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물 (Written by. 미래)
2017. 11. 26. 21:14
선물
w. 미래
오늘도 사물함에는 선물과 편지지가 자리를 잡고 있었다.
‘아, 미친 스토커 새끼…. 짜증나 진짜.’
그 스토커 같은 녀석이 누군지 궁금하지 않다. 내게 닿아오는 익숙한 시선과 매일 내 사물함 속에 하나 둘 씩 자리를 잡고 있는, 전혀 내 취향을 고려하지 못한 딸기우유와 각종 간식 따위들이 거슬린다는 게 끝이다. 미처 챙기지 못한 준비물 일 때도 있었다. 부피도 항상 다양했지만 항상 편지봉투가 함께했다. 처음 그 편지를 읽었을 때 구구절절 늘어놓은 나를 향한 마음이 불편했다. 나는 점점 원하지 않는 일종의 관심 표시가 지긋지긋했다.
* * *
‘나만 교복인가? 다들 참 부지런들 하다...’
1교시 체육. 다른 녀석들은 학교를 오자마자 일찍부터 갈아입었는지 다들 체육복 차림이었다. 수업이 시작하기 전에 어서 체육복으로 갈아입어야 하는데 어째 사물함에는 내가 아무렇게나 집어넣었던 딸기우유와 딸기 맛 사탕, 그리고 지겨운 편지만이 존재할 뿐 체육복이 있어야 할 그 자리가 텅 비어있었다. 아 망할,
“찌누~ 너 오늘 체육복 없냐? 빌려 줄 테니까 바로 줘. 우리 다음 체육임!”
“응. 고맙다. 나 간다.”
오지랖이 태평양급인 넓은 강승윤 덕분에 체육복을 손쉽게 얻을 수 있었다. 내가 체육복을 갈아입으려고 교실에 들어가자마자 벗은 상체가 시야 가득 들어왔고, 나는 순간 당황해서 뒷걸음질을 치고 말았다. 누군가의 맨 몸을 봤다는 것보다는 아무도 없을 줄 알았던 교실에 사람이 있는 게 예상 밖이었다. 그것도 잠시 나는 다시금 멀쩡한 정신으로 걸어 들어와 다급한 손길로 교복 마이와 넥타이를 끌어내렸다. 안에 받쳐 입은 얇은 티셔츠 한 장만 남겨두고 바지를 벗으려 할 때였다. 이름 모를 까만 그 놈은 마른 얼굴 위로 세수를 하며 급히 교실 문 밖으로 뛰쳐나갔다.
“뭐야, 쟤 왜 저래. 못 볼 꼴 봤다는 건가.”
그리고 나는 이유는 모르겠지만 지나간 그 녀석의 귀가 약간 붉어보였다.
벌써 점심을 먹은 후 5교시 수업이었다. 투둑- 뜨듯한 액체가 흐르는 느낌에 급히 코를 막았다. 코피가 난 것보다는 그 피가 흰 공책에 떨어져 붉게 물들이는 것에 당황했다. 한 손으로 대충 코를 막고 휴지를 찾아보려 가방을 뒤적거렸다. 수업 중 난데없는 내게 쏠리는 몇몇 애들의 시선이 부담스럽다. 선생님의 목소리만이 울려대던 교실에 반갑지 않은 소음을 만들어 낸 나에게 따가운 눈초리를 보내는 애들이 있는 건 당연한 것이다. 물론 그 외의 다른 애들은 자고 있었지만.
‘아, 휴지 없는데, 일단 나가야겠다.’
“김진우. 이거. 얼른 닦아.”
선생님 눈치를 한번 보고 화장실에 가기로 마음먹은 순간, 뒤에서 누가 내 이름을 불렀다. 오늘 아침, 사람이 빠져나간 교실에서 옷을 갈아입고 있던 애였다. 다시 말하지만 그 애의 이름 따위 내가 알리가 없었다. 정확히 말해서는 아침에 그 애가 아무렇게나 벗어 두었던 마이의 명찰을 봤던 것도 같지만.
