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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5. 26. 14:20

 


월간송진 4월호 Fan Art Part .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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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송진 4월호 Video Chapter .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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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송진 4월호 Fan Art Part .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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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한 밤 (Written by. ddan)
2018. 4. 26. 16:02

- 월간송진 4월호 주제 중 일상(리얼물, 습관), 거짓말로 참여했습니다.

- '잠 못드는 밤' 의 연작입니다.

 

 

 

 

취한 밤



w.ddan

 

 

 

 

 

 

 

[0309님의 사연입니다. 지난주 소개팅을 했어요. 첫눈에 마음에 드는 상대였고, 다행히 그쪽도 저에게 꽤 호감이 있는 것 같았어요. 좋은 분위기로 저녁을 먹고 커피를 한잔하고도 아쉬워서 자리를 옮겨 술까지 마시게 됐죠. 그 날 손도 잡고 뽀뽀도 했어요. 당연히 사귀게 될 거라고 생각했고요. 그런데 그 후로 세 번을 더 만났는데 아직 사귀자는 얘기도, 심지어 손잡기 같은 가벼운 스킨십도 없어요. 이 사람의 마음을 정말로 모르겠어요. 저한테 관심이 없는 걸까요?]

 

 

이건 없는 거다.”

 

어장이네.”

 

백 프로라고 볼 수 있지.”

 

나 갖기는 애매하고 남 주기는 아까운?”

 

어려운 상대가 소개팅 주선 한 아냐? 부장님이라든지.”

 

그럴 수도 있겠다.”

 

그럼 쉽게 거절 못 하지.”

 

그치. 그 정도 급이면 힘들지.”

 

 

스케줄을 위해 이동 중인 차 안에서 흘러나온 라디오를 듣던 승훈과 승윤이 사연이 끝나기가 무섭게 기다렸다는 듯이 차곡차곡 말을 보탠다. 멍하니 창밖을 보던 민호가 뒤늦게 대화에 끼어들었다.

 

 

맘이 없다고? 그럼 뽀뽀는 왜 했는데?”

 

 

눈동자 네 개가 동시에 민호를 돌아본다. 그걸 말이라고 묻냐는 표정으로 기막혀하는 둘을 대신해 옆에서 폰에 몰두하던 진우가 심드렁하게 대답한다.

 

 

술 마셨다잖아. 분위기지.”

 

 

그래. 바로 그거지. 진우형은 뭘 좀 아네. 역시 나이를 헛먹은 게 아니야. 민호야 아직은 니가 우리팀 대표 모지리 맞다. 김모지리는 다시 송모지리에게 왕좌를 넘기시오. 멤버들은 여전히 벙쩌있는 민호를 놀리는 데 여념이 없다.

 

아니 잠깐만, 취하면 아무한테나 뽀뽀한다고? 무슨 사람이 그래? 어떻게 사랑이 그래요?

 

 

형 그런 사람이었어요?”

 

“..?....?”

 

마음도 없는데 뽀뽀가 된다고?”

 

갑자기? 나한테 불똥?”

 

분위기만 잡히면 안 좋아해도 막 만지고 뽀뽀하고 그럴 수 있어요? 형은?”

 

 

나머지 세 명과는 확연히 다른 온도의 민호가 엄청난 소리를 들은 사람처럼 질문을 퍼붓는다. 뜻밖의 반응에 황당해진 진우는 대답할 생각도 못 하고 기가 막힌다는 듯 웃으며 눈만 동그랗게 떴다. 사실, 그건 대답을 바라고 한 물음이라기보다는 억누르고 있던 감정의 폭발에 가까웠다. 최근 자신을 향한 진우의 행동에 대한 반작용이랄까. 화풀이랄까.

 

 

, 넌 왜 맥락 없이 형한테 지랄이야.”

 

 

아무것도 모르는 강승윤이 김진우를 두둔했다. 그니까. 쟤 내가 만만한가 봐. 형이 너무 오냐오냐해서 그래요. 그럼 이제부터 몽둥이로 다스리자. 한참을 낄낄거리다 뭐가 그렇게 재밌는지 위 아래로 하이파이브까지 하고 난리다. 얼씨구. 지들끼리 좋아 죽네. 허탈한 표정의 민호가 애꿎은 입술만 물어뜯는다.

 

분위기에 취해 앞뒤 분간 없이 냅다 몸부터 부대낀 게 문제였을까. 민호는 일본에서의 열락에 들뜬 밤을 곰곰이 곱씹었다. 계기가 뭐가 됐든 여지를 준 쪽은 진우다. 애당초 진우를 의식하며 먼저 피해 다닌 건 자신이었지만, 고약한 흙발을 하고 자신의 내밀한 영역을 엉망으로 해집어 놓은 건 그였다. 적어도 민호의 입장에선 그랬다.

 

그래놓고. 이렇게 팽하기냐고.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이전과는 1g도 다를 바 없이 구는 김진우가 야속했다. 민호도 진우가 갑자기 혀를 반 토막 내고 오늘부터 1일이라고 알랑거리는 건 꿈도 안 꿨다. 아니. 바라지도 않았다. 낯간지러운 걸 못 견뎌 하는 건 오히려 민호 쪽이었으니까. 그치만. 암만 그래도. 그렇게까지 물고 빨았으면서 어쩜 이럴 수 있느냐는 말이다.

 

 

 

"민호가 저래 봬도 의외로 순수한 구석이 있어. 좋은 거지 뭐. 착해서 그래."

 

 

그걸 뭐라고 하지. , 그래. 로맨티스트. 우리 민호가 아주 순정파야. 순정파. 민호의 시무룩한 표정을 읽은 승훈이 뒤늦게 상황을 수습해보려 했다. 생각 없이 웃고 떠들던 진우와 승윤도 그제야 그의 눈치를 살폈다. 허공에서 짧게 마주친 시선은 혐의가 없는 사람처럼 그저 순하기만 하다. 거기서 또 한 번 울화가 치미는 거다. 구슬처럼 도르륵 구르는 저 눈동자 뒤에 무슨 생각을 숨기고 있을까. 일본에서의 일은 영영 봉인하고 온 사람처럼 구는 주제에 자신이 왜 발끈했는지 알기나 할까?

 

그 날 그 밤에 자신의 방으로 찾아오지 않았더라면. 먼저 제 손을 쥐어 잡지 않았더라면. 그런 얼굴로 그런 눈빛을 하고 머리가 핑핑 돌 정도로 자극적인 말을 하지 않았더라면.

 

그럼 난 아무 짓도 안 했을 텐데. 우린 아무 일도 없었을 텐데. 나 혼자 이렇게 바보처럼 속을 뒤집는 일은 없을 텐데.

 

물론 그 밤이 싫었냐고 묻는다면 대답은 단박에 No. 오히려 미치고 팔짝 뛰게 좋았다는 게 문제다. 그 후유증으로 민호는 진우를 볼 때마다 만지고 싶고 품에 안고 싶고 가능한 모든 곳을 벗겨 맛보고 싶었다. 부끄러운 얘기지만, 김칫국인 줄 알면서도 인터넷 검색창에 남자와 섹스하기 위한 구체적인 방법과 필요한 용품까지 검색해 봤다.

