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바웃 썸머 (Written by. Cherry)
2018. 8. 26. 19:29

어바웃 썸머





w. 체리

 


 

 

드러낸 살갗은 뜨거운 태양 볕 아래 화끈거렸지만 움직임은 멈추지 않았다. 가벼운 움직임이었으나 파급력은 꽤나 컸고 덕분에 여기저기서 환호가 삐져나왔다. 선이 명확히 그어진 코트를 메쉬 소재의 얇은 나시를 입고 뛰어다니자 몸에 예쁘게 자리 잡혀있는 선들은 더욱 도드라져 보였다. 송민호, 공부를 조금 못하면 어떤가 리더쉽 있고 좋아하는 걸 잘하며 거기다 잘난 이목구비까지. 시골의 조그만 학교에서는 이미 스타였다.

 

 

 

30도를 웃도는 날씨에도 아랑곳 않고 점심을 먹고 친구들과 농구를 하자 온몸에서 흐르는 땀을 식혀주러 운동장 구석에 놓인 수돗가로 향했다. 찬물을 뒤집어쓰자 이제야 살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몸에서 뿜어내는 열기는 혈기왕성한 나이답게 데일 듯 뜨거웠으며 충만했다. 수도꼭지를 크게 돌려 수압을 높이자 차가운 물이 사방으로 튀었다. 덕분에 뒤에서 걸어가던 진우의 교복 셔츠가 조금 젖었다.

 

 

 

아 차거!”

 

 

 

난데없는 물벼락을 맞은 진우가 토끼눈이 돼서 물이 튄 쪽을 바라보았다. 웃통을 벗어던지고 혼자 비라도 맞았는지 머리와 몸엔 물기가 가득했다. 민호의 눈에는 물기 가득한 하얀 셔츠 안으로 살짝씩 비치는 진우의 뽀얀 살결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당황한 모습을 하며 닦을 거라도 찾아보지만 이미 민호의 몸엔 물기가 가득했고 어찌할 줄을 몰라 했다. 진우에게 다가가 손으로라도 털어보려 했지만 손길을 더할수록 모양새는 미묘해져갔고 진우가 먼저 자리를 떴다. 저도 모르게 이미 붉어져버린 귀를 감싸 안고 생각해보니 처음 보는 얼굴이었다. 학생 수도 많은 학교가 아니라 건너건너 알거나 얼굴이라도 한 번씩은 꼭 마주치곤 했다. 하지만 조금 전 마주친 아이는 까무잡잡한 자신과는 달리 하얀 피부를 하고 말 그대로 곱게 자란 아이 같았었다.

 

 

 

뜨거운 햇볕아래 젖어있던 몸 위의 수분은 금방 날아가고 어느새 뽀송해져 있을 만큼 더위는 강렬했다. 종이 울리고 교실로 들어가 창가에 자리한 책상에 앉아 커튼 사이로 새어드는 따스운 바람에 눈이 감기려 할 때 잠에서 깨우는 듯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난 김진우. 잘 부탁해.”

 

 

 

짧은 두 마디였지만 민호의 마음이 동하기엔 충분했다. 창문 너머로 민호의 눈을 감기게 했던 바람이 진우에게 불어오자 얼굴을 간지럽히는 연한 갈색의 머리를 쓸어 넘겼다. 꼭 옆에 있으면 기분 좋은 섬유 유연제 향기가 코 끝으로 풍겨올 것 같았다. 진우도 민호를 보았는지 눈이 마주치자 슬쩍 바라보곤 옆에 비어있던 자리로 다가가 앉았다.

 

 

 

우리가 처음 만난, 무더운 여름날이었다.

 

 

 

옆자리의 진우는 말이 없었다. 민호가 이따금씩 쳐다보았지만 늘 반듯한 교복차림으로 수업에만 집중했다. 꼿꼿한 허리와 정갈하게 놓인 다리. 하지만 민호는 궁금해했다. 무언가 다름이 있지 않을까 하며 관심과 흥미가 마음속에 가득 차 있었다.

 

 

 

항상 그래왔듯 더운 날씨와는 상관없이 틈 날 때 마다 농구를 했다. 진우는 학교생활에 적응해 갈 때쯤 창문 너머로 공을 튀기는 민호를 발견했다. 후덥지근한 바람이 교실까지 불어오자 쟤는 덥지 않을까? 하는 의구심이 들면서도 눈길이 갔다. 진우는 전학 온 첫날 민호를 가장 먼저 보았다. 사실 제대로 바라보지도 못했었다. 옷을 다 벗고 저를 만져대는데 생각만 해도 화끈거렸다. 결국 호기심은 풀어지지 않은 채 며칠간 더 머릿속을 맴돌았다.

 

 

 

진우야? 김진우!”

 

ㅇ어?”

 

뭐해 미술실 가자

 

...”

 

 

 

반에 옷을 놔두러온 민호가 혼자 책상에 앉아 넋 놓고 있는 진우를 발견했다. 다가가서 말을 걸자 깜짝 놀라는 모습을 하는데 꼭 수돗가에서 처음 봤던 그 표정을 하고 있었다. 미술실로 걸어가는 길에도 뭘 그렇게 골똘히 생각하는지 몇 번 넘어질 뻔한 걸 붙잡아 주었다. 다행히 수업에 늦게 들어오지는 않았으나 마지막이었다.

 

 

 

오늘 주제는 여름. 여름에 대해 생각나는 거 그리고 끝나면 집 가자

 

 

 

정규수업들 중 미술을 제일 잘하는 민호는 고민을 하더니 하얀 백지 위에 금세 스케치를 해나갔다. 그 모습을 빤히 지켜보던 진우는 울상이었다. 그림에 흥미도 잘하지도 못하는데 끝나고 집 가라는 건 진우에게 가지 마라는 소리가 아닌가. 민호의 오른쪽 뺨은 햇빛 때문에 왼쪽 뺨은 진우의 시선 때문에 따가웠다. 스케치를 대충 끝낸 후 진우를 바라보자 시무룩한 표정을 한 채 겨우 끄적거리고 있었다.

 

 

 

도와줄까? 뭐 그리고 싶어?”

 

나는...운동장

 

그러면 이걸 지우고 왼쪽에...”

 

 

 

연필을 쥐고 있던 팔위로 손을 겹쳐오자 살짝 놀랐지만 민호는 눈치를 못 챘는지 열심히 알려주었다. 어떻게 하라는 것 같았는데 집중을 놓쳐버리고 얼굴만 빨개져서 대충 얼버무리고 어떻게든 그려보자고 생각했다.

 

 

 

먼저 끝낸 친구들은 하나둘 자리를 떠나고 진우와 진우를 도와주려고 남은 민호만 교실에 있었다. 창문 밖은 아직 화창하였으나 가장 더운 시간은 지나고 있었다. 겨우 그림을 마무리한 진우와 민호가 자리를 정리하고 소품실로 들어갔다. 이젤을 구석에 두었는데 위에 있던 장식품 하나가 진우의 머리위로 떨어질 뻔했으나 보고 있던 민호가 잡았다. 진우는 놀랐는지 손을 꼭 쥐었다. 고개를 들고 눈앞의 민호의 눈을 바라보았는데 민호는 자신의 눈갈을 피하기 바빴다. 꽉 막힌 사방에 꿉꿉한 냄새가 공간을 메웠지만 중요한건 따로 있었다. 지금 눈앞의 너. 없던 자신감이 생기면 안하던 짓도 하게 된다. 멀쩡한 정신에도 이거 한번 저질러보면 괜찮을 것 같은데? 라는 이유 없는 마음이 솟아나며 실행까지 실제로 얼마 걸리지도 않는다.

 

 

 

진우는 궁금했다. 자꾸 생각나는 송민호는 내가 벗은 몸을 보아서 그런걸까 아니면 몰랐던 다른 감정인걸까. 숨결이 느껴지는 거리로 한 발짝 다가가 눈을 한번 바라보고 발꿈치를 살짝 들고 입술을 포개보았다. 나름대로 진지한 것인지 눈을 감고 몇 초간 있었다. 하지만 또 다른 게 들어올 것 이란 건 생각 못했는지 입안에 뜨거운 혀가 들어오자 눈을 또랑 뜨고 쳐다보았다.

 

 

 

네가 먼저 시작한 거 아니야?”

 

 

 

민호가 씨익 웃었다. 방금 전 숨 쉬는 것마저 조심스러웠던 공기는 어디로 가고 조급함이 느껴졌다. 꼭 잠그고 있던 단추를 하나씩 풀자 진우는 몸을 살짝 떨었다. 금세 딱딱해진 유두를 손가락으로 쓸자 입에서 뜨거운 숨이 새어나왔다. 민호도 얇은 티셔츠를 벗고 신경 쓰이는 바지도 벗어던졌다. 팽팽하진 아랫 섬을 호기심 어린 눈으로 바라보았는데 겁 없는 손은 제지당하고 진우 몸에 마지막으로 남아있던 옷가지마저 바닥에 떨어졌다.

 

 

 

소품실 먼지 가득한  바닥에서 민호 위에 누워 엉덩이를 짓이겼다. 조금 전까지 아프다고 눈에 눈물이 핑 돌았지만 쾌락점을 찾고 너무 느끼는 몸이 버거워 눈물이 올라찼다. 물론 둘 다 처음 하는 관계다만 10대만의 혈기왕성하고 새로운 본능에 몸을 맡기기로 했다. 콩콩 엉덩이를 부딪치지만 어다 두어야할지 모르는 손과 이따금씩 올려쳐주는 민호덕분에 아무도 없는 학교지만 혹여 누가 들을 새라 겨우 참고 있던 신음이 자꾸 입술 사이로 새어나왔다.

 

 

 

으응......히끕

 

밖에 다 들리겠어.”

 

히이익....라아...하응..흐아아

 

 

 

온몸에서 땀이 흘러나와 와중에 몇 번 가버린 진우의 정액과 뒤엉켜 몸에 진득하게 붙어있었다. 밑에서 만져줘야 움직이는 엉덩이가 어느새 혼자서 격하게 흔들렸다. 결국에 신음 참는 건 포기한 건지 나오는 대로, 흔들리는 대로 뱉어내었다. 이리저리 흩날리던 머리카락도 젖어 볼록한 이마에 붙어버리고 자신의 손길이 닿는 곳마다 떨려하고 아래로는 나가지 마라는 듯 더 꽉 물어버리는 진우에 민호도 점점 한계가 오고 있었다.

 

 

 

하앙...미노야..흐아앗!”

 

...진우야

 

 

 

*

 

 

 

같이 있던 공간의 공기, 냄새 그리고 분위기까지 모두 기억하지만 그 다음날부터 진우는 학교에 오지 않았고 며칠 뒤 잔학을 갔다는 말만 전해 들었다. 그 흔한 전화번호까지 몰랐다는 사실에 민호는 좌절했다.

 

 

 

오묘하지만 짜릿했던 만남을 뒤로했다. 특히 송민호는 그날 이후로 김진우를 단 하루도 생각하지 않은 적이 없었다고. 다른 누구에게 말도 않은 채 혼자만 아는 비밀이었다. 잠시 꿈이라도 꾸었나 싶기도 하면서도 느껴지던 살결과 모든 게 어제 일인 듯 생생했다. 다시 마주친다면 대체 어디 갔었냐 묻고 싶지만 흔적도 남기지 않고 사라져버린 이는 엉뚱한 곳, 마음속에 깊이 자리 잡았다.

 

 

 

*

 

 

 

민호야 수고했다.”

 

수고하셨습니다.”

 

 

 

성인이 된 민호는 팀에 들어가 시즌에는 바쁘게 경기를 소화해냈다. 매체에서는 농구계의 루키가 나타났다며 언급이 이어졌다. 인기와 실력까지 겸비한 농구스타지만 한 인터뷰에서 애인 유무에 대해 질문하자 애인은 없지만 인상 깊었던 첫 만남 이후로 짝사랑해온 사람이 있다고 답하였다. 그의 인터뷰가 나간 후 팬들은 민호를 지고지순한 순정남이라고 불렀다. 거칠고 날렵한 움직임의 인상과는 또 다른 모습을 갖추고 있다 감탄하고 기뻐했다.

 

 

 

물론 그 말은 진우 귀에도 들어갔다. 몇 년 전 그날로 돌아 갈수만 있다면 사정이 생겨 어쩔 수 없이 가야 했다고 말해주고 싶지만 이미 늦어버린 일이다. 여름만 되면 꼭 생각이 났다. 눈이 마주치면 웃어주고 늘 싱그러운 미소를 지어주었다.