놈은 나에게 정갈하게 접혀있는 휴지들을 쥐여 주었다. 나는 수업 분위기를 깨는 게 싫어서 그 녀석이 건넨 휴지를 급히 받아 들었다. 받아든 휴지가 내 피로 인해 축축하게 젖어 들어가는 동안 내 뒤통수엔 올곧은 시선이 따라붙었다. 항상 그랬듯이 신경을 끄기로 했다.
* * *
“오~ 오늘도 받은 거야? 걔도 참 어지간하다. 안 그래? 아니 우리 진우가 좀 인기 많을 상이긴 한데, 그래도 좀 사내새끼끼리 징그럽다.”
“뭐 어때. 우린 덕분에 꽁으로 먹고 좋지. 이럴 땐 그냥 조용히 가져와 먹는 거야. 센스 없긴.”
“아 됐고. 김지누 너 걔 누군지는 알아? 너한테 선물 보내는 새끼 말이야. 마니또인지 비밀친구인지 뭐 이런 것도 아니고 진짜 유치하게 이게 뭐냐. 걔도 참 김진우 관심 받기엔 틀려 먹은 놈이다~ 너 그 편지도 항상 안 읽고 버리잖아. 내용 궁금한데.”
“아 뭐래. 야 너네 이런 소리 할 거면 가라. 진짜 재미없어.”
학교에 오면 항상 내 사물함을 차지하고 있는 기분 나쁜 누군가의 선물은 오늘도 어김없이 강승윤과 이승훈의 몫으로 돌아갔다. 물론 편지는 항상 쓰레기통에 들어갔다. 뜬금없이 코피가 난 후로 괜히 기분이 이상해서 누워있는데, 어렸을 때부터 십 년 넘게 들러붙어 있는 유일한 친구라는 새끼들이 매일같이 일종의 ‘선물’을 놓고 가는 어떤 미친 놈과 나를 엮으려 드는 게 기분이 나빠서 날카롭게 대꾸했다.
나는 책상에 엎드려서 강승윤이 지겨운 딸기우유를 쪽 빨아 마시는 것을 보며 거부감이 치밀었다. 나는 그 선물이 소름 돋기 시작했다. 애들 말처럼 남고에서 내게 주는 그 관심이 이상했으니까. 내가 모르는 누군가의 의도가 뭔지도 모르는 거니까. 무관심에서 조금의 호기심이 생긴 순간이었다.
“국어 필기한 사람! 아무도 없냐? 좀 보여줘! 아 시발 망했다아”
휑한 노트를 들고 안절부절 돌아다니는 그때 그 애가 교실을 소란스럽게 했다. 그 녀석과 친해 보이는 대여섯 명 중의 몇은 이미 엎드려서 낄낄거리는 것으로 보아, 다들 필기를 안 한 것 같았다. 평소의 나였다면 그냥 고개를 돌리고 말았겠지만, 수업시간에 코피를 흘리던 내게 휴지를 건네주던 게 생각나서 나도 모르게 교실에서 방방 뛰는 그 애에게 다가가 내 노트를 주고 말았다.
“엇 시바 누구야. 존나 고맙.. 어? 어엇!”
“그냥 빨리 써. 수업 종 치기 전까지 노트 돌려줘.”
“어! 얼른 쓰고 줄게!”
비글새끼 마냥 웃는 상으로 그의 친구들과 교실을 발발 뛰어 다니는 모습만 봤었는데, 내가 말을 걸자 광대를 잔뜩 끌어올려 어색한 미소를 흘리며 내 노트를 받아갔다. 그의 가슴팍을 슬쩍 보며 노트를 건네었다. 나를 보던 녀석은 책상에 앉아 노트 위로 펜과의 마찰을 서둘러 만들어냈다.
‘나 괜히 오지랖 부린 건가.’