 

왜냐하면 그 날을 기점으로 둘의 사이는 180도 바뀔 줄 알았거든. 그래, 백번 양보해서 180도까지는 몰라도 90도 언저리까지는 갔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게 자신만의 설레발이었다니. 솔직히 배신감마저 느껴졌다. 먹튀 당하는 게 이런 기분인 건가.

 

불꽃이 튀었다고. 그것도 어마어마 했다니까? 근데 그걸 나만 느꼈다고? 그게 말이 돼?

 

결국 분통이 터진다. 답답한 맘에 헤드폰을 끌어 쓰고 볼륨을 올렸다. 어느새 차분해진 진우의 눈빛이 민호의 옆얼굴에 닿아 멈춘다. 민호는 그의 시선을 느끼면서도 애써 고개를 창 쪽으로 돌리고 눈을 감았다.

 

 

 

 

 

*

 

 

 

 

 

새벽 4. 머리부터 발까지 구석구석 바깥의 냉기를 묻힌 민호가 어깨를 잔뜩 움츠린 채 돌아왔다. 스니커즈의 뒤축을 부대껴 이미 갖가지 신발들로 붐비는 현관에 아무렇게나 벗어 두고 어둠에 잠긴 집안으로 피로한 몸을 밀어 넣는다.

 

 

 

레이, 베이. 자다가 나왔어?”

 

 

하품을 주고받으면서도 사이좋게 현관으로 인사를 나온 레이와 베이의 머리와 등허리를 번갈아 가며 한 번씩 쓰다듬었다. 곧 방 안에서 자고 있던 죠니가 그 뒤를 따른다. 몸을 길게 늘여 기지개를 켜더니 배를 보이며 드물게 애교를 부린다. 반갑다는 그 몸짓에 온종일 시달린 몸과 마음이 단박에 녹아내린다. 아구구, 하고 앓는 소리를 내며 사랑스러운 얼굴부터 따끈한 배까지 닥치는 대로 쓰다듬었다. 맘속까지 간질이는 온기. 민호가 하루 중 가장 좋아하는 순간이다.

 

 

 

늦었네.”

 

 

반짝 켜졌던 현관의 센서 등이 꺼지고 온통 까만 어둠 속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예상치 못한 인기척에 조금 놀란 민호의 두 눈이 커졌다.

 

 

형 여태 안자고 뭐해요?”

 

 

소리가 나는 쪽으로 몸을 돌리자 새카만 어둠 속에서 혼자 앉아 있는 진우가 보였다. 핸드폰 액정의 희미한 불빛이 아니면 거기 있는 줄도 모를 뻔했다.

 

 

그냥 잠이 안와서.”

 

뭐야. 불도 안 켜고.”

 

 

진우의 갑작스러운 등장에 놀라 괜히 투덜거리며 손을 뻗어 주방 불을 켰다. 식탁 의자에 두 다리를 올려 무릎을 세운 채로 앉아있는 진우의 앞에는 반쯤 남은 위스키 병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 동물 모양의 머그잔, 그리고 옆구리가 길게 찢어진 과일 맛 젤리 한 봉지가 놓여져 있었다.

 

 

혼자 마시고 있었어요?”

 

. 널 기다렸지.”

 

 

물론. 넌 요새 안 마시지만. 이 배신자. 덕분에 난 외톨이가 됐어. 양 손을 펴 얼굴을 가리며 능청스럽게 흑흑 우는 척을 한다. , 참내. 하고 바람 빠지는 소리를 낸 민호가 목 끝까지 올린 집업 지퍼를 내리며 진우의 앞자리 의자를 빼 앉았다.

 

 

무슨 나를 기다려. 연락도 안 해 놓고. 딱 보니까 드라마 보느라 안잔거네.”

 

 

 

진우의 핸드폰에서는 최근 그가 열렬히 빠져있는 경찰 드라마의 한 장면이 재생되고 있었다. 눈짓으로 액정을 가르치자 머쓱한지 정지 버튼을 누르고 재빨리 폰을 뒤집는다. 기다리긴 뭘 기다려. 형이 내 생각을 하긴 뭘 해. 삐뚜름한 마음이 스멀스멀 올라온다.

 

 

 

부담 갖지 말고 천천히 열일 하시라고 방해 안 한 건데.”

 

, 입술에 침도 안 바르고 거짓말하는 거 봐. 형 진짜 옛날이랑 많이 변했다.”

 

. 옛날이 좋아? 예전으로 돌아갔으면 좋겠어?”

 

 

다분히 중의적인 물음에 민호는 얼굴을 굳혔다.

 

한국으로 돌아온 뒤 바쁜 나날의 연속이라 단둘이 얼굴을 마주할 시간이 적긴 했지만, 아예 없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에게 일본에서의 일을 꺼내려고 하면 그게 뭐? 근데? 어쩌라고?’ 하는 식으로 대화를 차단해 버리곤 했다. 메신저로 대놓고 우리 할 얘기 있지 않아요?’라고 보낸 적도 있는데, 얼굴 옆에 물음표를 달고 있는 복숭아 이모티콘이 답장으로 온 순간 그만 맥이 탁 풀려 도저히 대화를 이어나갈 수 없었다. 어쨌든 송민호는 충분히 할 만큼 했다.

 

오늘 이 자리가 김진우의 화해의 제스처인지 뭔지 아직 알 수는 없지만, 민호는 여전히 답답했고 아쉬웠으므로 뭐가 됐든 그의 흐름에 기꺼이 편승해 줄 용의가 있었다.

 

 

됐고. 나도 한 잔 줘 봐요.”

 

 

뾰족하게 귀가 달리고 동그랗게 주둥이가 나온 귀여운 머그잔에 독한 위스키를 3분의 1쯤 채운 진우가 민호를 향해 잔을 내밀며 반질반질 생기가 도는 얼굴로 묻는다.

 

 

얼음 넣어?”

 

 

이 형, 술 진짜 좋아하네. 피식 웃음이 나온다. 목을 길게 빼 식탁 반대편 진우의 잔을 흘끔 넘겨본 민호가 대꾸했다.

 

 

아니. 그냥 줘요.”

 

 

 

 

 

*

 

 

 

 

 

센 척하지 말고 그냥 얼음 넣어 달라고 할걸.

 

민호는 두 잔을 채 비우기도 전에 후회했다. 빈속에 독한 술을, 그것도 스트레이트로 들이부었으니 멀쩡할 리가 없었다. 식도부터 위장에 이르기까지 내장 기관의 모양을 확인할 수 있을 정도로 속이 화끈거렸다. 게다가 지나치게 오랜만의 술이었다. 위스키 몇 모금에 눈 아래가 벌써 뜨겁다. 이대로라면 곧 뻗을 것 같은데.

 

 

넌 왜 그렇게 눈치가 없냐.”

 

뭔소리에요.”

 

형이 딱 이르케 눈치를 줬으면. 알아서 착착 알아듣고 해야지.”

 

 

민호가 오기 훨씬 전부터 혼자 마시고 있던 진우의 상태도 그다지 온전하진 못하다. 온갖 손짓을 더 해가며 설명하는 말투가 엿가락처럼 축축 늘어졌다. 눈꺼풀을 끔뻑이는 속도도 현저히 느려져서 그의 별명처럼 정말 음매 소 같기도 하다.