 

 

 

!! 저랑 어디 좀 가요

 

어디?”

 

송민호 알죠? 제가 표 어렵게 구했는데 저 친구 없는 거 알잖아요...같이 가주세요...”

 

송민호? 농구?”

 

네네 갈 거죠 그렇게 알고 있을게요. 형밖에 없어요

 

ㅇ아니, !”

 

 

 

테이블에 엎드려 푸념하고 있던 진우에게 다가와 자기 말만하고 가버린 후배가 쥐어준 티켓을 보았다. 27일이면 내일인데 다시 또 마음이 복잡해졌다. 하긴 그 많은 사람들 사이에서 자기를 알아볼 일은 없다며 혼자만의 착각에 사로잡혔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시간은 흘러 자신을 기억 못 할 수도 있지만 막상 진짜 그런 일이 생긴다면 서운할거라는 생각과 자꾸 떠오르는 잡념들과 그 사이서 피어오르는 여름날의 일이 떠올라 아래에 피가 모이는 느낌이 들었다. 결국 밤잠을 설쳤지만 정신을 차려보니 뜨거운 함성이 가득한 경기장에 앉아 있었다. 아직 이런 분위기가 어색한 진우는 가만히 앉아 민호만을 바라보았다. 그 애는 여전히 열기 가득하고 빨랐다. 경기 도중에 자신의 쪽을 쳐다보았다는 느낌을 받기도 했지만 그런 잡생각은 금방 사라졌다.

 

 

 

핸드폰의 벨소리까지 삼킬 만큼 시끄러운 경기장을 나와 통화를 하고 왔더니 장내 분위기가 이상했다. 민호는 바닥에 누워 발목을 붙잡고 아파하고 있었으며 경기가 잠시 중단되었다. 놀란 진우가 코트 안으로 내려가려했으나 들것에 실린 민호는 빠져나가고 선수가 교체되었다.

 

 

 

아직 기억한다. 정확히는 5년 전이었다. 이맘때쯤은 항상 더운 공기가 민호의 마음을 긁었다. 유리 너머로 통과되어서 내리쬐는 햇볕에 이미 데일만큼 데여있었다. 뭐 나 혼자만 이래도 상관없다. 평생 잊어버리고 싶지 않을 만큼 기억하고 또 생각할거니까. 하지만 중요한 경기를 앞두고는 꼭 산책을 했다. 별반 다르지 않은 날이었다. 관객석에서 느껴지는 익숙한 시선에 고개를 돌리기 전까지는.

 

 

 

보통의 사람들은 일어나서 환호하거나 앉아서 응원을 한다. 더군다나 별로 멀지 않은 자리에서 자꾸 시선이 느껴져 잠시 고개를 돌렸는데 조금 전까지 머릿속에 있던 사람이 앉아있었다. 자신을 뚫어지게 바라보면서. 경기 시작을 알리는 신호가 들려와 멈을 움직였지만 머릿속에는 순식간에 김진우로 가득 찼다. 처음엔 반가움이었다. 5년 만에 다시 같은 공간 안에 있다는 벅참과 기쁨이었다. 처음 집중한 것을 끝까지 끌고 가는 편이었으나 당장 민호에게 경기 중인 농구는 둘째였다. 그러나 반가움은 곧 다른 감정으로 바뀌었다. 또 말없이 사라지면 어떡하나 그렇게 기다렸는데 오늘이 진짜 마직막일 것 같다는 두려움과 조급함으로 바뀌어 옆에서 외쳤던 패스 하라는 말을 듣지 못하고 결국 부딪혔다. 놀란 마음이 더 컸던 것인지 바닥에 쓰러져 아까 그 자리를 보았는데 생각한 거랑 같게 역시나 진우는 없었다. 민호는 눈앞에서 놓친 것이 분해서 눈물이 차올랐지만 통증 때문일 것이라 생각했다. 병원 침대에 누워 한참을 생각에 잠겼다.

 

 

 

찾아보기. 무작정 찾아보며 어딘가에 있지 않을까? 경기까지 보러 온 거면 꽤 가까이 있을 수도. 병원에 있던 몇 시간 동안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어 도달한 결론이다. 찾아보자고. 며칠 전 경기장에서 진우가 앉았던 좌석은 초대권이 있어야만 앉을 수 있었다. 사정사정해 그 후배라는 사람의 번호를 알아내 긴 사연을 설명한 다음 번호를 받았다.

 

 

 

진우 형 번호에요. 평일은 바쁘니까 주말에 하시는 게 좋을 거예요.”

 

“...감사합니다.”

 

 

 

밤새 생각했다. 전화를 한 다음은 뭘 어떻게 말해야하나. 요 며칠간이 아마 민호의 인생 중에서 가장 잠 못 자고 머리가 터질 것 같던 시기였을 것이다. 농구 데뷔전을 해봤었어도 이 정도는 아니었는데 말이다. 떨리는 마음으로 해가 저물고 진우가 여유 있을 시간대를 고려해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저기 나 송민호...”

 

“.....”

 

진우야?”

 

술 마실래? 8시까지 공원 앞에서 만나

 

ㅇ어? ...알겠어

 

 

 

설렘보다는 얼굴이 뜨거워졌다. 음주라는 스토리는 예상하지 못 했던 것이다. 먼저 만나자는 말을 해준 진우에 고마웠지만 알 게 모르 게 가라앉은 목소리가 신경 쓰였다. 약속시간보다 훨씬 일찍 공원에 도착해 기다렸다. 긴장이 되어 땀이 삐질 났지만 더운 여름밤의 공기 때문에 그럴 것이라 합리화했다.

 

 

 

송민호

 

 

 

바로 등 뒤에서 들리는 목소리는 진우였다. 재빨리 반응해 몸을 틀었더니 산지 얼마 안 된 것 같은 차가운 맥주를 자시의 볼에 가져다 대주었다.

 

 

 

내가 술 마시자고 했잖아, 왜 빈손인건데?”

 

“...맞다 미안. 내가 정신이 없어서

 

됐어, 대신 내가 엄청 사왔지.”

 

 

 

팔에 끼워진 묵직한 비닐 안에는 맥주와 과자 몇 개가 들어있었다. 근처 벤치에 앉아 맥주를 깐 다음 목을 축였다. 진우도 더웠는지 그 많은 양을 금방금방 비워냈다. 신경은 온통 그 애한테 집중되어있었으며 밤하늘의 노란 달이 그런 민호를 구경하고 있었다.

 

 

 

진우야 너 맞지...? 나 경기 때

 

알고 있었어? 맞는데

 

 

 

그 뒤로 술과 함께 계속 털어내었다. 마지막으로 본 게 네가 들것에 실려 퇴장하는 모습이라 계속 걱정했었다고. 기사를 찾아보며 큰 부상은 아니라는 말에 안심도 되고 그런 위치에 있어서 고마웠다고. 가깝다고 착각정도는 할 수 있어서 다행이라며 뱉어내었다. 진우가 사온 술은 끝을 보이고 시간도 꽤 흘러 조금 남아있던 불빛들마저 서서히 줄어들었다. 떨어진 술이라도 사러 가자싶어 일어나려했다.

 

 

 

가지마...? 가지마

 

 

 

진우는 처연하게 민호를 바라보았다. 예쁘게 물든 양 볼과 목 늘어난 셔츠가 흘러 드러난 목선은 달빛을 받아 더 눈에 띄었다. 온기가 감도는 붉은 입술위로 키스를 하자 톡톡 튀는 탄산이 입안 곳곳에 남아있었다. 짜릿함이 온몸을 휘감았다. 뜨거워진 여름은 다시 식는 듯 하였지만 따듯할 수도 있다는 걸 왜 몰랐을까. 또 한 번의 뜨거운 여름은 시작되고 있었다.

 

 


Written By. Cherry (Twitter Account : @luvfourever)

'8월' 카테고리의 다른 글

Fan Art Part. 2 (Created by. 하지)  (0) 2018.08.26
Fan Art Part. 1 (Created by. 레슈아)  (0) 2018.08.26
한여름, 바다 (Written by. PARAN)  (0) 2018.08.26
Like, Like me more!! (Written by. MTR)  (3) 2018.08.26
Just 3 minutes, (Written by. Luver)  (0) 2018.08.26

Fan Art Part. 2 (Created by. 하지)
2018. 8. 26. 14:13




월간송진 8월호 Fan Art Part . 1

 

 

Created by. 하지 (Twitter Accout : @winner_hazi)

Fan Art Part. 1 (Created by. 레슈아)
2018. 8. 26. 14:12




월간송진 8월호 Fan Art Part . 1

 

 

Created by. 레슈아 (Twitter Accout : @1588_RSRS)

'8월' 카테고리의 다른 글

어바웃 썸머 (Written by. Cherry)  (0) 2018.08.26
Fan Art Part. 2 (Created by. 하지)  (0) 2018.08.26
한여름, 바다 (Written by. PARAN)  (0) 2018.08.26
Like, Like me more!! (Written by. MTR)  (3) 2018.08.26
Just 3 minutes, (Written by. Luver)  (0) 2018.08.26

한여름, 바다 (Written by. PARAN)
2018. 8. 26. 14:06

BGM  Acoustic Collabo - 너무 보고싶어





계절 하나를 보내는 일이 이렇게 어려울 줄이야. 진우는 이번 여름이 유달리 덥고 길게만 느껴졌다. 매미의 짝짓기가 올해 유달리 왕성했던 건지 아니면 기분 탓인지 매미의 울음소리는 여느 때보다 더 크고 강한 것 같았다. ‘소음이라는 단어에 그 이상이 있다면, 분명 이를 가리키는 걸 테다. 살결만 스쳐도 불쾌지수가 오르는 나날이었다.

 

이런 와중에 그는 서울을 떠나 동해로 가는 버스에 몸을 실었다. 날씨뿐만 아니라 엎친데 덮친격으로 주위 상황도 그를 괴롭혔다. 남들이 보면 도망치는 거라고 손가락할지도 모른다. 진우는, 가만히 핸드폰의 검은 화면을 보다가 주머니에 찔러 넣었다. 그리고 창문에 제 머리를 기대 눈을 감았다. 될 수 있으면 도착하기 전까지 눈을 뜨고 싶지 않았다. 끝이 없는 어둠에 추락할 깊은 잠을 원했다. 잠은 부족하지 않았다. 조금 우울할 뿐.

 

 

바다, 좋지. 단순히 내가 나고 자란 곳이라서 좋은 게 아니라 보기만 해도 시원하잖아. 아니, 소리만 들어도 시원한 거 같아. 가끔씩 나는 바다 수평선 끝을 한참동안 바라보곤 했어. 그걸 가만히 보고 있으면 근심, 걱정 사라지는 기분이 들거든.

 

 

누군가 제게 했던 말을 곱씹으며 진우는 모래사장 위를 거닐었다.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잡아둔 호텔이 아닌 해수욕장을 먼저 찾은 건 순전히 그의 의지였다. 어깨 위에 가방끈을 고쳐 매며 바다를 바라보았다. 수평선. 그가 한참이나 보았다던, 인간의 시각이 가진 한계점으로 바라본 바다의 끝을 바라보며 붉어지는 눈시울을 훔쳤다. 코가 어쩐지 따끔한 기분이 들었다. 진우는 아예 그 자리에 앉아버렸다. 바지가 더렵혀져도 상관없었다. 가능한 한 오랫동안 그 풍경을 눈에 담고 싶었다. 그가 어떤 기분이었을까. 그걸 느끼고 싶었다. 민호야. 진우가 작은 목소리로 부른 이름에는 물기가 어려 있었다.

 

 

 

한여름, 바다



w. PARAN

 

 


 

다음 날, 눈을 뜬 진우는 제일 먼저 고개를 틀어 옆자리를 확인했다. 민호가 떠나고 난 후 생긴 버릇이었다. 함께 있을 때는 그러지 않았는데, 사람은 참 이상하지. 소중한 게 없어져야 항상 뒤늦게 깨닫더라. 텅 빈 침대를 보며 진우는 공허함을 느낀다. 손을 뻗어 빈 공간을 어루만지다 몸을 일으켰다. 그런 감정으로 시작한 하루는 그 끝 또한 비슷하게 마무리 되었다. 아직 돌아오지 않은 정신을 굳이 잡지 않는다. 내버려둔다. 그렇게 진우는 몽롱한 시선으로 창밖에 보이는 바다를 한참이나 바라보았다.

