 만난지 몇 달밖에 안된 동성에게 흔들리다니. 말도 안 되는 일이다. 그래서 나는 그를 내 기억 속에서 완전히 없애고 싶었다. 하지만 잘 지워지지 않았다. 영화, 드라마, 소설 속에서나 봤던 바로는 사랑은 내 의지만으로 쉽게 잊을 수 없다더니, 정말인가 보다. 하지만, 흔들리면 안됐다. 더는, 더 이상은. 그 이후의 일은 장담할 수 없었기에.

 

 

 

 한참을 고민한 끝에 내가 고안해낸 방법은 나의 트레이드 마크로 꼽히는 마스크와 모자를 벗어 버리는 것. 그 외에도 나의 스타일을 바꿔 버리는 것. 그렇게 하면 사람을 스타일로 알아본다는 그가 나를 알아보지 못할 것 같아서라는 단순한 이유 하나만으로 수년간 고수해왔던 스타일을 바꾸었다. 우려했던 바와 달리 주변 반응은 긍정적이었다. 사람이 한층 밝아 보인다, 얼굴이 보이니 훤하게 얼마나 좋냐 등등.

 

 

 

 

 

 

 이후, 민호를 단 한번도 마주치지 않았다. 아니면 그가 나를 못 알아봤던 것일 것. 하여튼 그가 내게 건네는 인사는 들을 수 없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였다.

 

 

안녕.”

 

 

오랜만에 들려오는 민호의 목소리. 안부를 묻는 그의 말에 나는 차마 안녕이라 답할 수 없었다. 안 한 게 아니라, 못한 것이었다. 나는 안녕하지 못했으니까. 겉으로는 전보다 괜찮아 보였지만, 그 모든 건 괜찮지 않은 나의 모습을 감추기 위함이었으니까.

 

 

 

거기로 와.”

 

거기’. 알아듣기 힘들 법도 했지만, 민호가 생각한 곳과 내가 생각한 곳은 다행히도 일치하였다.

 

 

왜 불렀어? 너 나 목적 없이 안 부르잖아.”

 

맞는 말이다. 난 목적 없이 사람을 부르지 않는다.

 

할 말 해봐. 다 들어줄게.”
“…
너 나 그만 좋아해.”
싫어. 좋아하는 건 내 마음이잖아. 네가 굳이 간섭할 일은 아니잖아? 아무리 우리가 그렇고 그런 사이라도 선은 지켜줬으면 좋겠는데.”
간섭할 일이야. 굳이 이렇게 말해야 돼? 네가 나한테 관심 가지는 거 싫다고. 불편하다고.”

 

말을 다 하고 나서야 실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강하게 말할 일은 아니었는데. 충분히 부드럽게 말해도 되는 일이었는데.

 

왜 내가 불편해?”

 

전보다 한 톤 낮아진 목소리로 민호가 물어왔다.

 

네가 나만 알아보는 게 싫어. 왜 그게 하필 나야?”
그건..”
너 전여친 못 알아봐서 헤어졌잖아. 그 정도인데 왜 나만 알아봐? 이유가 있을 거 아니야.”
그건,, 너한테는 특별한 향이 나.”
“…”
나 꽃 좋아한다고 말했었지? 그래서 향도 잘 아는 편이야. 너희는 사람 얼굴로 알아보겠지만, 나는 그게 안돼서 다른 것들에 더 민감해져. 그 중 하나가 향이고.”

사과해야 할까 라는 생각까지 들었다. 또다시 잘못 건드린 것 같은 기분이 들었기에.

 

너한테는 꽃 향이 난다고. 섬유유연제에서 인공적으로 만든 향과 다른 흔치 않은 순수한 향. 그래서 너 알아봐.”

날 알아봐주는 사람에게 내가 너무 민감하게 반응했던 것 같다. 전애인 이야기까지 꺼내가면서 나는 도대체 그에게 무얼 바랬던 걸까. 이미 늦어버린 후회가 밀려왔다.

 

그리고 네 향이 바뀌더라도 난 너 알아볼 거야. 난 너 계속 좋아할 거니까 인사 안받아줘도 돼.”

미안했다. 민호가 그렇게 말할 정도라면..

 

 

 

 

 

 

 민호의 마음을 다시 한 번 알게 된 후, 나 자신을 돌아보게 되었다. 나 스스로만 너무 보호하려 하며 정작 주위에는 내가 받을 상처까지 되로 주지는 않았나. 나에 대해 반성하는 과정에서 나의 생각은 변화하게 되었다. 사랑하는 과정이 행복하다면, 이후에 맞이하게 되는 이별 정도는 아파할 가치가 있지 않을까. 그 또한 사랑의 일부일 거라며. 그런 생각이 든 이후에 내가 처음으로 사랑을 하고 싶은 사람은 단 한 사람. 나를 변화하게 만들어준 사람이었다.

 

 

 

 

 

 

 나는 예전처럼 돌아갔다. 마스크와 모자로 얼굴을 가리고 돌아다녔다. 하지만, 더는 사랑이 두려워서가 아니라 사랑을 하고 싶어서였다. 이렇게 돌아다니면 민호가 멀리서도 나를 쉽게 알아볼 수 있지 않을까 싶은 마음에.

 

 

 

 나는 민호의 수업이 끝날 때까지 강의실 앞에서 기다렸다. 수업이 끝나고 민호가 나오자, 그가 먼저 인사하기 전에 이번엔 내가 먼저 인사를 건냈다.

 

 

송민호. 안녕.”




Written By. 시나 (Twitter Account : @_sssiinaa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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