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을 믿지않아 (Written by. 노크)
2018. 4. 26. 15:44

사랑을 믿지않아

 


w. 노크



*3월 월간송진 [내 남자친구의 결혼식]과 내용이 이어집니다
전편을 읽고 오시면 더 재미있는 건 안비밀♡
*4월 월간송진 주제 '거짓말'과 '취중진담'을 소재로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햇살 좋은 봄날, 아기자기한 북촌 골목길에 선 진우는 조금 초조한 손목시계를 내려다보았다 오랜만의 데이트에 긴장한 진우는 약속시간보다 15분이나 일찍 도착했다

진우는 뒤를 돌아 아직 문을 열지 않은 작은 액세서리 가게 유리창에 자신의 모습을 비추어보았다 흰 스웨터에 밝은 색 청바지 그리고 단화를 입은 진우는 못 매무새를 단정하게 다듬었다


"예뻐서요"


빈말인 줄은 알지만 자꾸만 예쁘다고 하는 민호의 말이 진우는 신경 쓰였다 민호의 앞에선 예쁘지 않으면 안 될 거 같은 의무감마저 들었다


"하아... 지금 나 뭐 하니.."


문득 진우는 자신의 행동이 어이가 없어졌다 시무룩하게 돌아선 진우는 힘없이 창가에 등을 기대었다

진우는 한 번 밖에 만난 적 없는, 누군지도 잘 모르는 남자와 데이트를 하기 위해 이곳에 나와있었다


"나한테 정말 고맙고 미안하면 오늘부터 나랑 데이트 10번만 해줄래요?"


첫 만남부터 도저히 예측이 불가능한 남자였다


"축의금 되돌려 받는 건 내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고.. 그렇다고 아까 그 돈 저한테도 절대 작은 돈은 아니에요"


민호라는 이름의 남자는 그날 처음 만난 진우의 옛 남자친구에게 거액을 돈을 축의금으로 건네었다


"오늘 처음 본 저한테.. 왜 그런 제안을 하시는 거예요?"
"예뻐서요"


"사기꾼인가.."


진우의 입에서 혼잣말이 무의식적으로 흘러나왔다


"와.. 사기꾼은 너무했다.."
"앗..!! 깜짝이야.."


머리맡에서 들려오는 낯선 남자의 목소리에 놀란 진우는 온몸을 화들짝 움츠렸다 진우는 안 그래도 큰 눈을 두 배로 크게 뜨고 고개를 들어 위를 올려다보았다


"진우 씨는 원래 잘 놀라는 편인가 봐요.. 나랑 만날 때마다 놀라네요..."


오늘도 반짝반짝 빛이 나는 민호의 얼굴을 진우는 멍하니 바라보았다 진우의 심장이 주인의 허락도 없이 마구 달리기 시작했다 심장아 정신 차려라 진우는 오른손으로 가슴팍을 꾹꾹 눌렀다


"하아... 민호 씨가 저를 만날 때마다 놀래키시는 거 같은데요.."
"하하하하... 그렇게도 해석할 수 있겠네요 점심 먹었어요?"
"아니요... 점심 먹자고 불러내고선.. 점심을 먹었냐니.."


만나자마자 햄스터처럼 놀라 파르르 떠는 모습을 보여준 것이 진우는 어쩐지 창피하게 느껴졌다 조금 뾰로통해진 진우가 작게 웅얼거리자 민호가 크게 웃음을 터트렸다


"진우 씨.. 진우 씨는 나를 웃게 만드는 거 알아요?"


민호가 다정한 미소를 지으며 민호의 얼굴을 진우에게 들이밀었다 갑자기 숨결이 닿을 만큼 가까이에 다가온 민호의 얼굴에 진우는 당황하기 시작했다 진우는 목덜미와 귀 끝이 뜨끈하게 달아오르는 것을 느꼈다


"민호 씨는 저를 항상 당황하게 하구요.."


진우는 얼굴이 더 달아오르기 전에 민호의 어깨를 손으로 꾸욱 밀어내며 새침하게 대답했다


"하하하하.."