 

무엇을 해야겠다는 의지가 생기면 그제야 움직인다. 자리에서 일어나 기지개를 켜고, 아침을 먹을지 말지 고민한다. 굳이 먹어야 할까는 의문이 생기면 아침 식사는 거기서 끝이었다. 요즘은 이런 식이었다. 입맛도 없는데다 먹어야 할 필요성도 느끼지 못했다. 인간의 생존이라는 본성 앞에서 그것을 따질 이유는 없지만 진우는 구태여 그 정당성을 찾으려고 했다. 식사를 하는 일뿐만 아니라 어떤 일을 하던 그랬다. 자격이 없다는 생각이 자꾸만 들었다. 자기도 모르게 멍한 상태에 있던 진우는 핸드폰 소리에 놀라 고개를 들었다. 승윤에게서 온 문자였다.

 

 

 

사흘이야. 내가 아무 말 안하고 버틸 수 있는 시간 말이야.

, 마음 잘 추스르고 돌아와.

 

 

 

진우는 자신이 무슨 일을 감행했는지 다시 한 번 깨닫는다. 할 수 있는 선에서 모든 스케줄을 정리하고 소속사의 연락을 무시한 채 동해로 내려왔다. 단 한 사람, 진우의 연인이자 그 의미 이상인 민호를 찾기 위함이었다. 승윤에게 고마웠다. 그는 이 일을 이해해주는 몇 안 되는 사람 중에 하나였다. 고마워. 짤막한 답장 후에 폰을 침대 협탁 위에 올려두곤 다시 침대에 몸을 뉘였다. 밤을 위해 잠을 잘 필요가 있었다.

 

민호는 절대 아침에 나타지 않는다. 그것은 한 치 의심도 없는 확신이었다.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자 진리지만 이 세계에서는 상상으로 치부되는 존재가 바로 민호였다. 인어, 상체는 사람이고 하체는 물고기의 형태를 하고 있다는 그 생명체. 그것은 민호를 가리키는 말이기도 했다. 그들은 사람들의 눈을 피해 평소에는 저어 깊은 심해 속에서 살고 있다고 했다. 그 중에는 분명 바다 생활에 이골이 나거나 육지가 궁금하기 마련이었다. 민호도 마찬가지였다. 바다 가까이 가지 말라는 어른들의 말을 귀에 못 박히도록 들어왔지만 누구도 그의 호기심을 꺾지 못했다. 그걸 계기로 민호는 진우를 만날 수 있었고, 진우는 민호의 손을 잡을 수 있었다. 그리고 민호는, 진우에게 모든 걸 내던졌다. 그의 세계 전부라고 할 수 있는 것을 진우에게 넘겨준 것이다.

 

진우는 성대 부근을 괜히 눌러본다. 그리움의 크기만큼 자기 자신이 너무 미워져 견딜 수가 없다. 억지로 잠을 청해보지만 쉽사리 들지 않았다. 몸을 뒤척이던 그는 침대가 너무 넓다고 느꼈다. 예전에 침대에 누웠으면 어땠더라, 하고 기억을 더듬어본다.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달거나 뜨거운 감정들이 떠올랐다. 귓가가 간지러웠고 입술이 부어오르는 느낌이다. 서로의 코를 비비던 부드러운 감촉도 떠올랐다. 또 다시 눈가가 따끔거린다. 열이 홧홧 오르는 것만 같다. 새하얀 베개에 얼굴을 묻었다. 진우야, 낮게 속삭이는 목소리가 들렸다. 환청, 분명 환청인데. 마음은 왜 이렇게 요동치는지 알 수 없는 일이다. 그를 만날 수 있는, 그래 만날지도 모르는 밤이 어서 오기를 바라며 진우는 다시 눈을 감았다.

 

 

 

***

 

 

 

나 왔어. 민호야.”

 

 

 

민호에게 들릴 리 없는 말을 바다를 향해 뱉는다. 진우는 아무도 없는 바닷가를 홀로 거닐며 그 주위를 맴돌았다. 민호가 여기 있을 거라는 생각은 무모한 것임을 잘 알고 있다. 그는 그 넓은 바다 속을 제 집처럼 누비는 인어다. 자신에게 단단히 실망해서 이 근처에 두 번 다시 돌아오지 않으면 어쩌지 걱정하면서도 한 편으로는 만나지 않을까 하고 기대한다. 두 사람이 처음 만난 장소이라는 사실은 진우가 이 곳을 찾은 이유를 설명하기에 충분했다.

 

수영을 하거나 일광욕을 즐기던 사람들은 떠나간, 작은 불꽃놀이를 하던 연인들도 모오두 떠난 이 바닷가에 오직 진우뿐이다. 나중에 바다 같이 오자고 했는데. 수영 배우기로 했잖아. 앞서니 뒤서니 하는 파도 소리를 가만히 귀에 담으며 신발을 벗어 한 손가락에 걸쳤다. 발바닥으로 느껴지는 축축한 모래의 감촉이 기분 나쁘지 않았다. 진우는 민호가 올지도 모른다는 작은 희망 하나로 그를 기다린다. 인간에 대한 경계가 심한 인어인 만큼 인내는 필수다. 멀리서라도 나를 보고 있을지 몰라. 진우는 잠깐이라도 좋으니 그가 얼굴을 비춰줬으면 하는 바람이었다.

 

 

 

이걸나한테 감히 줘도 되는 거야?”

그럼.”

?”

형이 나한텐그 정도로 소중하니까. 그걸 쉽게 줄 수 있을 만큼 소중해.”

 

 

 

잔뜩 갈라진 목소리로 민호는 제게 말했다. 민호가 진우에게 넘겨준 것은 그의 세계이자 전부인 목소리였다. 진우는 그날, 그의 품에 안겨 얼마나 울었던가. 민호는 그저 조용히 등을 토닥여줄 뿐이었다. 말로 다 못할 정도로 고맙고 고마웠다. 가수가 하고 싶었지만 형편없는 목소리 때문에 포기했던 지난날이 떠올랐다. 녹음한 목소리를 듣고 세상이 떠나가라 울던 중학생의 김진우, 꿩 대신 닭이라며 자조적으로 작곡가의 길을 택한 고등학생의 김진우, 후배 승윤에게 대학 가요제 곡을 써주고 그의 무대를 부럽게 바라보던 대학생의 김진우까지. 작곡가로서 성공은 했지만 진우는 만족할 수 없었고, 행복하지 못했다. 자기가 쓴 노래를 부르지 못하고 다른 사람들을 통해 대리 만족해야 했으니까. 단념에 가까운 감정만 느끼던 나날들이었다.

 

그런 와중에 슬럼프까지 와서, 피아노 앞에 앉아 있기도 힘들었다. 왜 하필이면 동해인지 그 이유는 지금도 모른다. 그 때는 딱히 소속사도 없던 때니까 누구에게도 구애 받지 않고 행동했다. 짐을 꾸리고 핸드폰도 껐다. 그렇게 도망치듯 내려간 동해에서 민호를 만났다. 인간 세상이 궁금했던 인어와 그런 세상을 피해 도망친 인간의 조우. 두 사람은 서로의 구원이었다. 진우는 사정없이 흠뻑 민호에게 빠져들었다. 민호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아직도 네가 인어라는 게 실감이 안나.”

어째서?”

이렇게 두 다리로 바다 밖을 나올 때면, 아까 수면 아래 있던 인어가 꿈같이 느껴져.”

지느러미를 안 만져봐서 그런가?”

그건 못 만지겠어.”

? 사실 이건 비밀인데. 형한테만 알려줄게.”

 

 

 

여긴 인어의 성감대야. 고개를 내려 귓가로 속삭이는 목소리는 틈이 벌려졌지만 여전히 진우에겐 낮고 야릇하기도 했다. 얼굴을 붉게 물들인 진우가 말을 더듬으며 민호 가슴팍을 밀었다.

 

 

 

, 이 ㅂ, 변태야!”

뭐가 변태인데. , 지느러미가 성감대다. 이거 이야기해서? 우리 사이에 이런 이야기도 못해? 무슨 생각을 했길래?”

무슨 생각은!”

변태는 아무래도 이쪽 같은데.”

뭐어?”

, 아파! 농담이지, 농담! 그럼 우리는 헤엄칠 때마다 느끼게? 이 형 어디까지 생각한, 또 때렸어! 항복, 항복!”

 

 

 

줄 끊어진 기타, 건반이 내려간 피아노처럼 민호는 변해버렸지만 두 사람은 여전히 서로를 사랑했다. 진우는 민호가 한 일이 후회 없을 선택이라 증명하고 싶었다. 너는 절대 동화 속 물거품으로 사라지는 인어가 아니라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 그런데 지금은. 주먹 쥔 손에 힘이 들어갔다.

 

시간은 12시를 넘어가고 있다. 오늘 민호를 볼 수 없다면, 내일 또 찾아오면 돼. 시간은 아직 삼 일이나 남았어. 긍정적으로 생각하려고 부단히 노력했다. 기약 없는 만남이지만 진우는 기다린다. 일말의 희망을 놓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일부러 바다가 보이는 곳으로 자리를 잡아 앉았다. 바람이 귓바퀴를 간질이고 지나갔다. 주위에서 쫑알거리는 모기 따위야 적수가 되지 못했다. 팔꿈치에 십자가를 내면서 그는, 한여름의 바다가 내는 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바다가 만약 인어들의 라디오라면, 민호와 똑같은 주파수의 채널을 듣고 있지 않을까 하는 엉뚱한 상상이 진우의 마음을 한결 편안하게 만들어주었다. 너무 보고 싶어. 무릎 위로 포갠 두 팔 위에 가만히 얼굴을 묻었다.

 

 

 

***

 

 

 

시간은 야속하게 흘러갔다. 내일은 승윤이 말한 사흘이다. 아직 만나지도 못했는데, 하고 싶은 말이 얼마나 많은데. 앙 다문 입술 위로 다급함을 짓눌렀다. 맨 정신으로 있기 힘들었다. 오늘 밤에는 만날 수 있었으면. 편의점에서 산 맥주 캔이 시원한 소리를 내며 입을 벌렸다. 목구멍을 타고 내려가는 액체가 오늘따라 더 따끔하게 느껴졌다. 무거워진 마음을 파도 소리에 묻어본다. 검은 봉지 속에 담긴 맥주가 서로 얼굴을 내밀었다. 표면 위로 매끈하게 물이 흘러내렸다. 진우는 작정하고 취기가 오를 만큼 잔뜩 집어넣었다. 아무도 없으니 진상을 부려도 괜찮을 거라는 합리화를 했다.

 

캔을 흔들어 얼마나 남았는지 그 양을 가늠한다. 얼마 남지 않았다. 캔 하나 정도야 거뜬하게 비워낸다. 아무렇게나 구겨 봉지에 대충 찔러 넣었다. 그리고 새로운 캔을 꺼내 다시 뚜껑을 열었다. 밤낮을 바꿔 생활하는 것보다 두 번 다시 볼 수 없을 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더 힘들었다. 늘 주머니에 넣고 다니던 키링을 꺼내 손가락으로 위에서부터 아래로 천천히 쓸었다. 진우의 머릿속은 민호가 사라지던 날을 어렵지 않게 그려냈다.

 

 

 

내가 너랑 같이 있기 싫어서 그런 거 아니잖아. 스케줄이 계속 잡히는 걸 어떡해. 잠깐만, 잠깐이라도 날 귀찮게 하지 않으면 안 되는 거야? 너마저 날 힘들게 하면 어쩌자는 거야. 성가시게 하지 마, !”

?”

 

 

 

이젠 형에게 난 귀찮은 존재구나. 내뱉은 말을 주워 담을 시간도, 아차하는 표정을 지울 새도 없이 민호는 조용히 제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피곤함은 많은 것을 합리화하게 만든다. 당장 눈앞의 일도 없는 것처럼 가리기도 한다. 진우는 닫힌 문을 잠깐 바라보다 지끈거리는 관자놀이를 세게 눌렀다. 피곤하고 기운이 없는데다 입씨름까지 해서 속이 상했다. 늘어난 스케줄로 민호와 함께 보내는 시간이 자연이 줄어든 탓에 민호가 쌓인 섭섭함을 알고 있었다. 내일 말하면 되겠지. 진우는 감정이 누그러지길 기다리며 또 피곤함이 가시길 바라며 먼저 몸을 뉘었다.