이번에는 똑똑히 보았다. 그의 명찰에 새겨진 이름을. 나는 송민호의 당황한 모습이 우습다고 생각했다.
그날 저녁 하굣길이었다. 오늘 등굣길부터 어째 날이 흐리다 했더니만, 비가 추적추적 내리고 있었다. 우산은 없는데, 그칠 기미는 보이지 않고, 겨울이라는 계절이 실감나게 날은 전보다 어둑어둑해졌다. 하필 승훈이나 승윤이도 먼저 가 버린 지 오래였다. 나는 슬리퍼를 신발로 갈아 신으려다가 곧 비에 젖게 될 것 같아서 그냥 그대로 신고, 학교 현관에서 비를 최대한 피할 수 있게 옷을 벗어 머리 위로 둘러 가릴 준비를 했다.
‘하나, 둘, 셋’
하늘은 그런 나를 비웃는 듯 했다. 뛰면서도 머리부터 발끝까지 빗물이 튀겨 스며들기 시작했다. 더 추워지는 기분이었다. 나는 속으로 욕을 읊조리며 발걸음을 더 빠르게 옮겼다.
그러다 어느 순간 내 옆에는 나 보다 큰 어두운 그림자와 인기척이 있었고, 내 머리칼로 스며들던 빗물은 무언가에 튕겨 다른 소리를 내었다. 송민호였다. 그 애는 내게 초록색 우산을 쥐여 주려고 했다. 수업시간의 그 휴지 조각처럼.
“너 써. 나는 안 써도 괜찮아. 집이 가깝거든. 아 아까 노트 빌려줘서 고맙기도 하고... 그럼 나 갈 게. 내일 봐!”
나는 멋대로 내게 우산을 주려는 그 애의 손목을 급하게 잡아챘다. 뭔 일 있냐는 듯이 웃으며 마주쳐오는 시선을 차마 끝까지 바라보지 못하고 다른 곳으로 시선을 돌려 말을 했다. 이런 거 진짜 불편하다.
“그냥, 같이 가. 너 비 맞으면 내가 불편해. 우산 주인은 너잖아. 너희 집 가깝다며. 같은 방향인 것 같은 데.”
“어.. 어? 그래 그럼 아파트 1층까지만 데려다 줘! 우산 줘. 내가 들게.”
어째서인지 내가 드라마의 주인공이 된 것 같은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녀석이 내게 너무 과한 배려를 해서 그런 탓이다. 우리는 그렇게 5분 정도 둘이 쓰기엔 비좁은 우산을 쓰고 걸어갔다. 송민호는 별안간 실실 웃음을 흘리며 실없는 소리를 했다. 별안간 정적이 흘렀을 무렵, 나는 이승훈이 점심시간에 내 가방 속에 던지듯 넣어 두었던 그 딸기우유가 떠올랐다.
“너 먹을래? 버리려다가 그냥 버리기 아까워서.”
“어? 누가 준 건데?”
“아 어떤 미친 스토커 새끼.”
나는 그 애에게 그 미친놈에 대해서 말했고, 욕을 늘어놓았다. 왜 계속 그런 걸 보내는 지 이해가 되냐고 물었다.
“......”
“...왜 말이 없냐?”
“......”
“......”
“아.. 집 다 왔다. 나 그럼 갈게.”
송민호는 싱겁게 말을 끝내더니, 내 말에 어두운 기색을 보였다. 또 다시 어색해지려는 찰나 녀석은 자기네 아파트 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나는 기분이 이상했다. 동시에 그 녀석의 어깨가 생각났다. 모른 척 하기 힘들 정도로 내게 밀어 준 우산이 그런 생각을 증폭시켰다.
* * *
오늘은 어쩐지 교실에 들어가는 발걸음이 가벼웠다. 평소보다는 일찍 등교해서 교실에는 나 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내 나는 오늘도 내 사물함에 놓였을 선물들을 떠올렸고 기분이 가라앉았다.
‘이제 정말 지긋지긋해.’