 

 

괜히 어색해지고 할까 봐 계속 모르는 척하는데 왜 니가 화를 내?”

 

뭘 모르는 척하는데.”

 

뭐긴 뭐야.”

 

 

길게 뻗은 검지가 민호의 입술을 한 번, 그대로 쭉 내려와 단전 아래의 중심부를 한 번 가리켰다. 너랑 나랑. 그거 한 거. 본인이 생각해도 어이가 없는지 큭큭거리며 웃는다. 우리가 대체 뭘 한 거냐.

 

 

. 우리 심지어 맨정신이었잖아. 술기운 탓도 못해. 웃기다. 진짜.”

 

형은 뭐라도 탓해서 없었던 일로 하고 싶어요?”

 

 

잔 바닥에 깔린 술을 털어 마시고 손에 잡히는 젤리를 입에 넣어 굴린다. 포도 맛이네.

 

 

없었던 일로 하고 싶으면 그렇게 해. 형이 그러고 싶으면.”

 

넌 왜 화내는데.”

 

화 안 내는데.”

 

계속 화냈잖아.”

 

“......”

 

왜 화가 났어?”

 

“......”

 

넌 어떻게 했음 좋겠는데.”

 

.”

 

, 애들한텐 비밀로 하고 몰래 연애라도 할까?”

 

 

모르는 척 하는 거 말고 다른 선택지가 있기는 해? 진우의 눈빛이 묻는다. 눈앞이 일렁였다. 화가 나서인지 술이 올라서인지 분간할 수 없었다. 중간중간 웃음이 섞인 말투였지만 조금도 따라 웃을 기분이 들지 않았다.

 

 

 

 

 

*

 

 

 

 

 

 

와아. 술 된다.”

 

 

취기로 얼굴을 붉게 물들인 진우가 식탁에 한쪽 볼을 붙이고 엎드렸다. 무거운 공기. 더 무거운 눈꺼풀. 폐부 깊은 곳에서부터 긴 숨을 끄집어내 후우 하고 양껏 내쉬었다. 답답해. 더운 속이 슬슬 부대낀다.

 

 

졸리면 들어가서 자요.”

 

 

집업 주머니에서 립밤을 꺼내 바른 민호가 건성으로 대꾸했다. 444. 민호는 마지막 남은 위스키를 잔에 탈탈 털었다.

 

 

무슨 냄새지.”

 

?”

 

맛있는 냄새 나는데. 달콤한 거.”

 

. 이거?”

 

 

주머니를 뒤적여 베이비핑크 색의 립밤을 꺼내 진우의 눈앞에 올려둔다. 드러누운 채로 코를 킁킁거리던 진우가 감은 눈을 뜨다 말고 다시 질끈 감는다.

 

 

치워봐. 내가 맞춰보게.”

 

 

갑자기 게임이야? 민호는 웃음을 흘리며 다시 립밤을 거두어 주머니에 쏙 넣는다. 됐어? 나 이제 눈 뜬다? 식탁에 눌려 뭉개진 입술 새로 이어지지 못한 단어들이 떠듬떠듬 흘러나온다.

 

 

. 기회 3번 줄게요. 그럼.”

 

 

민호는 진중한 얼굴로 머리를 쓸어넘기며 립밤 냄새에 집중하는 진우가 웃기기만 하다. 이게 이렇게 진지해질 일인가. , 술 마셔서 후각이 둔해졌어. 너 좀 더 가까이 와 봐. 손가락 두 개를 까닥거리며 고개를 들고 자세를 고쳐 제대로 앉는다. 입술 쪽쪽 해봐. 향기 더 잘 나게. 졸지에 허공에 키스를 날리게 된 민호는 이게 뭔가 싶었지만 일단 시키는 대로 했다. 쪽쪽쪽. 이렇게요?

 

 

...딸기?”

 

.”

 

... 무슨 과일인데 분명히. 망고?”

 

땡땡.”

 

되게 달콤한데. 뭔가.”

 

형 못 맞출 거 같아. 점점 멀어지고 있어.”

 

아이스크림 냄샌데. 나 이거 아는데.”

 

 

알 듯 말 듯 답답해진 진우가 몸을 쑥 빼 식탁을 가로질러 양 손바닥을 벌린다.

 

 

얼굴 줘 봐.”

 

 

민호는 진우가 만든 꽃받침에 말 잘 듣는 꼬맹이처럼 턱을 가지런히 올렸다. 이제 마주한 두 얼굴의 간격은 한 뼘도 되지 않는다. 진우가 민호의 얼굴을 지탱하고 있던 양손 중 한쪽 손을 빼 이마를 살살 쓸어넘기며 아이를 어르듯 말한다.

 

 

우리 민호 이마 참 이쁘지.”

 

 

가만히 예쁨을 받던 민호가 쑥스러운지 고개를 숙이며 목을 큼큼 가다듬었다. 뭐야. 딴소리하지 말고 빨리 맞춰요.

 

 

마지막 기회야. .”

 

 

좀 더 가까워진 얼굴에 민호는 저도 모르게 숨을 멈췄다. 이마며 머리를 쓰다듬던 손이 다시 내려와 처음처럼 얼굴을 감싼다. 시선이 맞닿는다. 요동치는 속이 고스란히 투영되어 보이는 큰 눈망울. 남들이 보기엔 좋을지 몰라도 감정을 숨기는 데엔 쥐약이다.

 

 

어떻게 하지.”

 

“......”

 

내가 널 어떻게 할까, 민호야.”

 

 

딱히 이름 붙일 수 있는 감정도 관계도 못되었다. 피차간 겪은 세월이 길었어도 애정 관계로 인지한 지는 불과 한 달도 안 됐고, 썸 이라는 애매한 수식어를 갖다 쓰기엔 또 서로를 너무 잘 알았다. 이미 헐벗고 질펀하게 뒹군 판에 이제 와서 옷깃만 스쳐도 떨리는 사이처럼 내외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그렇다고 꼴릴 때 욕구나 푸는 소비적인 사이가 되기엔 둘 다 너무 순해 빠졌다. 어떻게 생각해도 결론이 안 났다. 이런 건 두 사람 다 경험한 적이 없었다. 이전에 겪은 연애들은 전혀 도움이 안 됐다. 모든 게 새로웠고, 그래서 너무 어려웠다.

 

 

형 맘대로 해.”

 

“......”

 

그냥 마음 가는 대로 해요.”

 

그걸 모르겠으면?”

 

 

확실한 건 아무것도 없었다. 그래서 가면 안 된다는 걸 알면서도 자꾸만 그 너머가 궁금했다.

 

 

그럼 내가 가르쳐줄게.”

 

 

자리에서 일어서는 민호의 움직임에 맞춰 식탁 의자가 듣기 싫은 소음을 내며 밀렸다. 거실 소파 위에서 몸을 둥그렇게 말고 잠들었던 죠니가 그 소리에 귀를 세우고 주변을 둘러본다. 민호는 일으킨 몸을 깊숙이 숙여 저를 올려다보는 진우의 입술에 가볍게 입을 맞췄다. 입술만 슬쩍 눌러 부벼진 담백한 키스였다.