 

아침에 눈을 떴을 때 진우는 어이없는 웃음을 흘렸다. 침대 옆 자리는 애초에 아무도 없는 것처럼 허했다. 민호의 냉랭한 태도는 처음이었다. 당황한 것도 잠시 그것도 이해 해주지 못하냐는 섭섭함이 들었다. 송민호 너만 화난 줄 알아? 아침 식사도 생략하고 집을 나섰다. 그리고 일정을 마치고 다시 돌아왔을 때, 민호는 없었다. 그걸 단순히 외출 했겠지. 밤이 되면 어련히 들어올 것이라 여긴 진우였다. 누가 이기나 보자 하는 오기와 고집이 남아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민호는 돌아오지 않았다. 하루를 넘기고 반이 지나서야 그가 영영 떠났음을 깨달았다. 그것은 확신에 가까운 직감이었다. 그렇지 않고서야 세상에서 자신의 존재를 지운 것처럼 굴 리 없다. 민호는 제게 받은 것은 물론 -목소리를 제외하고- 주었던 것도 전부 두고 떠난 것이다. 그의 작업대 위에 남겨진 미완성된 키링을 발견한 진우는 그걸 붙잡고 엉엉 울었다. 간다는 인사도 편지도 없었다.

 

 

 

민호야, 얼굴 한 번만 보여줘. 돌려주고만 갈게. 다른 거 안 바래.”

 

 

 

바다를 향해 소리 질렀다. 그동안의 인내와 그리움, 울음 따위가 모두 섞인 감정 어린 형태였다. 무심코 세게 쥔 캔에선 맥주가 흘러넘쳐 손을 잔뜩 적셨다. 이상한 용기가 생겼다. 어디서부터 솟아난 건지 알 수 없었다. 자리에서 일어난 진우가 성큼성큼 바다로 발을 내딛었다. 민호야. 발목을 적신 물은 점차 위로 올라와 무릎, 허벅지, 허리를 차례로 올라탔다.

 

 

 

민호야, 어디 있어. 어디. 도대체 어디 있어.”

 

 

 

밖은 위험하다고 했잖아. 항상 나랑 손잡고 나가기로 약속했잖아. 얼굴은 눈물로 엉망이었다. 터진 감정은 수습할 수도 없이 계속 커지기만 했다. 내가 정말 미칠 것 같아서 그래. 겁도 잡아먹었는지 진우는 계속해서 앞으로 나아갔다. 바다는 잔잔해 보이지만 결코 친절한 존재는 아니다. 바다 속의 모래가 경사로 반듯하게 있을 거라는 생각은 바다를 몰라도 한참이나 모르는 사람이다. 동해 바다는 푸른 빛깔을 가진 외양과 달리 내면은 거칠었다. 한 발짝 차이로 물의 수위가 달라질 정도로, 수면 아래의 세계는 바닥이 쑥 꺼지는 느낌이 들자마자 그대로 밑으로 미끄러졌다. 한 발 전까지만 해도 분명 어깨까지 오지도 물에 빠지자 당황한 진우가 급히 발을 저었다. 움직이면 움직일수록 나오기는커녕 숨 쉬기만 힘들었다. 누군가 발목을 잡아당기는 것만 같았다. 안돼, 안돼. 허우적거리는 손은 점차 둔해지더니 정신마저 아득해질 지경이었다. 이대로 죽는 걸까. 잠깐 스친 생각과 동시에 몸이 제멋대로 위로 솟았다. 허리를 감싸는 단단한 두 팔은 잊을 리가 없는, 진우가 제일 잘 아는 감촉이었다.

 

 

 

***

 

 

 

지난 25, 강원도 동해 한 해수욕장에서 실족 사고가 발생 하였습니다. 다행히 별다른 인명 피해는 없지만 피해자가 유명 가수 A씨로 알려지면서.

 

 

 

더 이상 들을 가치도 없다는 듯이 승윤은 리모컨을 들어 텔레비전을 꺼버렸다. 진우는 들고 있던 포크를 들어 보기 좋게 잘라둔 복숭아를 찍어 내렸다. 제철 맞는 백도 복숭아는 적당히 말랑했고 달았다.

 

 

 

왜 꺼?”

왜 끄냐니. 그걸 말이라고,”

난 괜찮은데.”

괜찮기는 무슨!”

 

 

 

승윤이 입술을 삐죽였다. 이 형은 왜 이렇게 태평하담. 진우의 사고 소식을 듣자마자 진우의 매니저와 함께 제일 먼저 동해로 내려왔다고 했다. 진우는 승윤에게 한바탕 잔소리를 듣고 나서야 다시 침대에 몸을 뉘일 수 있었다. 정신이 들고 나서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온 건 바닷가가 아닌 응급실 천장이었다. 어떻게 해서 이 곳에 오게 되었는지 서에 물었더니 공중전화 신고라고 했다. 어떤 남성분께서 공중전화로 신고해주셨어요. 현장에 도착했을 땐 아무도 없었고요. 진우는 그 신고자가 민호라고 확신했다.

 

 

 

, 퇴원하고 바로 서울 올라가는 거지?”

?”

서울, 안 가?”

가야지.”

 

 

 

이대로 그냥 떠날 것인가. 분명 민호였다. 물속에 빠진 진우를 구했다는 건 가까이 있었다는 말이기도 했다. 어쩌면 그 사흘 동안 제 주변을 맴돌았지 않았을까. 만약이라는 가정이지만 혹시나 그렇다면, 진우는 심장이 터질 것만 같았다.

 

 

 

근데, 승윤아. 지금은 못가.”

못 간다니?”

할 일이 남아있어서. 그것만 해결하고 빨리 올라갈게.”

알았어.”

 

 

 

그 말에 도리어 놀란 사람은 진우였다. 말릴 거 같아서 무슨 말을 할지 머릿속에 정리하던 참이었다. 앉아있던 승윤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스케줄을 미루고 동해까지 왔다고 했었다. 미안함 반, 고마움 반으로 진우는 승윤이 가는 길을 배웅했다. 좀 힘들겠지만 저번에 말한 대로 난 형이 맘 잘 추슬렀으면 좋겠어. 진우는 그저 나중에 밥 여러 번 살게라고 대답할 뿐이었다.

 

그를 보내고 난 후 진우는 베게 밑에 둔 키링을 꺼내 한참이나 들여 보았다. 정신을 차리고 제일 먼저 찾은 건 민호였고 두 번째는 키링이었다. 퇴원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을 테다. 진우는 퇴원을 하면 제일 먼저 할 일을 곰곰이 생각했다. 역시나 바다인건가. 포기하기 싫었다. 아직은 포기할 수 없었다.

 

유리창에 반사된 햇빛이 키링의 표면을 부드럽게 만졌다.

 

 

 

 

 

 

 

*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Written By. PARAN (Twitter Account : @something_cloud)

'8월' 카테고리의 다른 글

어바웃 썸머 (Written by. Cherry)  (0) 2018.08.26
Fan Art Part. 2 (Created by. 하지)  (0) 2018.08.26
Fan Art Part. 1 (Created by. 레슈아)  (0) 2018.08.26
Like, Like me more!! (Written by. MTR)  (3) 2018.08.26
Just 3 minutes, (Written by. Luver)  (0) 2018.08.26

Like, Like me more!! (Written by. MTR)
2018. 8. 26. 13:59

Like, Like me more!!





w. MTR


 

 

 

 

하릴 없이 느긋하게 시작하는 아침은 참으로도 소중한 것이다. 이미 한바탕 샤워까지 마치고 환복을 마친 그가 창문 앞에서 묵직한 커튼을 치워내자 이내 쨍한 햇빛이 한 번에 피어올랐다. 주말은 그렇다. 따로 일이 없는 날이다. 딱히 예정도 정해져있지 않았고, 오늘은 그저 의식이. 아니면 기분이 허락하는 대로 지내더라도 그 누구도 무어라 할 수 없는 날이었다. 유달리 날이 좋은, 온도도 적당한 기운에 창밖을 바라보고 나서 등을 돌려 느긋하게 차분한 미백색의 거실을 가득 채운 고운 빛을 따라가면 어느 새인가 아직 깨어나지 않은 검은 시트 위에 도달할 수가 있었다. 참새가 울음을 울리며 아침을 알렸거늘 여전히 고운 눈꺼풀을 들어 올릴 생각이 없어 보이는 어린 연인을 내려다 보다 이내 가볍게 하얀 볼을 찔렀다. 진우야. 그러면 이름이 불린 연인은 그 검은 시트 안에서 으으응, 하고 작은 잠꼬대를 울리며 몸을 뒤척거렸다. 창밖의 새의 울음에는 아침이 따라오건만 진우는 눈을 뜰 생각이 전혀 없어보였다. 김진우, 일어나자. 다시 한 번 깨우기 위해 손을 뻗은 순간에 도리어 손목을 꼭 잡혔다.

 

더 잘... , 더 잘 거야아.”

아침이야.”

, 아침... 안 머거어. 으응. 자요오.”

혼나.”

안 혼나...“

 

어리광을 그득그득 묻힌 채로 웅얼거리는 목소리에 웃음이 터졌지만 조금 참고서 엄하게 이야기를 해도 아랑곳하지 않고 아이 같은 티를 내고야 만다. 아니, 아이는 맞지만. 저보다 한참이 어린 연인은 머리에 부스스 까치집을 짓고 눈도 뜨지 않은 채로 저를 침대로 다시 끌어들인다. 주말의 아침. 어쩌면 다른 아침에도 늘 이런 날이 많았지만, 오늘은 구태여 진우를 깨워야 할 필요는 없었다. 연인의 말대로 아침을 먹지 않아도 그만이었고 하루 종일 침대에서 나오지 않는다고 하여도 나태지옥으로 끌려갈 일상이 있는 것은 아니었으니 말이다. 검은색에 그대로 묻혀 나올 생각이 없는 진우의 허리를 꽉 안은 송 선생은 천천히 그 머리카락 사이에 코를 묻었다. 같은 샴푸를 쓰고 잠에 들었을 터인데 솔솔 분내가 풍기는 것만 같았다. 제 침대에, 제 집에 제일 어울리지 않을 향이었지만 그것이 퍽 나쁘지는 않았다.

 

더 자...”

잠 다 깼어.”

아냐아... 같이 자면, ... 잠이 코, 올 거야아.”

잠꾸러기.”

... 진우 잠꾸러기 맞으니까아.”

 

얼른, 꼬옥 더. 여전히 눈을 열어 마주 볼 생각이 없어 보이는 진우의 말. 옹알거리는 입술을 내려다보다 그 말대로 꽉 안았다. 기분이 좋았다. 간질간질하게 타고 올라오는 그 체향이며 어린 체온에 온몸을 내맡기고 눈을 감았다. 아침잠이 많아질 것 같았다.

 

 

**

 

 

어제는 모처럼 제 동창을 만나고 온 터였다. 예전부터 가능하다면 함께 하자고 했던 그 휴가가 겹치게 될 것 같다는 말에 계획을 세우기 위하여 만날 것을 제의하였고, 가볍게 저녁 자리가 마련된 것이다. 같은 고등학교 출신으로 연예계에 몸을 담고 있었지만, 이제는 거기에 더하여 날고 긴다는 기업가의 연인이 되어버린 동창. 유달리 진우가 그를 잘 따르는 터라 약속이 잡히면 늘 같이 향하는데, 어제는 또 그 기업가와 신경전이 대단했다. 분위기가 썩 괜찮은 레스토랑. 거기에 어울리도록 송 선생이 직접 스타일링까지 해서 데리고 갔건만 진우는 동창의 옆에 붙어서 한사코 떨어질 줄을 몰랐다. 이렇게 되어서야. 묵직한 수트를 걸치고 있는 그의 연인은 온 신경을 곤두세우고 진우를 주시하고 있었다. 조잘조잘 아기 새처럼 떠들기 바쁜 상기된 얼굴. 조금의 알코올이 함께한 자리였지만, 진우의 신분은 고등학생. 오늘도 눈을 빛내며 진우도... 라고 동창을 곤란하게 한 탓에 송 선생도 그 연인도 쓰읍, 하고 혼내는 소리를 냈기에 한 방울의 알코올도 진우가 마시던 주스에는 들어가지 않았을 것인데.

 

그래서어, 진우가. 형아가 저번에 나온 거 따라 하구 싶어서!”

, 그랬어?”

. 근데에, 성샌님이 그거 하아아나도 못 하게 했어요. 진짜아, 완전 심하지. 그치.”

꼬맹이니까 그렇지.“

나 지짜, ? 지누 나중에 대따시 커서 이따아만큼 커서 아저씨 막 내려다 볼 거야아.”

꿈은 자유라고 했으니 힘내라.”