나는 자리에 내 가방을 걸어두고 사물함을 확인했다. 처음이었다. 사물함에는 선물이 보이지 않았다. 혹시나 해서 뒤적여 보았지만 없었다. 분명 한 사람이 보냈을 다양한 선물을 받은 후로 하루도 빠진 적이 없었는데. 뭐 원했던 거니까. 좋은 게 좋은 거겠지.
사물함을 닫은 후, 내 책상으로 가면서 내 뒷자리에 걸린 가방을 봤다. 송민호의 자리. 그 애가 나보다 먼저 온 사실을 깨달았다. 그의 책상을 확인하다가 나는 미처 들어가지 못한, 그의 책상 서랍 속 분홍색의 편지 봉투 다발을 발견했다. 익숙했다. 나는 나도 모르게 송민호가 어디 있는지 찾으려 했다. 순간 고개를 돌려내다 본 창문에는 그 애가 서있었다. 허무하고 공허한 시선이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 시선을 끝까지 마주보지 못한 채 내가 먼저 피했다.
나는 알아챘다. 학년이 바뀌고 언젠가 부터 내 사물함 속을 매일 채워주던, 각종 기념일에 맞춰 익명의 선물 꾸러미를 주던, 돌아보면 느껴지지 않던 수업시간의 그 시선들이, 어제 저녁 송민호에게 욕을 했던 그 미친 스토커 같은 새끼가 모두 송민호라는 것을. 잠시 멈춰있던 회로가 다시금 일을 할 무렵 고개를 돌려 쳐다 본 창 밖에는 원래 아무도 없었다는 듯이 고요해져 있었다.
* * *
그 날 이후부터는 선물세례는 이어지지 않았다. 예상했던 일이었다. 그 애는 나에게 들킨 게 힘들겠지. 나는 그 아이에게 미안해졌다. 또, 마음이 너무 불편했다. 죄책감도 들었다. 항상 교실 쓰레기통에 쳐 박아 넣었던 그의 편지와 선물들. 누가 준 건지 물은 그에게 심하게 그를 욕했던 것. 미처 무시했던 그의 젖은 어깨와 그날 아침 마주쳤던 눈빛. 그리고 그의 편지를 한 번도 읽지 않고 매번 버린 것이 마음에 걸렸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 애가 궁금해졌다. 아이러니하게도 그 애의 눈에서 공허함을 본 날부터. 관심이 생겼다.
그래서 나는 그를 찾아갔다. 그 존재를 알게 된 이상 그의 마음을 모른 척 하기는 힘들었다. 나는 최후 결론을 내렸다. 이건 아니야.
“너, 맞지. 그 동안.”
“..응.”
“너 나 좋아해?”
“질문이 이상한 거 아니야?”
“너 아직도 나 좋아해?”
“......”
“나 그동안 너무 부담스럽고 불편했어. 힘들고 싫었어.”
“그동안 미안했어. 너. 좋아해서. 이제 안 좋아 해볼게. 그거 당장은 접기는 힘든데, 노력해볼게.”
“......”
“나 욕하고 편지 그 따위 찢어버려도 다 괜찮아. 근데 그거 다 나라는 거 알았으니까, 무서워서, ”
내가 내 마음을 온전히 꺼내두기 까지 참지 못한 니가 시작하지도 않은 사랑에 급히 이별을 고한다. 흐르는 눈물이 보이는데도, 애써 웃으려는 너의 손목을 잡는다. 나는 왜 계속 너에게 신경이 쓰이는 걸까.
“내 말 끝까지 들어. 나 아직 너한테 사과 다 못했어. 그리고, 왜 니 마음대로 끝내. 시작도 안했는데”
나 궁금해졌어. 계속 네가 신경 쓰이는 이유가 뭔지. 그동안 받았던 네 편지와 선물들이. 네가 매일 아침 일찍 내게 전하고 싶었던 것이 뭔지.
네가 궁금해졌어.
Written By. 미래 (Twitter Account : cnalice_winn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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