*





작고 예쁜 레스토랑에서 맛있는 점심 식사
소재 끊어지지 않는 즐거운 대화
같은 취향의 영화관람
벚꽃나무 길을 따라 가벼운 산책
거의 대부분이 완벽한 첫 번째 데이트였다
하지만 단 하나 부족한 것이 있었다

진우는 아직 누군가와 새로운 만남을 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진우가 이런 자신의 솔직한 속마음을 언제쯤 고백해야 하나 망설이는 사이 어느새 첫 번째 데이트가 끝나고 있었다

진우의 이런 마음을 전혀 알지 못하는 민호는 진우와 1분이라도 더 함께 있고 싶었다 민호는 진우의 집 주소와 조금 멀리 떨어진 곳에 차를 주차를 했다 차에서 내린 둘은 진우의 집으로 향하는 골목길을 함께 걸었다


"진우 씨가 나보다 2살이 많다는 거예요?"
"네에 제가 민호 씨보다 형인 거죠.."
"쓰읍... 못 들은 걸로 할래요 좀 많이 허술한 게 형같이 느껴지지고 않구요  곧 좀 더 달콤한 호칭이 생길 테니까.."
" . . . "


민호의 달달한 말에 진우는 적절한 대답을 찾지 못했다 민망해진 진우는 양손 깍지를 끼고 커다란 눈동자만 이리저리 굴려대었다


"어.. 여기가 저희 집이에요.."


은은한 조명을 매달고 있는 강남의 고급 빌라 앞에서 진우는 발걸음을 멈춰 섰다


"진우 씨 가족들이랑 같이 살아요?"
"아니요.. 혼자..."
"여기에 혼자 살아요?! 진우 씨 부자였구나.. 여기 내 친구도 살아서 잘 알거든요..."


민호의 말에 진우는 갑자기 말문이 막혔다 진우는 이런 고급빌라에 혼자 살 만큼의 재력을 가지지 못 했다

한때 진우는 경태와 평생을 동반자로 살아가는 꿈을 꾸었다 그때 진우와 진태가 돈을 모아서 전세로 구한 집이었다 물론 진태의 돈의 비율이 훨씬 많았지만 말이다


"아.. 원래 친구랑.. 살았었는데.. 그 친구가.... 결혼을..."


말을 하면 할수록 진우는 민호에게 창피한 기분이 들었다 단 두 번의 만남으로 진우는 민호에게 자신이 가장 숨기고 싶어 하던 모든 치부를 다 들켜버린 기분이었다


"아.."
"거.. 걱정하지 마요.. 집을 내놨는데.. 워낙에 집 가격이 비싸서.. 잘 안 나가네요.. 전세금 나오면... 진태 씨한테 다시 돌려줄...... 하아.. 제가 민호 씨한테 왜 이런 변명을..."


허둥지둥 말을 이어가던 진우가 갑자기 입을 꾸욱 다물어버렸다 이럴 때 [운수 좋은 날]이라는 표현을 쓰는 걸까 진우는 하루 종일 좋았던 기분이 바닥까지 축 가라앉아 고요해지는 것을 느꼈다


"민호 씨.. 데려다줘서 고마워요... 이제 전 들어갈게요.."


진우가 기다란 속눈썹을 아래로 내리깔고 입술을 깨물었다 민호가 좋아하는 보조개가 꾹꾹 들어갔지만 그런 진우를 바라보는 민호는 하나도 기쁘지 않았다


"데이트의 마무리 대화가 좋지 않았네요.. 미안해요 괜한 걸 물어서.."
"아니에요.. 그냥 제가 찔려서 그런 거지.. 민호 씨가 무슨 잘못이에요"
"흐음.. 몇 층인지만 알려줘요.. 불 켜지는 것만 보고 들어갈게요.."