! 아아! ! 화나아. 아저씨 지짜, 지짜 시러!“

 

내가 언제. 애초에 네 키에 그게 어울릴 리가 없잖아. 패션잡지의 표지를 으레 장식하곤 하지만 이번에도 어김없이 동창이 등장한 것을 발견하자마자 서점에서 가볍게 떼를 쓴 탓에 사준 잡지. 그걸 보고서 온 옷장을 다 뒤집어서 혼쭐을 냈을 뿐이건만. 송 선생이 영문을 모른다는, 조금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짓고 옆구리에 찰싹 붙어서 떨어질 줄을 모르는 진우를 바라보니 그것을 예의주시하는 그 연인도 썩 좋은 얼굴은 아니었다. 슬슬 떨어트려야 하나. 그런데 저렇게 좋아서 눈에서 빔이 나올 것처럼 조잘거리고 있는 진우를 어떻게 그냥 떨군단 말인가. 물론, 저쪽에 앉아계신 전무님 눈에서도 다른 의미로 빔이 나올 것 같고, 제 눈에서도 빔은 얼마든지 나올 것 같지만. 고개까지 주억거리며 다정한 눈빛으로 하나하나 말을 들어주고 있는 동창과 진우를 번갈아가며 보다 보면 참, 저렇게 좋을까 싶기는 했다.

 

그러게, 선생님이 나빴다.”

그치이. 아아니, ? 지누가 쪼옴. 방을 쪼오금 어지르기는 했거든요오.”

 

조금 같은 소리 하네. 온 옷장을 다 뒤집고 거기에 더해서 제 옷까지 꺼내서 걸친 탓에 그걸 다 수습하느라 진우를 재우고 나서도 한참 잠에 들지 못했는데. 물론, 어지른 사유에 3할쯤은 본인 탓이 있었지만 말이다. 송 선생은 조잘거리는 진우의 목소리가 마치 배경 음악이라도 되는 것처럼 들으며 앞에 놓인 커피를 들어 호로록 마시고 속으로 딴죽을 곱게 걸었다. 고상한 클래식은 아니더라도 재즈 정도는 어울릴 법도 하네. 지금 저 상대에게 어울리는 음악을 고르라면 뭐, 전쟁의 서막을 알리는 음악이라도 깔아야 할 것 같았지만 말이다.

 

어지르니까 혼나지.”

! 아저씨는 조용히! ! 지누 지금 아저씨랑 얘기 안 해애.”

“...“

지짜. ? 아저씨도 그렇구 성샌님도 그렇구 완전. ?“

완전 뭐.”

저질.”

 

. 머금었던 액체를 그대로 내보낼 것 같은 인생의 위기를 맞이한 송 선생은 본인의 사회적 이미지와 장소를 생각해서 꾹 참았지만, 동창과 그의 연인은 그러하지 못했다. 반듯하게 머리를 넘긴 이마에 곱게 솟아난 힘줄. 도매 급으로 묶여서 저질에 카테고라이징을 당한 송 선생도 이마에 힘줄이 돋을 것 같았다. 물론, 저 눈치를 삶아먹은 눈새, 아니. 망아지가 제 동창에게 여러 의미로 재앙(인지 아니면 저 연인에게 좋은 일인지는 잘 모르지만)을 물어다 주는 꼴이야 그의 연인을 통해 간혹 보고를 받은 터라 알고 있었지만, 저 입을 타고 나오는 당당한 저질 소리에는 영 면역이 어려웠다. 저에게 하는 것은 숱하게 들어 익숙한 터였지만, 굴지의 기업가가 아닌가. 간이 큰 건지 부은 것인지 구분이야 어려웠지만, 송 선생은 슬슬 이 분위기를 풀어야 할 것 같은 숙명감에 짓눌리기 시작했다. 저거 봐. 송 전무 눈에서 빔이라도 쏠 기세잖아. 저 망아지 좀 어떻게 해 보세요. 직장 상사도 아니건만 그것이 상사의 눈빛과도 비슷하게 느껴졌다.

 

내가 왜 저질이야.”

저질. ? 진우는 다 알아! 쩌번에 형아가아, ? 막 일도 하구 해야 하는데!”

“...얘기했어요, 저 꼬맹이한테?”

, 아니요. 전무님, 그게...”

저질! 대왕저질! 상저질! 송 씨들 다 저질이야아.”

 

고삐 풀린 망아지라는 것은 이럴 때 쓰는 말이 아닐까. 얄밉고도 얄밉게 동창의 옆구리에 쏙 매달려서 송 전무를 향해 당찬 눈빛을 날리고 있는 망아지, 아니 진우의 모습에 송 선생은 정말로 저 녀석의 주스 잔에 알코올이라도 집어넣은 것이 아닌지 레스토랑의 바에 가서 물어보고 싶었다. 물론, 이번에도 송 씨들로 카테고라이징을 당한 것은 도저히 그냥 넘어갈 일은 아니긴 하지만 말이다. 동창의 앞에 놓인 커피 잔이 그 송 씨들이 뿜어내는 기백으로 흔들릴 기세였다. 김진우. 그렇게 이야기하니 한참 으르렁거리며 송 전무를 쏘아보느라 눈치도 채지 못하고 동창의 허리만 더욱 꼭 안는다. 저러다가 진짜, 레스토랑이 무너지고 말지. 열일곱 살이랑 눈싸움을 하는 서른 살의 송 전무도 그 나름 쏘아보고 있지만, 송 선생으로서는 저 대단한 남자와 하나 지지 않고 눈을 마주보고 있는 진우도 대단하다고 느껴졌다.

 

어려서 그러잖아요.”

맞아! 지누는 어려서 그래!”

저게 어딜 봐서 어립니까. 열일곱이면 세상 돌아가는 꼴은 다 알고...”

아저씨는! 태어날 때부터 아저씨였으니까아!”

김진우, 이리 와. 그만해.”

시러어.”

“...화내시면 안돼요?”

참고 있습니다.”

 

태어날 때부터 아저씨였다는 말에 정말 잠깐 웃음이 터질 것 같았다. 평소에는 횡설수설하며 제가 하는 말의 앞뒤가 영 맞지 않는 진우이거늘 어디서 저렇게 달변가가 되어 온 것인가. 한 마디도 지지 않고 내뱉는 것은 꼭 용맹한 토끼,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다. 상대가 제 천적인 육식동물임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그래도 아저씨 소리는 듣지 않으니 다행이라고 생각해야 하는 것일까. 이리 오라는 송 선생의 말에도 꼼짝하지 않고 볼을 잔뜩 부풀린 진우의 얼굴은 그야말로 지금 대왕저질 상저질의 손에서 제가 형을 지키기라도 하겠다는 기세였다. 대체 둘이서 무슨 이야기를 주고받았기에 저렇게 대왕저질이라 입에 담고 있는 것인가.

 

이리 와. 혼나. “

저질한테 안 혼나아.”

김진우.”

혼내지 말고 얘기해. 진우도 알 거야.“

, 아아. ! 진우 진짜아, ? 형아 제일 조아.”

 

꼬오옥. 무리 중에 제일 조그만 진우는 그 말에 아주 좋아서 더욱 세게 동창의 허리를 끌어안고 놓을 생각이 없다는 듯 이제 품에 고개까지 묻어버렸다. 저것이 동경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사실 조금 질투가 나는 것은 어쩔 수가 없었다. 송 선생의 훈련과 참교육의 결과로 아무 사람에게나 접촉하지 않는 진우였지만 제 동창은 그 예외였다. 뻑하면 형아 너무 좋아, 하고 저렇게 매달려서 떨어질 줄을 몰랐으니. 세 명의 서른 살 사이에서 아직 주민등록증도 나오지 않은 진우는 늘 이렇게 제가 좋아하고 동경하는 연예인 형의 옆에서 개인적인 팬미팅을 갖는 것이다. 거기에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연인, 아니 매니저가 동행하고 허튼 짓을 하지 않게 보호자로서 참가하는 것이 마치 송 선생인 것처럼. 무슨 거의 존재감이 지워지는 수준이었다. 형아 제일 조아, 하면서 옆구리에 답삭 안겨서 쫑알거리는 아기 새와도 같은 진우를 쓰다듬는 눈빛. 그것에 꿈틀한 것은 비단 저 뿐만이 아니리라.

 

“...해결 좀 하시죠, 선생님.”

불러도 안 오는 것을 제가 어떻게 합니까.”

망아지 고삐가 느슨해진 것 같습니다만.”

아 완저언, 자기는 어? 마악. 고삐가 아니라 다른 것두 막 풀렸으면서어. 진우한테 자꾸 망아지래애.”

김진우 그만. 이리 와 빨리.“

 

평소 같으면 허리가 부러지고 싶냐, 아니면 내일 걷기 싫으냐 으름장이라도 놓을 것이지만 장소가 장소인지라 그렇게까지 입에 담지 못하는 것이 참 아쉽기도 했다. 물론 서로의 관계에 대하여 알고 있는 이해관계인이라고 할지라도 송 선생까지 진우의 입에서 나오는 송 씨들 전부 저질에 포함이 되지 않도록 지키고 있는 것이다. 게다가 저렇게 아무렇지 않게 고삐가 아니라 다른 것이 풀렸다니. 대체 저 어리고 작은 제 연인이 어디까지 막나가는 것인지 내심 궁금하기도 했다. 저 정도라면 어디 가서 함부로 남이 시비를 걸고넘어지더라도 이길 수 있지 않을까. 그러나, 여기서 더 진행을 시킨다면 일단 제 인내심이 남아나지 않을 것 같았다. 김진우. 송 선생은 다시 한 번 힘을 주어 진우를 불렀다.

 

왜 자꾸 불러어.”

이리 와. 얼른. 선생님 옆에 와서 얌전히 있어.”

나 형아 옆이 좋아요.”

 

꿈틀, 하고 송 선생 인내심의 선도 움직였다. 문제는, 진우 외의 나머지 두 사람만이 그것을 읽어냈다는 것이지만.

 

혼나.”

안 혼나아.”

“...내일 토요일인거 알고 그러지, 김진우.”

푸흡.”

, ! 지누 다 몰라아. 형아아, 지누 성샌님 무서워. 오늘 형아 집에서 자면 안대요? ? 으응? 네에?”

 

절대 안 돼. 그 말은 이번엔 정말이지, 송 씨들 입에서 합창처럼 나왔다. 여전히 난처한 기색 반, 울먹거리는 눈동자에 차마 대답을 바로 하지 못하는 마음 반으로 진우와 송 전무, 그리고 송 선생을 번갈아가며 바라보는 동창은 이야기를 하지 못했지만. 목소리 톤도 비슷한 둘이 내뱉은 말에 진우는 정말 울기 직전처럼 표정이 변해버렸다. 형아아. 어리광이며 애교가 잔뜩 녹아든 목소리에 또 다른 의미로 송 선생은 조금 더 험악한 기운을 휘어 감았다. 저렇게 애절하게 부르는 거는 뭔데. 저한테는 죽었다 깨어나도 형이라고 안 하려고 해서 억지로, 그리고 몸으로 손수 나서야 부르면서. 아주 둘 사이에서 퐁퐁 꽃잎이라도 날릴 것 같았다. 이제 아저씨라고 부르지 않는 것만으로 다행이라고 여기는 때는 지났다. 무력행사를 해서라도 저 고삐 풀린 망아지를 손수 회수하여야 했다.

 

시러어!”

말 들어.”

히잉, . 지짜. 지누 막 어, 험하게 다룰 셈이지!”

 

결국, 뒷덜미를 잡혀서 송 선생의 곁에 끌려온 진우는 억울하다 못해 입이 댓발로 나와서 장소와는 제일 어울리지 않는 말을 꺼내면서 떼를 쓰고야 말았다. 민폐의 선을 적절하게 넘지 않은 것이 다행인가, 이렇게 얼굴을 마주하고 있는 공간이 조금은 프라이빗한 개인실인 것에 감사를 해야 하는 것인가. 송 선생의 입에서 한숨이 흘러나오자 진우는 또 울먹거렸다. 그 틈에 동창을 도로 손에 넣은 그의 연인도 조금은 분노를 삭였는지 여유롭게 커피 잔을 들어 올렸고, 그 동창은 여전히 조금 곤란하다는 얼굴로 웃었다. 너 험하게 다루는 거가 뭔지는 알고 그렇게 얘기 하냐고.

 

“..., 야한 만화 처러엄. 으읍.”

진짜 망아지가 따로 없네.”

, 하하...”

 

더 입을 열지 않게 송 선생의 손이 진우의 입을 기어코 틀어막고야 말았다. 그렇게 겨우 망아지를 진정시키고 나서야 조금은 어른스러운 대화가 테이블을 감돌았다. 같이 여행이라도 가보자고 했던 것. 그것에 연관되어 있는 장소나 숙박에 대한 이야기, 맞춰야 하는 동창과 전무님의 바쁜 일정. 대충 윤곽이 보이기 시작한 휴가의 일정은 가벼운 것이었다. 음료 위에 얹어진 생크림을 폭폭 퍼서 먹던 진우도 그 이야기에는 귀를 기울였다. 무엇보다 좋아하는 형과 함께 휴가를 보낼 수 있는 찬스가 아닌가.