 

 

이제 알겠어요?”

 

“...아니.”

 

 

따뜻하고 말랑한 입술에서는 복숭아 향이 났다. 진우는 대번에 눈치챘지만, 정답을 말하지 않았다. 그저 민호의 입술에서 제 것으로 옮겨 발라진 립밤을 손가락 끝으로 톡톡 두드리며 눈동자만 굴렸다.

 

 

더 해봐야 알겠어?”

 

 

더 해보면 뭘 더 알 수 있을까. 우리가 어디까지 갈 수 있을까.

 

밤이 끝나가고 있다. 곧 있으면 푸르게 동이 틀 것이다. 진우는 그 전에 선택해야 한다.

 

 

이리와.”

 

 

양팔을 벌리자 품에 넘치게 가득 안기는 커다란 몸. 그 밤과는 반대로 이번엔 진우가 민호의 등을 토닥였다. 고개까지 어깨에 묻은 채 마주 기대오는 덩치가 귀여워 실없이 웃는다.

 

 

기억 안 나는 척하지 마요.”

 

?”

 

내일. 기억 날린 척하지 마.”

 

“....”

 

술기운이었다고 발 빼지도 말고.”

 

알았어.”

 

 

 

근데 너 원래 이렇게 잔소리 심한 타입이었냐. 핀잔을 주는 목소리와 달리 등허리를 쓰다듬는 손길은 퍽 다정하다. 맞댄 가슴으로 느껴지는 심장 박동은 숨이 턱 끝까지 오른 스프린터의 것처럼 빨랐다가 조금씩 정상궤도로 돌아오고 있었다. 아릴 정도로 뜨거웠던 속도 아까보단 한결 편안하다.

 

약속할게. 모른 척 안 할게. 민호는 작게 웅얼거리는 그 목소리를 들으며 좀 더 깊게 목덜미에 얼굴을 묻었다. 벼락같이 잠이 쏟아진다.

 

비로소 긴 하루의 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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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4. 26. 15:57

진우는 지금 매우 당황스럽다.

 

""

 

벌거진 두 볼하며 코를 훌쩍거리는 꼬라지가

 

"왜 그 새끼랑 사귀는거예요"

 

잘못돼도 확실하게 뭐가 잘못됐다.

 

 

연애의 운세

송민호 김진우

w. PERCY

 

 

 

 

 

아침부터 일진이 좋지 않았다. 잠이 많은 탓에 항상 세 네개씩이나 설정해놓았던 알람이 하나도 울리지 않았던 것과 부랴부랴 뛰어나와 강의실에 도착했을 땐 이미 저의 이름이 불리고 난 뒤라던가. 시간이 없어 미처 확인하지는 못했지만 분명히 오늘의 운세는 한 마디로 [개판] 일 것이다

그리고 지금

 

"진우형, 애인 생겼대잖냐"

"?"

 

술이 코로 들어가는 줄 알았다. 안그래도 사나운 일진에 교수님한테도 엄청 깨지고 그 분이라도 풀러 동기들 술자리에 합석했던 건데, 민호의 머릿속이 뒤집어진다. 진우형이? 14학번 김진우형? 우리 경영대 과탑 김진우? 몇 번이고 되물어보려던 말들이 부서져 목구멍 뒤로 넘어갔다. 일단 침착하자, 침착하고 머리를 굴려보자. 이 형이 요즘 만나는 사람 나한테 한 번도 말한 적 없는데. 그렇게 많은 시간을, 24시간이 있으면 거의 15시간은 나랑 붙어있었는데 누구를 만나? 민호의 속이 타들어간다. 아주 작은 불씨가 심장 끝에 난 거 같이 따끔따끔하고 아주 천천히 도화선을 따라 타들어간다

 

", 아닐걸"

"아니긴, 야 나랑 윤주누나가 직접 들었는데"

 

용기내서 부정을 했는데 그게 더 화를 불러버렸다. 당당하게 자신있어하는 승윤의 눈빛에 민호는 떨리는 동공과 촛점을 다시 잡고 안주로 내리깔았다

 

"일주일 전인가, 누나 맞죠"

"어어, 야 그 때 김진우가 좋아하는 사람 있다고 곧 사귈 거 같다고 했어"

"야 봐봐, 근데 항상 생각은 했어. 진우형 그 얼굴로 누구 안사귀나 했는데, 드디어!"

 

그렇구나. 진짜구나. 무의식에 들은 소주병이 달달 떨린다. 저의 소주잔에 덜그럭 거리며 꼴꼴 떨어지는 소주를 가만히 보고 있자니... 이런 생각이 든다. . 나는 어장을 당한 거였구나. 아니, 아니지. 내가 착각을 했던 거 였구나. 형은 원래 태생이 친절한 사람이었고 살가운 사람이었다. 저가 새내기 때를 생각해보면 초반에 낯을 가려 섞이지 못했던 저를 이래저래 잘 챙겨주고 도와줬던 것도 다 진우 였다. 그래, 형은 그런 사람이었다. 나는 착각을 했고, 실상 형이 좋아하는 사람은 따로 있던 것이다. 어쩐지 요즘 시험기간이라고 잘 못보고, 지금도 6시간 전에 했던 카톡도 답장이 없는 걸 보면. 그래도, 그래도 그렇지.

진짜. 진짜 망했다

술은 쉴틈 없이 민호의 목구멍 뒤로 넘어갔다. 얼마나 마셨으면 식탁에 미처 올라가지 못한 술 병들은 동기들 다리 사이사이로 나뒹굴어져 있다. 알바가 보면 뒤로 넘어갈 꼴이다

 

"어 승훈 형이다"

"응 그래~ 나 왔다, 아 뭐야, 얘 뭐야 왜 이래"

"몰라요, 아까부터 꼴에 안맞게 말도 안하고 술만 퍼마시다가 저 지경 됨"

", 송민호, 민호야"

 

으에? 세상 웃긴 추임새와 함께 반쯤 떠진 눈이 천장을 향하다 이내 저를 부르는 목소리 주인공에게 눈을 옮겼다. 어 형, 오냐. 꿈뻑꿈뻑 눈을 느리게 뜨고 주변을 살피니 이미 집에 간 사람들이 꽤 여럿 있나보다. 고개도 쳐박고 술만 마셨으니 누가 오고 가고를 알 턱이 있나. 이게 다 실연의 상처라고-시작조차 하지 않았지만- 괜시리 눈물이 날 거 같아서 다시금 식탁으로 머리를 쳐박았다. 쿵 소리 나게 박은 터라 이마가 얼얼했지만 그게 무슨 신경이야, 진우형 애인 생겼다는데

 

"근데 왜 형만 왔어요, 진우형은"

"아 걔, 집간다고. 피곤하다고 가던데"

 

여기 잔 하나만 주세요- 가볍게 말을 잇는 승훈과 승윤 사이로 웬 주정뱅이가 끼어들었다. 진우형이요?! 1분전까지만 죽어가면서 널부러진 민호가 게슴츠레 떠지는 눈을 간신히 눈꺼풀을 당겨 승훈을 바라보았다. 승훈은 눈썹을 들썩인다. ... 어 야 부담스럽다 야, .. 아 죄송해요

 

"걔 왜"

"진우형 애인 생겼잖아요 그래서 오면 그거 물어보려고 했는데, 아 아깝다"

"아 진짜? 어쩐지 저번주도 나랑 약속 깨고 어디 가더니"

 

알바생이 가져다 준 잔을 들고 반정도 차있는 맥주병을 기우는 승훈이다. 그리고 한 번의 기우뚱, 식탁이 내려앉는 줄 알아 맥주잔을 저도 모르게 꼭 잡았다

 

"진우형, 진우형 어딨어요"

"?"