우울해진 진우는 '그럴 필요까지 없어요' 선을 그어버리려다가 참았다 하루 종일 진우를 즐겁게 해주기 위해 노력한 민호에게 그건 너무 못된 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진우는 뒤를 돌아 고개를 들어 진우의 집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저기에요 3층 오른쪽..... 어.. 근데 왜 불이 켜져.. 있지?"





*





띠-띠-띠-

현관문 비밀번호를 누르는 진우의 오른손이 떨리고 있었다 민호는 아무 말없이 진우의 왼손을 꼭 잡아주었다


"그냥 아침에 불 켜고 나온 걸 거예요.. 아니라도 내가 있는데 무슨 걱정이야.. 내가 이번 건강검진에서 신체나이 17세가 나온 남자거든요"


민호의 가벼운 농담에 진우가 그제야 겨우 희미한 웃음을 지어 보였다 진우는 다시 한 번 마음을 추스르고 현관 비밀번호를 다시 꾹꾹 눌렀다


띠리리-
철컥-


"어.. 진우야 늦었네.."
"....!!!..."


젖은 머리를 수건으로 말리며 샤워 가운만 입고 선 경태의 모습이 진우와 민호의 시야에 화살처럼 받혔다

아무도 없어야 할 빈집에 경태가 있다는 사실에 진우는 너무 놀라 다리에 힘이 풀어졌다 민호는 휘청이는 진우의 팔을 단단히 붙잡았다


"김진우..!! 너 여기가 어디라고 저 새끼를 끌고 들어와?!"


적반하장도 유분수란 말은 이런 상황에 쓰는 말이었다 경태의 고함소리에 진우의 심장이 불안하게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진우는 민호의 손을 동아줄마냥 꼭 붙잡고 덜덜덜 떨리는 눈꺼풀을 감아버렸다 한때나마 진심으로 사랑했던 태와 진우는 눈을 마주치고 할 말을 다 할 자신이 없었다


"그러는 경태 씨는 여기가 어디라고 들어와?!! 경태 씨 아내는 당신이 이러고 다니는 거 알아?!"
"그 여자 이야기를 왜 하는데.. 내가 진심으로 사랑하는 건 진우 너밖에 없다고 내가 몇 번을 말해!!"


뭐가 그리 억울한지 경태는 발을 동동 구르며 소리를 질렀다 진우는 그런 경태의 어이없는 말에 온몸에 피가 빠져나가는 듯한 무기력함이 느껴졌다


"그리고 내가 뭘 그렇게 잘못했는데? 내 돈 주고 계약한 내 집에 와서 좀 씻은 건데!!"
"그래.. 당신 집이지.. 그런데 이 집엔 당신과 헤어진 내가 살고 있어... 내가 이 집 나갈 때까지만 좀 기다려달라고 부탁했잖아..."


진우는 이런 기가 막힌 상황에서도 경태에게 무언가를 부탁해야 하는 자신의 상황이 비참했다 진우는 온몸이 녹아내려 이곳에서 사라지고 싶다는 생각뿐이었다


"김진우.. 너 솔직히 말해!! 이 새끼랑 나랑 양다리 걸친 거지.. 나랑 헤어지자마자 다른 남자가 생긴다는 게 말이 돼?!!!"


여전히 눈을 감은 진우의 몸이 사시나무처럼 떨리고 있었다
너무 화가 나서, 너무 억울해서, 너무 슬퍼서, 너무 비참해서
진우는 경태의 말에 어떻게 대답을 해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이런 황당한 광경을 바라보고만 있던 민호가 더 이상은 참지 못하겠다는 듯 진우를 자신을 향해 돌려세웠다
진우는 민호의 손길에 그제야 눈물이 그렁그렁 한 눈을 뜨고 민호를 바라보았다


"차 어디 주차했는지 기억하죠? 가 있어요 여기는 내가 처리할게.."


민호는 자신의 차 키를 진우의 떨리는 손에 쥐여주었다


"... 민호 씨..."
"괜찮아요.. 무서우면 차 문 꼭 잠그고 나 기다려요..."


민호는 차마 발길을 떨어트리지 못하는 진우를 집 밖으로 떠밀었다


"야!! 김진우!! 어디 가??!! 나 이야기 아직 안 끝났어!!"