 

진우는 바다가 좋아.”

바다? 그럼 어디, 리조트 같은 곳도 괜찮겠다.”

살이 타기라도 하면 촬영에 지장이 생길 텐데요.”

준비는 잘 해야죠. 그리고... 저렇게 좋아하는데요.”

형아랑 바다! 지짜 좋아. 그리구, 맛있는 거두 막 먹구. 재미있는 거 보구!”

수영은 할 줄 아냐. 꼬맹이.”

, 아저씨는 계에에속 그대루 잠겨서 바다에서 살아! 그러엄 지누는 형아랑 같이 갈 거야아.”

저 꼬맹이가 진짜.”

“...수영은 뭐, 튜브라도 하나 주죠.”

맞아요, 전무님. ? 진우 튜브 탈거지?”

! 형아랑 같이!”

 

여전히 사소한 이야기에서도 신경전을 벌이고야 마는 진우와 송 전무 탓에 이야기를 진척시킨 것은 결국 두 동창들의 몫이었다. 남은 것은 일정을 더 맞춰보는 것이라며 휴가에 대한 이야기가 마무리가 되었다. 간혹 조금 계획에서 어려운 단어가 나오면 넷 중에서 제일 나이도 어리고 지능도 어린 진우는 홀로 이해를 하지 못해서 재미없다며 송 선생의 옆구리를 찔러도 보고 그 다음에는 몽글몽글 온도차로 물방울이 맺혀있는 제 몫의 달달하게 생크림이 잔뜩 올라가있던 음료가 담긴 유리컵을 만지작거리다 살며시 커피 잔에 손을 뻗기도 했다. 쓰읍, 하고 못 마시게 한 탓에 이거 술 아니잖아! 하고 억울함을 토로하는 것은 당연한 것. 거기에 더해서 송 선생에 대하여 실컷 찡찡거리고 싶은데 무서운 기백을 뿜어내는 송 전무 덕분에 손을 뻗지 못하는 동창 대신 제 허리를 끌어안고 매달려서 지누 졸려, 하고 입에 담기 시작했다는 것이 문제였지만 말이다.

 

슬슬 일어나야겠네. 진우 졸려서 눈 풀렸다.”

... 졸립구, 이거 하나두 모르구. 커피도 막, ? 못 마시게에... 하구.”

머리 나빠진다. , 나빠질 머리도 없었나.”

아저씨 지짜 확, 확 그냐앙... 지짜. 경찰 부를거야아.“

 

동창의 말대로 정말 눈이 반쯤 풀려서 하품까지 쏙 하면서도 그 연인에게는 절대 한 마디도 지지 않는 진우는 이제 존경스러운 지경이었다. 자리에서 일어나면 품에 쏙 안겨서 한참 하품을 하고 겨우 걸어 나오고 나서 서로 정해진 목적지를 가기 위해 헤어지는 순간에는 눈도 똑바로 뜨지 못하는 주제에 찡찡, 잔뜩 홀로 억울함을 담아서 나 형아랑 같이 갈 거야! 하고 나서는 통에 품에 데려와서 안으면 아직 세 사람 보다는 한참 작은 진우는 금방 쏙 자취를 감출 정도로 안겨버린다.

 

다음에 집에 놀러와. 알았지?”

, 오늘두 가구 싶은데...”

다음에 오면 형이랑 같이 옷도 고르자. 진우 좋아하는 거로.”

지짜아?”

.”

 

약속, 하고 새끼손가락을 내미는 진우에게 동창은 해사하게 웃으면서 약속까지 해줬다. 착하다. 그렇게 이야기하면 진우도 마찬가지로 환하게 웃었다. 그리고 아, 하더니 또 발돋움을 해서 그 귀에 작게 무어라 속삭이는 것이다. 들리지는 않게. 아주 작게 동창의 눈빛이 흔들리는 것을 캐치하지 못할 송 선생이 아니었지만, 저 뒤에 서서 품에 안긴 진우를 보고 절레절레 고개를 모로 흔드는 그 연인에게 썩 나쁘지는 않을 일일 것 같아서 입을 다물었다. 바깥 공기가 다가오는 여름을 휘어 감았기에 얼굴이 달아오른 것으로 탓을 돌리면 되리라. 들어가 보자며 인사를 나누고 집으로 가는 택시. 그 안에서 작게 코까지 도롱도롱 골면서 잠에든 진우를 보면, 아주 가끔이지만 제가 하는 것이 연애인지 아니면 육아인지 모르겠다는 기분도 들었다. 전혀 싫지는 않았지만. 오히려, 너무나도 신선할 정도였다.

 

으응, 하지마아...”

뭘 하지 마.”

그거, 지누 거... , 안대애.”

 

어깨에 폭 기대서 잠꼬대를 하는 모습에 운전을 하던 택시 기사도 흘끔 뒷좌석을 보았다. 저 눈에 어떻게 보일까. 진우가 어린 동생으로 보일까, 아니면 제대로 연인 사이로 보일까. 아직 누가 보아도 솜털이 보송하게 올라온 열일곱과 세상 이치를 다 깨달아버린 서른. 누구에게도 바로 사귀는 사이다.’하고 털어놓기 어려운 것은 잘 알지만 전자로 이해를 받는다면 썩 기분이 유쾌하지는 않을 것 같았다. 아파트 앞에 선 택시에 값을 지불하고 내리자 다시 후끈한 열공기가 닿았다. 그래도 썩 나쁘지 않은 밤이라고 생각했다.

 

진우야.”

으응...”

걸을 수 있어?”

 

도리도리. 품에 여전히 안겨있는 진우에게 물어보면 고개를 젓는다. 그리고 두 팔로 송 선생의 허리에 꼭 매달려서 떨어지지 않으려 힘을 더욱 넣는 행동. 어쩔 수 없네. 송 선생은 아주 잠시 진우의 팔을 풀었고, 이내 그 몸을 들어올렸다. 두 팔을 목에 감게 하면 꼬옥 안아서 목덜미에 고개를 묻어버리는 진우. 그것에 대롱거리는 두 다리를 지탱했다. 열두 시의 신데렐라가 왕자의 품에 안겨서 성에 들어간다면 이런 모습일까. 물론, 저는 왕자라고 자처하기에는 뻔뻔하지 않았지만 말이다. 오히려 진우가 왕자라면 왕자이지 않을까. 지금은 공주에 가깝지만 말이다. 화려한 성문이 아닌 현관문을 열고 들어가 스탠드만 켜두고 침대 위에 올려 눕히면 그 공주는 눈을 살며시 뜬다.

 

더 자.”

, ... 안 자아. 씻구... 그리구, 성샌님이랑 다른 거어...”

정신도 못 차리면서.”

아냐아... 차릴 거, 니까아... 으응? ? 얼르, ...”

 

정신 차리게 뽀뽀오. 잠결 섞인 애교가 잔뜩 묻은 말투에 결국, 입술을 내려주었다. , . 간지러운 소리가 방을 채우면 진우는 목을 더 끌어안았다. 가벼운 입맞춤이 짙은 것으로 색을 바꾸는 것은 금방 일어나는 일이었다. 이내 공기가 점점 달아올랐다. 침대에 폭 처져있던 진우의 두 다리가 허리를 휘어 감으면 입술이 목덜미를 타고 내려갔다. 그것이 못내 아쉬워 또 다시 뽀뽀, 하고 조르면 부리가 스치는 것처럼 가볍게 내려오는 것에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얘기 안 하면 몰라. 오늘 곱게 입혀준 셔츠 단추를 하나하나 풀어 내리면서 부러 장난이라도 치듯 짐짓 진지하게 내뱉으면 진우는 제 쪽에서 알아서 고개를 올렸다, 혀끝으로 문을 두드리는 것처럼 간지럽히는 작은 움직임. 마지막 단추가 풀려나갈 때는 혀가 얽히고 얽혀 반대로 풀어내기가 어려웠다.

 

호흡이 벅차오르는 밤이었다고 기억했다. 욕실에서 씻고 같은 샴푸로, 같은 바디워시로 온몸을 적시고 나온 후에 품에 꽉 다시 안았다. 송 선생이 제일 아끼는 것. 육체적의 피로함과 더하여 수마가 한 번에 쏟아 들어온 진우가 노곤하게 퍼진 채로 안겨있는 이 시간. 어서 어른이 되고 싶다고 입에 담는 진우만큼이나 송 선생도 어서 진우가 어른이 되기를 바라고 있었다.

 

그렇다면 금요일 밤은 똑같이 반갑겠지만 일요일이 다가오는 것이 아쉽지 않아도 될 것이기에.

 

 

**

 

 

성생니임.”

 

쪽쪽.

 

성샌니임, . 왜 안 일어나아.”

 

이상하다아. 진우가 봤던 책은 다아 이렇게 뽀뽀하면 일어났는데. 아침에 일어나기 싫어서 선생님을 끌어당겨서 같이 포옥 자구 일어난 거는 좋은데 오히려 반대로 선생님이 잠에 취해서 진우가 아무리 뽀뽀를 하고 흔들어도 깨질 않는 것이다. 송 선생과 끌어안고 있는 것은 진우에게 있어서 세상에서 제일 기쁜 일이지만, 슬슬 배가 고팠다. 어제 그렇게 집에 와서 진우가 입에 담았던 것처럼 야한 만화처럼 엉망진창은 아니었지만 그렇게 밤을 보내고 만 것. 새벽이 되어서야 잠에 들었으니 이제 잘 만큼 잤으니 무언가 먹고 싶은데 잠에 빠져버린 애인이 일어날 생각을 하지 않아서 진우는 울상을 지었다.

 

성샌니임.”

“....”

모야아, 대답은 하면서 왜 안 일어나요오. 지누 배고파아. ? 네에?”

“...”

, 송미노 지짜아.”

 

조금 원망을 담아서 불러도 꼼짝하지 않는 송 선생 덕분에 진우는 초강수를 두었다. 품에서 낑낑거리며 빠져나가 그 배 위에 올라타서 어깨도 파바박 내려치고 뺨도 꼭꼭 꼬집고 팔뚝도 들었다 놨다 애를 썼다. 그러자, 어느 순간인가 잠에서 깨어난 송 선생이 저를 끌어들여 잠에 빠지게 한 주제에 제멋대로 일어나라고 귀여운 행패를 부리는 진우를 당겨 품에 안아버렸다. 이제 해는 중천. 점점 점심에 가까워지고 있는 시간이었다,

 

배고파요.”

아침 필요 없다며.”

이제 점시임. ? 지누 바압. 다른 거 말구 밥! 아니며언 빵. 빵두 조아.”

자기 전에 많이 먹... 하암. 먹었잖아. 벌써 배고파?”

저질아아! 아니야아. 그거 아니, . 만지지 마앗.”

어디 보자. 배 안 나왔나.”

안 나와요오. 빨리이, .”

 

장난스럽게 허리부터 아랫배로 슬금슬금 오려는 손에 저질 타이틀을 획득한 송 선생의 어깨를 살살 깨문 진우가 계속해서 밥을 조르는 탓에 결국 침대에서 내려왔다. 내려오는 과정에서도 송 선생이 진우를 깨물거나, 반대로 진우가 송 선생을 깨물거나 서로 간지럽히거나 하는 어딘가 연인의 주말다운 행동이 번복되었지만 말이다. 한참을 그러고 나서야 진우는 식탁에, 송 선생은 싱크대 앞에 섰다. 능숙하게 프라이팬에 버터를 두르고 계란을 깨어 넣고. 토스터에 식빵을 넣고 진우 몫의 우유를 챙겨 따라내고 제 몫도 준비하기 위해 커피까지 내렸다. 고소함이 그득한 주방의 냄새. 몽글몽글 샘솟는 그 행복함. 커다란 티셔츠에 속옷만 입은 저와 다르게 운동복 바지에 웃통은 입지 않은 송 선생. 진우는 웃음을 터트렸다.

 

왜 웃어.”

진우 지짜아, 지금 어어엄청 기뻐어.”

뭐가 그렇게 기뻐.”

성샌님이 진우 주려구 거기서어, 어엄청 열심히 막! ? 준비하구 있잖아요?”

그렇지. 빵은 몇 개.”

두 개! 오믈렛은 쪼끄만거어. 그리구 또오, . 어어엄청 즐겁구..”