"저 진우형 한테 가야해요"

 

언제 열린지도 모를 저의 가방을 주섬주섬 챙기는 민호를 가만치 보며 승윤은 오징어를 씹어물었다. 쟤 취했나.

 

 

 

 

***

 

 

 

   다음주 당장 있는 시험에 이골이 생겨 여지껏 공부를 하다 나오니 머리가 핑 돈다. 아 춥다- 날이 풀렸다고는 하지만 아직까지 춥긴 춥네. 어제 일기예보로 날 풀린대서 맨투맨만 입고 나왔더니. 진우는 가방을 고쳐메고 손끝을 꼼지락 거렸다. 확실히 겉 옷도 챙겨왔어야 하나 생각이 든다. 아직까지 밤 날씨가 쌀쌀해서 저의 팔을 삭삭 훑었다. 이 놈의 캠퍼스는 가로등을 고친다고 한 지가 석 달 짼데 고칠 생각을 안하는 것 같다. 후레쉬라도 비치려니 휴대폰도 애저녁에 배터리가 없는 바람에 꺼졌고, 그렇다고 요즘 같은 디지털세대에 누가 개인 손전등을 들고다니겠는가

   민호 아까 힘들어 보이던데, 시험기간이라 잘 마주치진 못했지만 그래도 가끔 강의실을 옮기다 보면 마주치는게 민호다. 진우는 코웃음을 살짝 흘렸다. 생각만 해도 웃음이 실실 샌다. 언제인지는 정확하게 기억이 나진 않지만 여튼 오래된 거 같다. 짝사랑이라고 해야하는데 요즘 저가 봤을 땐 민호 쪽도 기운이 꽤 괜찮아서 쌍방이라고 말을 해야하는 건지, 가끔은 띨빵하고 또 가끔은 지적인 모습이 사람을 홀린단 말이야. 그런데 그렇게 말도 많고 힘도 많은 앤데 오늘 따라 축 쳐져있길래 아까 커피나 주려고 샀었는데, 결국 그 이후로 코빼기도 보이지않아 주지는 못했다. 진우는 저의 가방 속에 덜그럭 거리는 캔커피 소리를 들으며 버스정류장으로 내려갔다

 

"?"

","

"민호야?"

 

울었나 싶을 정도로 벌개진 눈과 추워서인지 취해서인지 한껏 벌개진 볼에 퉁퉁 불은 입술. 송민호가 서있다.

 

   그리고 지금 여기. 그렇게 허둥지둥 나와 학교 앞 버스정류장에서 진우를 맞딱드린 민호다. 거칠고 탁한 숨을 내뱉다가 한 번 크게 들이 마쉬고 한숨을 내쉰다. 위장 속에서 끝도 없이 부어진 소주에 맥주가 자체 소맥이 되어 안주까지 엉망진창이 된다. 그런 배를 잡고 뛰었으니, 옆구리가 쿡쿡 쑤시듯 아프다. 인상을 한 번 찡그리고 저의 앞에 헐렁한 맨투맨에 소매가 가려져 얇은 손가락 몇 개를 보이는 진우를 내려다 본다.

 

"형은, 형은 저랑 영화도 보고 밥먹고 노래방도 가고, 썸 탈 거 다 타놓고 왜 다른 놈이랑 사겨요"

 

적잖게 당황한 진우의 모습이 놀란 토끼 같다. 내가? 내가 누구랑? 진우가 말을 하기도 전에 저가 하고 싶은 말만 내뱉는 민호다.

 

"진짜, 진짜 추한 거 아는데 그래도요, 제가 형 진짜 많이 좋아하는 거... 알면서..."

 

결국, 기어코 참던 눈물이 뚝 떨어졌다. 아스팔트 바닥에 뚜둑 하고 떨어진 물줄기가 진우를 더욱 놀라게 했다. 물론 이미 터져버린 민호의 폭탄발언에 충분히 놀란 상태였지만 눈물까지 굵게 떨어뜨리는 민호에 소매를 걷어 끝이 빨개진 손으로 민호의 양 옆 어깨를 붙들었다. 민호, 민호야, 형 봐봐

 

"사귈 거면, 진짜 사귈 거면요... 저랑... 저랑 사겨야죠"

"아니, 민호야... 울지말고, 내가 누구랑 사겨?"

 

이내 통곡을 해버린다. 꺼이꺼이 우는 민호는 저 다 들었어요 한마디를 하고 다시금 꺽꺽 거리며 눈물과 콧물을 먹는다. 일단 진정을 시키고 말을 이어야 할 거 같은 마음에 토닥거리던 진우는 결심한 듯 민호의 양 볼을 덥썩 잡았다. 민호야.

 

"누구한테 들었어, 누가 그런 헛소리를 퍼뜨려"

"강승윤이랑... 윤주 누나... 그리고 승훈 형도..."

 

자초지종을 횡설수설 말하는 민호의 말이 끝나자마자 진우는 그런 민호를 버스정류장 벤치에 앉혔다. 묵직하게 메고 있던 가방도 손수 내려주고 민호를 지긋하게 쳐다보다 입을 다시 뗐다. 내가 말한게 아니잖아.

 

"..."

"그리고 그거, 아씨"

 

웃음과 함께 비속어가 튀어나올 뻔했다. 그거 너야 새끼야. 라는 말을 참고 눈빛을 고쳐잡았다. 선명하게 남아버린 민호의 눈물자국을 꾹꾹 눌러 닦아주고 땅만 쳐다보는 민호를 툭 쳤다. 퉁퉁 부어서 댓발 나온 입술과 함께 애꿎은 바닥만 차는 민호에 웃음이 슬그머니 새어나왔다. 그래도 우는 꼬라지가 저 때문에 우는 거니 나쁘진 않네.

 

"너는 형이 생각 없어보이냐"

"아뇨! 아니죠... 아니에요... 형 저보다 공부도 잘하시면서, 무슨..."

"! 그 소리가 아니잖아"

 

결국 꺄르르 웃음이 터졌다. 영문 모르는 민호는 멀뚱히 그런 진우를 쳐다보았고 진우는 생각했다. 이 놈은, 정말로 연애의 ''자도 모르는 놈이다. 저또한 연애에 젬병이지만 얘는 정말 차원이 다르게 모르는 놈이다. 저번에 말하는 거 들었을 땐 1년에 365명을 만날 기세더니만

 

"멍청아, 내가 너랑 이러고 있는데 누굴 만나"

"? ?"

 

코를 한 번 훌쩍 먹어주고 눈을 땡그랗게 떠보이는 민호다. 미처 닦지못해 눈가에 아른 거리는 눈물방울이 달빛에 비쳐 반짝하고 빛이 난다. 그게, 그게 무슨 의미예요? 민호는 진우에게 신호를 보낸다.