*





똑똑똑-


조수석에서 무릎을 끌어안고 있던 진우는 차 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번쩍 고개를 들어 앞을 바라보았다


"문... 문 열어줘요.."


운전석 창문 유리 너머에서 민호가 문을 열어달라는 표시로 자동차 버튼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진우는 얼른 자동차의 문을 열어주었다


철컥-


자동차 문이 열리자 민호는 뒷문을 열어 캐리어를 하나 싣고 운전석에 앉았다

그런 분주한 민호의 얼굴을 뚫어져라 바라보는 진우의 동공이 파르르 떨리고 있었다 민호의 콧등에는 긁힌 듯한 상처가 나있었고 입술 끝이 터져 피가 흐른 흔적이 있었다


"민호 씨... 싸웠어요?"
"그냥 뭐.. 쓰레기 분리수거 좀 하고 왔죠.."


민호의 엉망이 된 얼굴을 바라보던 진우는 겨우겨우 참고 있던  눈물샘이 와르르 무너져내렸다


"정말.. 미안해요.. 나 때문에.. 흐윽.."


진우의 눈물에 오히려 당황한 민호는 차 안에 있던 티슈를 찾아 진우에게 건네었다


"진우 씨가 잘못 한 것도 없는데 왜 울어요.."
"내가 왜.. 잘못한 게 없어요... 흐윽.. 그런 놈을 사랑했고 그런 놈을 믿고 살림을 차렸고.. 그런 놈이 집으로 올 거라는 생각도 못 했고... 흐윽.. 진짜 김진우 최악이야..."
".. 울지 마요 진우 씨..."


등을 가볍게 토닥이는 민호의 위로에도 진우의 눈물은 한참이나 멈출 생각이 없었다 결국 민호는 오늘 한 번 더 진우는 놀래키기로 마음먹었다


"아.. 아야.. 입술이 너무 아파.. 아아아..."


민호의 커다란 목소리에 놀란 진우가 눈물이 그렁그렁 한 얼굴을 번쩍 들고 민호를 바라보았다


"흐윽.. 많이 다쳤어요..? 어떻게 해... 내가 약국 가서.. 연고 사 올 테니까.. 잠깐만 기다려요"


약국으로 당장이라도 달려갈 기세로 진우는 조수석 손잡이는 잡았다 민호는 그런 진우의 팔을 다급하게 붙잡았다


"어... 이제 눈물 그쳤다.. 나도 갑자기 안 아픈데요"


민호가 한껏 장난스러운 표정으로 어깨를 들썩였다 그런 민호를 빤히 바라보던 진우의 입에서 허탈한 헛웃음이 나왔다


".... 하.. 진짜.. 이런 상황에서.."
"어.. 웃었다 웃었어요.. 하하.. 그래요 웃어요..  아.. 그리고 나도 진우 씨 사과할 거 있어요..  서로서로 미안하니까 퉁치고 없던 일로 해요.. 내가 진우 씨 집을 허락 없이 뒤졌거든요.."
"네에..? 왜.."
"그 집으론 진우 씨 다시 안 보내요.. 나 부자라고 저번에 자랑한 거 같은데.. 우리 집에 빈방 많아요 그 집 나갈 때까지 우리 집에 와서 살아요 내가 진우 씨 속옷이랑 잠옷이랑 계절에 맞는 옷.. 그런 거 내가 아무렇게나 좀 챙겨왔어요 저기 뒤에 캐리어"


민호는 엄지손가락으로 뒷좌석에 놓인 캐리어를 가리켰다 아까는 너무 놀라서 몰랐는데 지금 다시 보니 민호가 들고 온 것을 진우의 자신의 캐리어였다

진우가 캐리어 가방을 바라보며 잠시 멍해졌다 그러고 보니 진우는 혹시나 진태가 다시 찾아오면 어쩌나.. 무서워서 집으로 들어갈 엄두가 나지 않았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민호의 집에 가는 것은 너무 민폐가 되는 것이 아닐까 진우는 생각이 들었다


"... 전 그냥 모텔 같은 데서.. 잠깐 머물면..."