빵도 두 개면 오믈렛도 큰 거로 먹어. 너 그러다가 키 안 커, 어제 아저씨가 그랬잖아. 즐거운 거는 또 뭔데.”

지누 클 거야! , 아니이이. 다 못 먹어어. , 이렇게 마악. 같이 있는 거어? ! 치즈! 치즈 많이요!”

남기지 말고 먹어. 진짜 별게 다 즐겁다.”

성샌님은 안 재미써요?“

 

통통하게 잘 익은 노란 오믈렛이 두 개. 식빵이 다섯 쪽. 하얀 바나나, 빨간 토마토. 버터와 딸기잼, 그리고 하얀 우유에 하얀 머그잔에 담긴 하얀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는 커피. 그것들이 식탁을 수놓고 송 선생이 진우의 건너편에 앉자 우유부터 한 모금 마신 진우가 빤히 바라보았다. 그저 모든 것이 기쁘고 즐겁고, 재미있는 녀석. 여기서 만약 저 눈빛을 배반하고 재미없어.’ 라고 한다면 울먹거릴 것이 분명했기 때문에. 거기에 결코, 진우의 마음과 다른 것은 하나도 없었기 때문에 잔을 들어 향이 좋은 커피를 머금으며 대답했다.

 

아니, 재미있어.”

“...나 이짜나아. 지누 이짜나요. 어떡하지?”

.”

 

바삭거리는 것이 분명할 식빵을 하나 들어와 진우에게 넘기기 위해 고소한 버터를 바르고 빨간 딸기잼을 가득 퍼 올린 그 때였다.

 

“...진짜아, 진우 진짜. ? 성생님 너어어어무! 너무 좋아!”

 

이러케 막 좋아서 나중에 막 어? 성샌님을 너무너무너어어무 사랑해서어, 심장이 퍼엉 터지면 어떡해요? 지누 성샌님이 조아서 막, . 죽을 거 같아아. 매번 이어지는 사랑고백. 하루에 열두 번도 더 들을 좋아해. 사랑해. 그럼에도 질리지 않는다면 어떡해야 할까. 좋아서 어쩔 줄을 모르는 마음으로 가득한 어린 제 연인을. 그것은, 하나의 방법만이 남은 것이 아닐까.

 

어떡하냐.”

으응?”

선생님도 진우 좋아하는데. 많이.”

 

최대한 아무렇지 않게 잼을 펴 바르며 한 말에, 결국. 아침부터 너무나도 기분이 좋아진 진우는 바로 건너편의 송 선생에게 다가와서 꼭, 꼭 안아버렸다, 시간은 이제 막 정오에 가까워지는 시간이었다.

 

고소한 냄새와 커피 향이 진동을 하는 어느 날의 주방. 그 향에 섞인 것은 사랑스러운 웃음이었다.

 

 

- FIN.




Written By. MTR (Twitter Account : @m_tr_926)

'8월' 카테고리의 다른 글

어바웃 썸머 (Written by. Cherry)  (0) 2018.08.26
Fan Art Part. 2 (Created by. 하지)  (0) 2018.08.26
Fan Art Part. 1 (Created by. 레슈아)  (0) 2018.08.26
한여름, 바다 (Written by. PARAN)  (0) 2018.08.26
Just 3 minutes, (Written by. Luver)  (0) 2018.08.26

Just 3 minutes, (Written by. Luver)
2018. 8. 26. 10:18

BGM  ISAO SASAKI - Waltz for the moon



예쁜 소녀와 함께 공원 벤치에 앉아있는 1시간은 1분처럼 지나가지만,

뜨거운 난로 위에 앉아있는 1분은 1시간처럼 느껴진다.

- 알버트 아인슈타인 -

 

 



Just 3 minutes,




w. Luver



 

 

새벽까지 이어진 편집을 끝내고 이틀 연달아 자겠다는 계획은 국장의 전화 한 통에 산산이 무너졌다. 피곤함이 덕지덕지 묻은 얼굴로 스튜디오로 들어갔더니 동기 승윤이 뛰어온다.

 

송피디, 오늘 지원 당첨된 거 축하...할 타이밍 아닌가? 암튼 도와줘서 고맙다!”

그래서, 무슨 도움이 필요한데?”

오늘 FD가 두 놈 다 아프시단다. 그래서 말인데, 신입의 마인드로, 관객정리 부탁한다!”

너 오늘 빚진 거 아주 비싼 술로 값을 준비나 해라

 

투닥거리며 스튜디오 입구 쪽으로 향하는데, 유독 눈에 띄는 슬로건 속 이름 하나.

 

김진우...?’

 

승윤, 김진우가 누구냐?”

송피디... 좀 심하다. 요즘 가요계에서 가장 핫한 신인 김진우를 모른다고?

너 어디 가서 방송국에서 일한다고 하지마라~?”

, 2달 전에 호주에서 귀국해서 어제까지 편집실에 살다가 나왔거든?”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 시간 다됐다. 일단 난 주조로 간다. 김진우는 직접 봐 그냥

 

On-air에 빨간 빛이 들어오고 자신의 이름을 단 마이크를 든 MC들이 오프닝 멘트를 시작한다.

입사 후 교양국에만 있었던 송피디에겐 큰 함성소리로 가득 찬 스튜디오는 낯섦 그 자체,

형형 색상의 응원봉들과 다른 듯 비슷한 음악들 속에서 피로감을 느끼며 지쳐갈 무렵-

송피디 귀에 드디어 그 이름이 꽂혔다.

 

, 다음 무대는 요즘 이 분 모르면 간첩이라고 할 정도로 가요계에서 가장 핫한 분이죠?

함성소리가 대단한 걸 보니 다들 눈치 채신 것 같네요.

매일 봐도 보고 싶은 김진우씨의 무대 만나보겠습니다.”

 

얼마나 대단한 신인이길래?’ 라는 마음으로 무대 쪽으로 향한 시선의 끝에 그가 있었다.

 

흰색 핀 조명을 홀로 받고 서 있는 김진우,

예쁘다는 말이 어울릴 정도로 선이 고운 얼굴이 가장 먼저 눈에 띄었다.

전주가 지나고 첫 소절을 부르는 그를 보자마자 송피디는 승윤이 한 얘기를 이해했다.

3분 남짓한 시간, 김진우는 무대를 시작함과 동시에 그 공간에 있는 모든 사람을 휘어잡았다.

그만의 음색과 감정으로 부르는 노래로, 느리게 무대 위를 걷는 모습으로,

마치 멜로디가 자신의 몸을 휘감듯이 가만히 눈을 감고 있는 모습으로.

흰색의 옷을 입은 그는 무대가 끝나면 사라질 것처럼 그곳에 있었다.

송피디가 정신을 차릴 때쯤엔 이미 무대는 끝나고 조명은 암전이 됐다.

내가 지금 뭘 본 거지..?’ 라는 생각이 방송이 끝날 때까지, 끝나고 나서도 떠나지 않았다.

 

그날 저녁, 송피디는 포털사이트에 김진우이름을 입력하고 모든 것을 찾아보기 시작했다.

데뷔는 330, 내 생일에 했네? 보자... 섬 소년? 고향이 임자도라고? 임자도가 어디야?’

 

기본적인 프로필부터, 팬들이 올린 움짤들, 유투브 영상까지.

진우는 데뷔한지 3개월 밖에 안 된 신인이라는 점이 무색하게 연예 지면을 가득 차지하고 있었다.

그날 이후 민호는 다시 한 번 진우를 만나고 싶었지만 자신이 공들여 찍은 다큐멘터리 편성이

코앞으로 다가와 또다시 밤샘 편집의 연속이었기에 쉽지 않았다.

 

그런 민호를 하늘이 갸륵하게 여긴 건지 진우와의 만남은 우연히 성사되었다.

송피디의 다큐멘터리 내레이션을 진우가 맡게 된 것.

 

안녕하세요, 가수 김진우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

, 송민호입니다. 진우씨 목소리에 제 프로그램이 달렸으니 제가 더 잘 부탁해요?”

.....열심히 해보겠습니다!”

 

너무 부담 줬? 당황해서 눈 굴리는 것 봐... 귀엽네

하마터면 마음의 소리가 튀어나올 송피디였다.

 

, 그럼 녹음 들어갈까요?”

 

잠깐 봤을 때 대본이 너덜해질 정도로 읽어온 것 같더니,

역시나 진우는 NG 한 번 없이 베테랑처럼 내레이션을 해냈다.

덕분에 한 시간 남짓 진행된 녹음은 순조롭게 끝이 났다.

 

역시 송피디 프로페셔널한 건 알아줘야 한다니까.”

이감독님이 오디오 잘 잡아주신 덕분이죠, 진우씨도 고생 많았어요. 연습 많이 한 티가 나던데요?”

내레이션은 처음 해보는 거라 떨렸는데, 잘 이끌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수고하셨습니다!”

 

폴더인사를 꾸벅 하고 나가려는 진우, 이대로 보내면 만날 일이 없을 것만 같아 초조한 송피디,

어떻게 하지..’ 라고 고민을 하기도 전에 송피디의 목소리가 더 빨랐다.

 

진우씨! 우리 방송 나갈 때 다 같이 모여서 볼 건데, 그때 와요. 내가 연락할게요. 꼭 와요

 

**

 

 

송피디의 다큐멘터리는 소위 말하는 대박을 쳤다. 다음날 심의는 호평일색이었고,

웰메이드 다큐멘터리라는 기사가 쏟아졌다. 그 중에는 진우의 내레이션에 대한 기사도 있었다.

 

[진우씨 오늘 기사 봤어요? 진우씨 목소리 덕을 봤다는 기사가 엄청 많던데요~?]

[으아... 아니에영... 너무 멋진 프로그램의 내레이션을 맡은 제가 영광이에요~]

[신인의 사회생활 이런거 아니죠?]

[? 아니에요 ㅠㅠ 진짜 참여하게 돼서 넘 감사했어요! ]

[그렇게 감사하면 같이 밥 한 번 먹어요. 스케줄 언제 비는지 확인하고 연락줘요]

[네 매니저형한테 물어보고 톡 드릴게요~~]

 

그렇게 송피디의 사심가득 저녁 약속이 다음주 금요일로 잡혔다.

편집할 때는 시간이 너무 빨리 가더니 진우와 만나기로 한 금요일 저녁은

왜 이렇게 오질 않는 건지 모를 일이라고 생각하는 송피디.

 

~ 이게 누구야! 다큐멘터리계의 스타감독, 송피디 아니야~”

강피디 너 오늘 한가한가보다?”

바쁘지만 시간을 쪼개서 너를 축하해주러 온 동기의 마음을

한가함으로 표현하다니! 너무행~ 너무행~”

“...”

하여튼 뼛속까지 교양피디야. ! 그날 김진우는 잘 봤어? 너네 프로그램 더빙도 했더라?”

, 확실히 다른 가수들이랑은 다르더라. 예의도 바르고, 잘 되는데 이유가 있더라고.”

 

최대한 담담하게 진우에 대해 얘기하려고 하는 송피디였지만

광대가 자꾸만 올라가는 걸 막지는 못했다. 확실히 송피디는 진우가 맘에 들었다.

팬들이 말하는 덕통사고라는 것을 당해버린 것 같았다.

처음 무대에서 본 날부터, 송피디는 틈만 나면 진우를 생각했다.

이 마음이 단순한 팬심이 아니라는 것쯤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렇게 티낼 생각은 송피디는 조금도 없었다.

 

다만, 그저, 송피디는 진우를 더 자주 보고싶었다.

 

이야~ 송피디 김진우한테 엄청 후하네? 너네 프로그램 더빙했다 이거냐?”

내가 송객관이거든? 근데 너 정말 나 축하해주러 온 거야? 아니면 저번 빚 갚으려고?”

지 프로그램 만들 때 말곤 송모지리면서 또 이럴 때는 눈치가 빨라요.

이승훈의 파스텔여름 특집 준비 중인데 규모가 좀 커. 우리 스타피디 송피디가 좀 도와주라.”

너는 진짜 빚잔치 제대로 할 준비해라. 어디서 하는데? 공개홀?”

이 형님을 뭘로 보고. 여름 특집이면 파도소리도 들리고 해야 하지 않겠냐.

제주도 해변에서 할 거고 지금 섭외 단계, , 송피디가 극찬한 김진우도 섭외 중일 걸?”

그 뒤에 승윤이 추가로 더 뭔가를 말한 것 같은데

이미 송피디는 김진우 이름을 들은 뒤로 다른 이야기는 들리지 않았다.