 

"의미랄게 있냐고, 말 그대로지..."

 

진우는 그런 민호의 신호를 잽싸게 받았다.

싱긋싱긋 웃는 진우의 속이 보인다. 민호는 주먹을 꾹 쥐던 손을 벤치에서 아른거리다 진우의 어깨를 잡고 모서리 끝을 감쌋다. 뭐 하나 해버릴 기세로 펼친 팔이지만 결국 고개를 점점 숙이며 어깨 끝 쪽 만 감질맛 나게 쪼물거리기만 한다. 그러더니 다시금 벌개진 얼굴을 들어보이며 입을 뗀다. 덜덜 떠는 걸 아는지 모르는지.

 

", 그거, 그 말 있잖아요"

""

"저랑 똑같은 마음이라고... 그니까 제가 앞에서 말했던... 그거, 십분 전에, , 그니까요 형"

 

알겠으니까 천천히 말해 ㅋㅋ 저의 어깨를 감싸고 있던 민호의 손을 겹쳐 손 마디를 잡으며 입을 뗐다. 결국 횡설수설 말하는 민호 때문에 이미 참을 생각 없던 웃음이 다시 한 번 크게 터졌다. 칼을 꺼내어 나무하나 벨 거 같은 기세로 팔을 뻗더니만, 다 허세였나봐

 

"- 맞아, 맞다구,"

"...?"

"맞다고, 너도 나 엄청 좋아하는 거 알고, 나도 너 엄청 좋아하니까"

 

지구 반바퀴를 돌 것 같던 삽질이 끝나간다

 

"사겨요! , 저랑... 저랑 사겨요"

 

민호의 입꼬리는 주체를 못한다. 눈꼬리와 입꼬리 끝이 서로 맞딱드릴 만큼 헤벌쭉하게 퍼진 표정하며 아직도 남아있는 술기운과 설렘의 포인트 홍조가 얼굴 가득 메웠다. , 형 그러면 왜 저 카톡 안봤어요, 휴대폰이 꺼졌었어, ... 아니, 그리고! 저번주에 승훈형 안만나고 다른 사람 만났다면서요, 너잖아 바보야,

 

 

 

 

송민호님의 오늘의 운세 

[알고지내던 사람과 인연이 생길지 몰라요. 오늘은 본인의 감정에 충실해보는게 어떨까요?] 

 

 

 

 

Fin.





Written By. PERCY (Twitter Account : @percykingd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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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ve Me In (Written by. NYOTA)
2018. 4. 26. 15:54

Cave Me In



w. NYOTA

 

 

 

 

 

 

 

 

 

 

 

0.

 

, , 아아.”

 

 

 

한 평 남짓한 방 안에 습한 소리와 살결이 부딪히는 소리가 가득 울렸다. 침대에 얽힌 두 남자의 움직임이 한층 격해지더니 날카로운 신음과 함께 이내 모든 동작이 한꺼번에 멎었다. 하아, 하아, 숨을 가쁘게 몰아쉰 민호는 제 위에서 허리를 놀리던 진우의 어깨를 끌어당겨 얼굴에 정신없이 키스를 퍼부었다.

 

 

 

 

 

간지러워.”

 

 

 

 

 

빨갛게 상기된 얼굴에서 소년같이 순박한 웃음이 터졌다. 방금 전까지 제 위에서 한껏 야한 모습을 보였다고하기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민호는 그런 진우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으며 느리게 진우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이번에도 어김없이 밀려오는 공허함. 방금 전까지 뜨겁게 몸을 섞었지만 민호는 알고 있었다. 지금 자신이 가진 건 진우의 순간 뿐이라는 걸. 하지만 그는 항상 더 많은 것을 원했다. 김진우의 순간이 아닌 전부를. 마음 안에서 점점 그 크기를 키워가는 욕심에, 그럴수록 여실히 느껴지는 가슴의 빈 자리에 답답함을 느낀 민호는 어렵게 입을 뗐다.

 

 

 

 

 

"진우 형,"

 

"?"

 

"...우리 무슨 사이예요?"

 

 

 

 

 

 

 

 

 

1.

 

송민호가 김진우를 처음 만난 곳은 갓 새내기가 되어 가입한 동아리의 개강파티였다.

아무것도 모르는 새내기들에게 선배들이 우글우글 모여있는 곳은 어색하지 않을래야 어색할 수 밖에 없는 장소였다. 엉거주춤 서서 선배들을 대충 눈으로 훑던 민호의 눈에 한 사람이 들어왔다. 자신들을 바라보고 있는, 동그란 눈을 가진 하얀 남자. 살짝 지은 미소에도 움푹 패인 보조개가 눈에 띄었다. 민호와 마찬가지로 후배들의 얼굴을 죽 훑던 남자와 민호의 시선이 마주쳤다. 아주 잠시, 그러나 분명히.

 

 

 

 

 

그럴 생각은 아니었는데, 개강파티 내내 자꾸 시선이 그 선배에게 계속 갔다. 약간 어두운 술집 조명 아래에서도 그 사람이 있는 쪽은 조금 더 밝은 것 같았다. 무슨 이야기들을 나누는지 남자의 얼굴에서는 미소가 떠나질 않았다. 한 번쯤 옆에 가볼까 싶었지만 하도 주변에서 민호를 잡아대는 통에 상황이 여의치 않았다. 시간이 깊어지고 몇몇 이들이 하나둘 일어나기 시작할 무렵, 자리가 어수선해지면서 민호의 옆자리가 비었다. 그 선배 옆은 어떠려나 싶어 고개를 돌렸는데 마지막으로 앉아있던 자리에 그 남자는 보이지 않았다.

 

 

 

 

 

안녕.”

 

 

 

 

 

옆에서 들린 낯선 목소리. 민호가 고개를 휙 돌리자 자신이 찾고 있던 남자가 보였다. 남자는 민호 옆자리에 앉더니 민호를 향해 고개를 갸웃거렸다. 부쩍 가까워진 얼굴에 괜히 민망한 마음이 들었다.

 

 

 

 

 

, 안녕하세요.”

 

잘생긴 후배님이네. 이름이 뭐랬더라?”

 

송민호입니다. 선배님.”

 

 

 

 

 

생각보다 서글서글한 사람이네, 그 사람에 대한 첫인상이었다. 선배님이라 불린 남자는 까르르 웃으며 민호의 어깨를 가볍게 쳤다. 그냥 형이라 불러도 되는데. 후배님이랑 두 학번 차이 밖에 안 나. 나긋한 손길에 민호의 얼굴에도 살풋 웃음기가 번졌다.

 

 

 

 

 

그럼 그럴까요, ?”

 

훨씬 듣기 좋네. 그럼 민호, 같이 짠할까?”

 

 

 

 

 

그렇게 만난 남자가 김진우다. 자리를 비우는 이들이 늘어나고, 꽤나 규모가 컸던 개강파티가 소수의 인원만 남을 때까지 진우는 줄곧 민호의 옆에 있었다. 그다지 의미 없는 스몰톡이 오갔지만 민호는 뭐가 그리 즐거운지 비식비식, 저도 모르게 웃음을 흘리고 있었다. 그냥, 잘 맞는 사람 같았다. 별거 아닌 이야기도 이렇게 즐겁게 할 수 있는 사람이라니.