진우의 말에 민호는 진우의 얼굴을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아니 매섭게 노려보았다


"김.진.우. 씨.."


갑자기 무서울 만큼 탁 가라앉아 으르렁대는 민호의 목소리에 진우는 주눅이 들어버렸다


"... 네.. 네에?"
"내가 진우 씨 좋아하는 거 알면서 왜 그래요.. 내가 미쳤다고 관심도 없는 사람한테 데이트 10번이나 하자고 조르는 한가한 놈 같아요?"


민호의 날카로운 말에 진우는 말문이 막혔다 그래.. 다 알면서도 진우는 민호의 마음을 모르는 척 밀어내고 있었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 그런 데서 절대 못 재워요.."


운전석에 앉은 민호는 몸을 오른쪽으로 숙여 진우의 얼굴로 천천히 다가왔다 키스를 하려는 것일까? 진우는 질끈 눈을 감았다


드르륵-
철컥-


안전벨트가 채워지는 느낌에 진우는 실눈을 뜨고 민호를 바라보았다


"뭘 기대한 거예요? 키스?? 키스해도 되는 거면 지금 하구요"


방금까지 진지하던 민호가 사라지고 평소처럼 장난기 가득해진 민호가 당황한 진우를 보고 싱긋 웃었다 진우는 얼마나 귀로 피가 몰렸는지 귓가에서 두근거리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자.. 다 빨개졌으면 출발할게요"


진우는 아무 말 없이 조수석의 창문을 내리고 창가에 얼굴을 내밀었다 차가운 밤공기이라도 얼굴에 닿아야 이 창피함을 얼굴에서 지워낼 수 있을 거 같았다






*






민호의 집에서 샤워를 마친 진우가 잠옷을 갈아입고 쭈뼛쭈뼛 거실로 걸어 나왔다

얼떨결에 민호의 집에 따라 들어오긴 했지만 그래도 감사 인사는 정식으로 해야 할 거 같았다


"... 저 민호 씨..."
"어.. 씻고 나왔네요 맥주 한 캔 할래요?"


거실의 테이블 앞에 앉아 먼저 맥주를 마시고 있던 민호가 진우에게 물었다 진우는 고개를 격하게 위아래로 끄덕였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곤란하던 차에 먼저 말을 걸어준 민호가 진우는 고맙기만 했다


"안 그래도.. 술 한잔하고 싶었어요"


오늘 하루 너무 많은 일을 겪은 진우는 맥주 한 잔 없이 도저히 잠이 들 수 없을 거 같은 기분이 들었다





*





어느새 맥주가 소주가 되고 소주가 양주가 되었다


"짜아안-"


기분이 좋아진 진우가 민호와 잔을 부딪치며 예쁜 보조개를 쏙 집어넣고 고개를 옆으로 살짝 기울였다 민호는 그런 진우의 잔망스러운 애교를 넋을 잃고 멍하니 구경했다

경계심 많고 소심하던 평소의 진우도 충분히 예뻤지만 술에 취해 방글방글 웃는 진우는 민호의 심장을 위험하게 만들 만큼 사랑스러웠다


"민호 씨이.. 민호 씨는 참!! 멋진 사람이에요.."


언제나 자신의 감정을 숨기는데 익숙한 진우는 술기운을 빌려 솔직한 자신의 심정을 먼저 털어놓기 시작했다


"하하하.. 고백인 거예요? 나 좀 두근거리는데..."
"아니요.. 미안해서요.. 나는 지금 아-무리 멋진 남자가 와도.. 마음의 문이 꽁꽁 닫혀있어요.. 그래서 미안해요.. 민호 씨랑 데이트를 10번을 하고 20번을 해도.. 내 마음은 닫혀있을 거예요..."


진우의 단호함 선 긋기에 민호의 얼굴에 미소가 사라졌다


"그 남자 때문이에요?"