제주 바다, 쏟아지는 별, 그리고 무대 위에서 노래하는 진우를 상상하니 심장이 뻐근해져왔다. 얼마나 환상적이고 아름다울까. 가늠되지 않음이 기쁘고 설레었다.


 

**

 

 

그렇게 승윤 프로그램의 회의를 몇 번 참석하고, 뭘 입을지 고민하다보니

진우와 만나기로 한 금요일이 되었다. 집에서 나오기 직전까지 옷을 몇 번이나 갈아입었던지,

옷장을 한 번 뒤엎고 나서야 겨우 출발한 송피디.

잘 빠진 슈트를 입은 자신의 모습을 보면서 과한가..?’ 싶었지만, 아무렴 뭐 어떨까.

진우에게 멋있게 보일 수만 있다면 좀 과하고 불편해도 됐다 싶었다.

 

[진우씨, 도착했어요? 5분 뒤에 도착해요]

[, 저도 방금 막 매니저 형이 내려줬어요!]

[슈스를 제가 길에 세워두고 있는 거예요? 금방 도착해요. 뭐 먹고 싶은 거 있어요?]

[저는 아무거나 다 잘 먹어요. 송피디님 좋아하시는 걸로 먹어용^,^]

[저도 다 잘 먹어요~ 오늘은 제가 사기로 한 거니까 진우씨 좋아하는 걸로 먹어요.]

[그럼... 단골집이 이 근처인데, 제가 약도 보내드릴게요, 그쪽으로 오실래요?]

[그래요~ 위치만 알려줘요.]

 

그렇게 찾아간 일명 가수 김진우의 단골집 앞. 송피디의 옷과 붉은색 궁서체로 적힌 감자탕 이라는 글자가 극명하게 대비되는 건 기분 탓일까. 평소 진우의 이미지를 떠올리며 단골집 장르가 뭘까

호기심 가득하게 왔는데, 골목 안쪽에 위치한 허름한 감자탕 집이라니.

왠지 아는 사람보다 모르는 사람이 더 많을 것 같은 감자탕 집 문을 여니 그 소리마저 세기말이다.

 

피디님!”

 

저를 발견하자마자 해사하게 웃으면 맞이하는 진우를 보니

왠지 모르게 긴장감이 탁 풀리는 송피디.

 

한 번에 잘 찾아 오셨네요~ 평소에 자주 오던 매니저 형들도 맨날 헤매는데~”

여기저기 촬영 다니려면 이정도 길 찾기는 껌이죠 뭐. 잘 지냈어요~?”

 

가벼운 안부를 묻고 진우가 미리 시켜놓은 감자탕을 사이좋게 먹으며

이런 저런 일상 얘기를 나누다보니 진우를 만나면 무슨 이야기를 해야 할까 하면서 작성했던

질문리스트가 떠올라 송피디는 피식 웃음이 나왔다.

 

 

아 그런데, 아까 문 열고 들어오실 때 다른 연예인인줄 알았어요. 너무 멋진 분이 들어오셔서.”

평소에 입던 옷 입고 나온 건데 연예인인 진우씨한테 그런 말 들으니까 진짜 쑥스럽네요.”

 

담담하게 받아쳤지만 송피디의 광대는 진실의 광대가 아닌가, 이미 내적댄스 대폭발.

진우가 멋있다고 말해줬어. 야스!! 거울 앞에서 한 시간 쇼한 보람이 있네

또 한 번의 마음의 소리가 갑툭튀 하려는 걸 겨우겨우 참은 송피디였다.

 

평소 술을 즐겨 마시지만, 데뷔 후에는 꽉 찬 스케줄에 구설수를 피하기 위해

밖에선 못 마신다며 아쉬워하는 진우를 위해 소주 2병도 깔끔히 비운 두 사람,

 

소주는 한라산이 진린데... 송피디님 한라산 드셔보셨어요?

저 연습생 때 혼자 제주도 간 적이 있는데, 그때 먹어보고 완전 반했잖아요.”

혼자 여행도 다녀요? 대단하네요 진우씨. 그나저나 제주도 이야기가 나와서 말인데,

<이승훈의 파스텔> 섭외 들어왔죠?”

? 어떻게 아셨어요?”

거기 담당피디가 제 동기거든요. 강승윤 피디.”

그랬구나, 안 그래도 오늘 회사 들어가서 들었는데, 제주도에서 한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사장님한테 스케줄 조정해서라도 하자고~ 졸라서 오늘 하기로 결정했어요.“

잘됐네요, 이번에 저도 헬퍼로 같이 가거든요. 그럼 우리 다음 만남은 제주도 어때요?

그때 저랑 같이 진우씨 좋아하는 한라산 마셔요.”

 

 

**

 

 

첫 제주행 비행기에 몸을 실은 송피디의 마음은 비행기보다 더 높은 고도에 위치한 것 마냥

들떠 있었다. 진우와 한라산을 약속한 그 날로부터 한 달, 이 날만을 얼마나 고대하며 기다렸던지.

진우와 사석에서 만나는 것도 기대됐지만, 제주 바다 앞에서 노래 부르는 모습을 얼른 보고 싶어

송피디는 마치 자신의 프로그램처럼 무대 구성이며,

사소한 부분까지 디테일하게 연출하는데 힘을 쏟았다.

게다가 진우의 다양한 모습을 개인적으로 담을 거라고

일할 때는 잘 챙기고 다니지 않았던 카메라까지 챙긴 송피디였다.

 

일몰과 함께 시작한 공연은 ‘Summer night and love’ 라는 부제에 응답하듯

여름밤을 달달한 공기로 채워갔다.

 

여러분, 공연 잘 즐기고 계신가요~? 저도 이렇게 오랜만에 야외에 나와서 여러분들과 소통하고,

또 멋진 아티스트 분들의 공연을 소개해드릴 수 있어서 너무 기쁩니다. 끝까지 즐겨주시고요,

오늘의 마지막 무대는 김진우씬데요, 오늘 여러분들과 즐거운 여름밤을 보내기 위해서 준비를 굉장히 많이 했더라고요. 기대되시죠? 그럼 진우씨 무대를 그려볼까요~? 고고싱~”

 

오매불망 기다렸던 진우의 무대, 승윤에게 미리 말해둔 송피디는

진우의 무대를 감상하기 위해 객석으로 이동했다.

익숙한 전주가 흐르고, 아이처럼 웃으며 진우가 등장했다.

카메라를 든 민호는 진우의 1초도 놓치기 싫은 것처럼 셔터를 눌렀다.

모든 순간이 아름다운 청춘, 아티스트라는 생각이 송피디의 머릿속을 맴돌았다.

뜨거운 여름밤이었고 진우의 무대에 취하는 밤이었다.

 

성공적으로 녹화를 끝내고 가진 회식자리 대신 송피디는 진우를 만나기 위해 이동했다.

오늘 장소도 진우보고 선택하라고 했더니, 오늘은 바닷가 앞 포장마차에서 만나자는 톡이 왔다.

 

매번 장소 선택이 놀랍네요 진우씨?”

그때 혼자 왔을 때 갔던 집을 갈까 하다가, 오늘 무대 여운이 남아서,

낭만적인 곳에 오고 싶었어요~ 그리고 포장마차에서 마셔야 술이 맛있다고요

아이고 그래요~? 그럼 진우씨가 말했던 한라산 등반 시작해봅시다!”

 

술병으로 손을 가져간 민호를 말린 진우는 어디서 배웠는지 소주병 엉덩이를 툭툭 치고

병을 흔들어서 회오리도 만들고, 시원하게 뚜껑을 따서 손가락으로 병까지 친 후에야

송피디의 잔을 채웠다.

 

진우씨, 어디 가서 이런 거 하지마요. 너무 귀여워요... 앞에 앉은 사람 심장에 해롭네요.’

 

이번 마음의 소리는 진우에게 제발 들렸으면 했지만,

해맑게 웃고 있는 진우 얼굴을 보며 마음으로 삼켰다.

잔이 부딪힐수록, 빈 한라산들이 쌓여갔다.

4병 째 한라산 등반을 준비할 무렵 진우가 송피디를 불렀다.

 

피디님, 오늘 강피디님이 그러시더라고요.

송피디님이 제 칭찬 되게 많이 하셨다궁... 저 그 말 듣고 되게 행복했어요.”

진우씨 평소에도 칭찬 많이 듣잖아요?”

그래두요오... 송피디님이 칭찬하시는 건 멋진 어른한테 인정받은 기분이어서 남달랐어요.”

제가 멋진 어른이에요? 너무 과분한 말이네요.”

아니에요! 처음 본 순간부터 계속 그렇게 생각했어요. <멋진 사람이다. 멋진 어른이다> 라고.”

 

취기가 살짝 올라 마음속에 담아두었을 이야기를 하는 진우를 물끄러미 바라보던 송피디

그때 송피디의 마음에서 띵똥- 하고 알림톡이 왔다.

 

[김진우를 향한 애정 마일리지 초과 적립되셨습니다.]

 

문득, 파도소리가 송피디의 귓가를 울리고, 고개를 들어 본 밤하늘에선 진우의 눈처럼

반짝이는 별들이 송피디의 마음속으로 와르르 쏟아진다.

오늘 우리가 준비한 무대 제목이 떠오르는 건 왜일까.

 

‘Summer night and love’

 

진우씨

 

자신의 이름을 부르자 티 없이 맑은 동그란 눈이 자신을 올곧게 쳐다본다.

 

잘 들어요, 진우씨 노래 길이만큼 말할 거니까. 한 사람이 첫눈에 반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8.2 초래요. 진우씨는 우리가 녹음실에서 처음 만난 줄 알지만, 사실 아니에요. 적어도 나는.

무대 위에서 노래 부르는 김진우를 더 먼저 만났거든요.

그 날 분명히 진우씨는 3분 남짓한 노래를 불렀고, 3분은 8.2초보단 확실히 긴 시간이죠.

그리고 진우씨에게 첫눈에 반하기에 부족함이 없는 시간이기도 하고요.”

 

여기까지 말하고 진우의 반응을 살피는데, 묘한 표정을 짓고 있는 진우의 얼굴을 보자니 송피디는

이게 우리의 마지막 만남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한 번 뱉은 마음을 멈출 순 없는 노릇이니, 그저 직진할 뿐이었다.

 

그리고 그 날 이후, 진우씨가 노래를 부르는 모든 순간이 저에겐 다 사랑의 시간이 되고 있어요. 그건 앞으로도 그럴 거예요.”

 

그 말까지 끝내자 송피디는 세상에서 가장 긴 내레이션을 끝낸 기분이 들었다.

진우는 말이 없었고, 이제 이 분위기를 어떻게 마무리해야 할까라는 생각만이 가득 찼다.

나는 차인 걸까라는 생각조차 할 겨를이 없었다.

 

그저 진우의 마음을 불편하게 만들었다는 미안함에 차마 고개를 들 수가 없어

빈 술잔만 바라보던 그 때,

 

쪼르르채워지는 송피디의 술잔.

 

피디님, 저는요, 되게, 되게 무대에서 노래 부르는 게 좋아요.

그래서 나중에 디너쇼까지 할 거예요. 그만큼 아주 오래오래 노래를 부를 건데요,

그 시간 내내 저랑 같이 이렇게 술 마셔주실래요?”

 

송피디는 대답대신 진우가 채워준 자신의 잔을 비웠다.

진우가 자신의 잔에 채워준 건 분명 도수 높은 소주인데,

왜 이렇게 입 안이 달고, 온 몸이 달아지는 건지 모를 일이었다.

 

여름 밤, 제주 바당에서 파도소리가 기분 좋게 들려오고,

진우의 웃음소리가 파스스 부서져 송피디의 귓가를 간지럽혔다.

 

우리 그럼 서로에게 더 취해볼까요?”


**

 

 

2020821, FM 330.926 김진우의 키스 더 라디오 홈페이지에 올라온 사진 한 장

 

뜨거운 여름을 더 뜨겁게 달구는 DJ 구워더 김진우와

라디오 피디계의 새내기 송피디의 벌칙 현장

 

청취자 VS 김키라 스텝의 게임대결에서 진우씨와 송피디님이 졌죠!!!

그리고 뜨거웠던 벌칙 현장 가져왔습니다!!!!!! 불판 달굴 준비 되셨나요???????

 

청취자는 곤란하라고 시킨 벌칙인데, DJ 김구워더와 송피디는

즐거워하는 건지 1도 모르겠다는 첨언과 함께 공개된 사진 속에는 얼굴에 서로의 입술 도장을

쾅쾅 박고 해맑게 웃고 있는 두 사람이 있었다고.




Written By. Luver (Twitter Account : @lover_youth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