 

 

 

 

 

? 김진우, 안 갔어? 지금 열두 시 반 넘었으면 막차 놓친거 아냐?”

 

“...? 형 가야했어요?”

 

 

 

 

 

화두가 한창 민호의 자취 얘기로 빠진 와중에 누군가 물었다. 깜짝 놀란 민호와는 달리 진우는 대수롭지 않게 어깨를 으쓱했다.

 

 

 

 

 

괜찮아. 나 민호가 재워줄거래.”

 

 

 

 

 

그런 적 없었다. 물어본 선배에게 대충 대답을 한 진우는 '나 재워줄거지?' 뒤늦게서야 양해를 구하며 미소를 지었다. 민호는 저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초면이었지만 그냥, 상관없을 것 같았다. 얼렁뚱땅 약속을 하고 난 뒤로는 오히려 민호가 시계를 자주 보기 시작했다. 언제 들어가자고 말할까. 별다른 것도 아니고 제 친구들 재워주듯이 오늘은 선배 한 명 재워주는 것뿐인데 평소와는 다르게 긴장이 됐다. 진우는 그런 민호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다른 이들과 한창 여유롭게 웃고 떠들고 있었다.

 

 

 

 

 

 

 

진우가 민호의 어깨에 가볍게 손을 올린 것은 새벽 두 시 반을 넘긴 시간이었다. 아까보다 조금 더 뺨이 발그레해진 진우가 민호에게 활짝 웃었다.

 

 

 

 

 

, 조금 피곤하네. 갈까, 민호야?”

 

 

 

 

 

 

 

 

 

2.

 

둘이 마신 양만 해도 족히 열 병이 넘어갈텐데, 진우는 좀처럼 취한 기색이 없었다. 얼마 되지 않는 거리를 멀쩡히 걸어온 진우는 민호의 집에 들어서자마자 넓지 않은 그 공간을 분주히 누볐다. 이것저것 집안을 둘러보는 눈이 호기심으로 반짝거렸다. 민호는 천진해보이는 그 모습에 괜히 웃음이 나오려는 걸 꾹 참으며 여분으로 마련해둔 이불을 깔 준비를 했다. 민호의 곁으로 다가온 진우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이불은 또 왜?”

 

제가 바닥에서 자게요. 형 침대 쓰세요.”

 

 

 

 

 

민호의 방 한켠에 놓인 매트리스는 성인 남자 두 명이 넉넉하게 누울 사이즈가 되진 못했다. 이불을 깔려는 민호의 손을 진우가 막았다.

 

 

 

 

 

아냐, 그냥 저 위에서 같이 자자.”

 

 

 

 

 

멈칫. 그 말에 민호의 움직임이 멎었다. 눈을 동그랗게 뜨고 진우를 쳐다보자 진우는 별 거 아니라는 듯 어깨를 으쓱했다. 집주인 바닥에 재우는 손님이 어딨어. 살풋 웃는 미소가 말했다. 그럴싸한 말이었지만 그렇다고 손님을 바닥에 재울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잠시 고민하던 민호는 이내 이불을 도로 넣었다.

 

 

 

 

 

 

 

 

 

 

 

불은 껐지만 쉽게 잠이 오지 않았다. 두 명이 누울 정도의 공간이 나와 일단 눕긴 했지만, 예상했던 만큼 좁은 탓에 서로의 살이 바짝 맞닿아있었다. 평소의 민호라면 살 부대끼는 정도야 아무것도 아니었지만, 지금 억지로 두 눈을 감은 민호의 가슴은 이상한 긴장감으로 쿵쿵,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옆으로 돌아누운 진우의 숨결이 어깨에서 감돌았다.

 

 

 

 

 

"...민호야."

 

"?"

 

"잠이 안와?"

 

"..."

 

 

 

 

 

푸흐흐, 옆에서 낮게 웃는 소리가 들렸다. 민호는 그 웃음에 몸을 틀어 진우와 눈을 맞췄다.

 

 

 

 

 

"형은 왜 안자요?"

 

"...그냥."

 

 

 

 

 

가까이 붙어있자니 시야에 들어오는 게 커다란 눈밖에 없었다. 진우는 눈을 곱게 접어 웃고있었다. 까만 눈동자는 바깥에서 들어오는 희미한 가로등빛에도 반짝이고 있었다. 민호는 한참이나 반짝이는 눈동자를 바라보았다. 그 빛이 새삼 가까워졌다고 느낀 순간,

 

 

 

 

 

-

 

 

 

 

 

촉감이 먼저, 그 다음이 소리였다. 민호의 입술에 말랑한 감촉이 와닿았다. 갑작스러운 진우의 행동에 민호는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몰랐다. 그러니까, 이건. 황망한 표정으로 입술을 더듬는 민호를 보자 진우가 아까보다 더 크게 웃음을 터트렸다.

 

 

 

 

 

", 귀여워."

 

 

 

 

 

그 한 마디를 끝으로 진우는 도로 눈을 감아버렸다. 얼마 지나지 않아 고른 숨이 진우의 입에서 샜다. 그렇게 혼자 잠이 들어버린 것이었다. 물론 그 때까지도 민호는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민호는 천천히 상황을 정리했다. 그러니까, 방금 송민호는 -적어도 머리가 크고 나서는- 처음으로 남자와 뽀뽀를 했다. 그것도 입술로. 술기운이 단번에 몸에서 빠져나갔다. 아까도 쉬이 잠들지 못했는데, 지금부터는 더더욱 잠들 수가 없을 것 같았다. 진우는 대체 왜 자신에게 뽀뽀를 한 걸까? 차라리 꿈이었으면 싶었지만 꿈이라기엔 그 감각이 아직도 생생했다. 놀란 심장은 쉽게 진정되지도 않았다.

 

 

 

 

 

술을 너무 많이 마셔서 그런 걸 거야. 밝아오는 창을 보며 겨우 내린 결론이었다. 역시나 잠은 한숨도 자지 못했다. 이대로 잠드는 것도 글렀다 싶은 민호는 하염없이 잠든 진우의 얼굴을 바라보고 있었다. 천사처럼 잠든 얼굴을 보고 있자니 겨우 진정시킨 마음이 다시 울렁거리는 것 같았다. 바깥이 좀 더 밝아지고, 햇살과 함께 진우의 눈이 천천히 떠질 때까지 민호의 눈은 진우에게서 떨어질 줄을 몰랐다.

 

 

 

 

 

잘 잤어?”

 

 

 

 

 

눈을 뜨자마자 싱긋 웃는다. 미소가 아주 습관인 사람이었다. 민호는 한숨도 못잤다는 말은 하지 못해 씨익 웃고는 피곤한 얼굴에 마른세수를 했다. 어쨌든 이렇게 아무렇지도 않게 자신을 대하는 걸 보니 어제 진우는 멀쩡한 게 아니라 취했던 것이 분명했다. 그래서 기억을 못하는거고. 괜히 자신만 신경을 곤두세운 것 같아 멋쩍은 마음이 들었다. 양손에 파묻었던 얼굴을 든 민호는 피곤한 기색을 감추며 자연스러운 척 진우에게 물었다.