민호의 질문에 진우는 크게 고개를 좌우로 저었다가 곧 위아래로 끄덕였다


"그 사람도.. 처음엔.. 민호 씨만큼 멋진 남자였어요.. 다정하게 웃어주고.. 나만 사랑한다고 해주고... 날 따뜻하게 안아줬어요..
하하.. 아이고.. 이야기하다 보니까 또 슬퍼져버렸네.."


진우는 남아있던 양주를 입안으로 모두 털어 넣어버렸다 독하디 독한 양주로 인해 일그러지는 진우의 얼굴을 민호가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내가 그 쓰레기 같은 놈이랑 같다는 거예요?"
"아니요.. 그건 아니에요.. 하지만 사람은.. 사랑은 다 변하는 거예요... 그 사람이 했던 수 많았던 달콤한 약속들.. 그땐 아마 진심이었겠죠.. 그런데.. 시간이 흐르고.. 사람도, 사랑도 변하고 모두 다 거짓말이 되어버렸어요... 그래서 나는 이제 사랑을 믿지 않아요..."


진우가 비어버린 자신의 양주잔에 독한 양주를 가득 따랐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민호가 진우의 양주잔을 빼앗아 들었다 민호는 진우의 잔에 가득 담긴 양주를 자신의 잔에 반을 덜어 담고 대신 얼음을 가득 채웠다

내일이 아무리 일요일이라지만 이렇게 독한 술을 스트레이트로 먹으면 진우의 속이 남아나지 않을 것이다


"사랑을 믿을지 말지는 ... 저랑 남은 데이트 9번 다 하고 다시 이야기해요.."
"... 민호 씨.. 나는 민호 씨에게 상처 주고 싶지 않아서 미리 이야기하는 거예요.. 민호 씨는 좋은 사람이니까.. 민호 씨는 나한테 그냥 계속 좋은 사람.. 다정한 친구로 남아주세요.. 사랑처럼 너무 쉽게 변해버리는 감정.. 그런 거로 나랑 엮이지 말아요.."


쿵-


말을 이어가며 휘청휘청 아슬아슬하게 흔들리던 진우 고개가 결국 테이블 위로 사뿐히 쓰러졌다

테이블 위에 얼굴을 박은 진우의 빨개진 목덜미와 살짝 벌어진 빨간 입술을 민호는 한참을 바라보았다


"난 진우 씨가 점점 더 좋아지는데... 어쩌죠?
그동안 진우 씨 앞에서 자신만만한 척했지만 데이트가 다 끝나고도 여전히 날 좋아해 주지 않으면.. 나 정말 상처받을 거 같은데..."


민호는 진우의 이리저리 사방으로 흐트러진 앞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민호는 잠이 든 진우의 예쁜 입술에 몰래 입을 맞추고 싶은 생각이 들었지만 이내 꾹 참아내었다

실연의 상처로 가슴이 난도질당한 진우에게 지금 필요한 것은 낯선 남자의 키스가 아니라 편안한 침대와 깊은 잠이라는 것을 민호는 잘 알았다

민호는 남아있는 양주를 입안에 털어 넣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민호는 테이블에 쓰러진 진우의 겨드랑이와 무릎 뒤로 팔을 넣어 진우를 가볍게 안아올렸다 진우가 잠에서 깨지 않도록 민호는 조심스러운 발걸음으로 진우의 침실로 향했다













* [내 남자친구의 결혼식]을 읽고 Tesory님께서 뒷이야기가 궁금하다는 댓글 남겨주셨요 ㅎㅎ 그러다 번뜩 떠오른 아이디어가 있습니다

한 달에 한 번 월간송진에서 주어지는 소재로 즉흥적으로 글을 이어 연재해보려고 합니다ㅎㅎ 5월엔 월간송진에서 무슨 주제가 나와서 이 둘이 어떤 방향으로 흘러갈지 저도 기대가 됩니다 재미있는 도전이 될 거 같아 두근두근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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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ten By. 노크 (Twitter Account : @jinu_knoc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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