 

 

 

 

 

해장하러 갈래요, ?”

 

 

 

 

 

술에 취했을거라고 결론을 내렸지만 마음 한구석의 의심이 가시지 않았는지 민호는 계속 진우의 눈치를 보고 있었다. 하지만 진우는 그런 민호를 아는지 모르는지, 자신에게 구는 행동이 너무나 자연스러웠다. 어떻게 먹었는지 모를 밥을 다 먹고 나오자 이제 헤어질 시간이었다. 어쨌든 어젯밤 있었던 일은 자신만 기억하는 해프닝으로 마무리 해야겠다 싶었던 민호가 먼저 인사를 건넸다.

 

 

 

 

 

"조심해서 들어가요, 진우 형."

 

 

 

-

 

 

 

잘가 민호야.”

 

 

 

 

 

갑자기 다가온 체온에 민호의 몸이 또 한 번 굳었다. 입술을 뗀 진우는 어제부터 줄곧 봐온 해사한 미소를 지으며 다음에 보자, 손을 흔들며 짧게 인사를 했다. 이건, 확실히 취중은 아니었다. 그럼 어젯밤의 일도... 남겨진 민호는 우두커니 서서 멀어져가는 진우의 뒷모습을 멍하니 바라볼 수 밖에 없었다. 버스 정류장을 향해 통통 뛰어가는 진우의 귀끝이 흩날리는 벚꽃잎 때문인지 아까보다 조금 더 분홍빛을 띤 것 같기도 했다.

 

 

 

 

 

3.

 

그 때부터였다. 김진우와 묘한 사이가 된 건. 가볍게 뽀뽀로 시작한 스킨십이 빈도가 잦아지고, 농도가 짙어져키스로, 섹스로 이어지는 건 순식간이었다. 묘하다는 것은 어쨌든 스스로 납득이 불가하다는 것을 뜻했다. 민호는 도무지 자신이 왜 그렇게 김진우에게 약한지 알 수가 없었다. 다른 사람이었으면 애초에 가능하지도 않았을 것들이 김진우 앞에서는 너무나 자연스러웠다. 그리고 진우가 민호의 생활에 더 깊이 파고들면 파고들수록, 마음 한구석에 피어난 이름모를 감정도 그 크기를 점점 키워가고 있었다.

 

 

 

 

 

"...우리 무슨 사이예요?"

 

 

 

 

 

몇 번을 참다가 겨우 물은 것이었다. 남들이 흔히 말하는 연인이라고는 할 수 없었다. 둘 사이에는 지금까지 연인이라고 할 만한 어떠한 애정표현도 오가지 않았으니까. 나긋하게 자신을 끌어당기는 김진우와 그에 솔직하게 반응하는 송민호. 딱 그렇게 정의내릴 수 있는 관계였다.

 

 

 

 

 

"우리?"

 

 

 

 

 

얇은 입술을 앞으로 쪽 빼밀더니 흐음, 고민하는 목소리를 낸다. 이내 진우는 아무렇지도 않게 민호를 향해 웃었다.

 

 

 

 

 

"무슨 사이긴. 그냥 친한 형동생 사이지."

 

 

 

 

 

지금까지 진우의 행동으로 미루어보아 충분히 예상한 대답이었건만, 울컥한 마음이 치솟았다. 당장이라도 따져묻고 싶었다. 형은 '친한 동생'과 키스도 하고 섹스도 하냐고. 하지만 민호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속으로 화를 꾹 삼켰다.

민호가 진우와 몇 차례 몸을 섞으며 알게 된 사실이 있었다. 섹스를 할 때의 진우에게서 평소엔 볼 수 없는 표정이 나온다. 김진우 하면 빼놓을 수 없는 것 중 하나가 미소였다. 늘 친절하고 상냥한 진우는 간혹 보면 정말로 미소밖에 지을 줄 모르는 사람같았다. 누군가에게 기분 나쁜 말을 들어도, 귀찮은 일을 떠맡아도 한결같이 그저 웃기만 할 뿐이었다. 하지만 섹스할 때의 진우는 누구보다 제 감각에 충실했다. 찡그린 얼굴, 흥분에 들뜬 얼굴, 간지럽다며 까르르 웃는 얼굴. 민호는 그런 순간이 좋았다. 남들은 보지 못하는 김진우의 표정을 자신만 볼 수 있다는 것이.

진우의 다양한 표정을 보다보니 민호는 정말로 즐거워서 웃는 진우의 웃음과 그 외의 웃음이 미묘하게 다르단 것도 눈치 챌 정도가 되었다. 그 차이가 너무나도 미묘하여 어렴풋이 짐작만 할 뿐이지만, 분명히 존재하는 간극. 그리고 방금 제 질문에 답을 하며 보인 미소는, 아무래도 거짓같았다. 김진우는 자신에게 거짓말을 하고 있었다.

 

 

 

 

 

 

 

 

 

4.

 

사실 민호는 여자친구가 있었다. 진우와의 미묘한 관계에도 불구하고 함부로 진우에게 다가가지 못하는 이유가 거기 있었다. 새내기 오리엔테이션에서 만나 여자 쪽에서 먼저 고백해서 사귀게 된 케이스였다. 딱히 헤어질 이유는 없었다. 진우와 섹파 비슷한 관계가 된 후에도 민호는 여자친구와 헤어지지 않았다. 어쨌든 진우랑 하는건 연애라고 하기엔 어색했고, 혜진과의 관계는 과에서부터 널리 알려져 있었으니까.

 

 

 

 

 

"무슨 생각 해?"

 

 

 

 

 

혜진은 눈치가 빨랐다. 자신이 딴 생각을 하고 있으면 귀신같이 알아챘다. 카페에 앉아 멍하니 창 밖을 바라보던 민호는 퍼뜩 정신을 차리고는 '어어, 그냥 피곤해서.' 말을 얼버무렸다. 차마 진우를 생각했다고는 말할 수 없었다. 혜진은 의심스러운 눈초리를 보냈지만 별다른 추궁 없이 이내 대화 주제를 다른 곳으로 돌렸다.

진우에게 그 질문을 한 이후, 민호는 부쩍 진우와 자신의 관계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친한 형동생 사이. 그런 단순한 사이가 아니었다. 아니, 정확히는 단순한 형동생 사이로 남고 싶지 않았다. 제 안에서 서서히 커져가던 이름 모를 감정이 점차 구체적인 형태로 자리잡고 있었다.

 

 

 

 

 

"혜진아."

 

"?"

 

"너 나 좋아해?"

 

 

 

 

 

한창 다가올 기념일 이야기를 하던 혜진은 뜬금없이 던져진 질문에 푸흐흐, 웃었다. 그 웃음소리에 다른 얼굴이 겹쳤다. 남들에게 상냥한 얼굴로 짓는 미소가 아닌, 진심으로 즐거울 때 나오는 웃음소리. 민호의 가슴이 점점 죄책감으로 무겁게 짓눌렸다.

 

 

 

 

 

"그럼. 좋아하지."

 

"...."

 

"너는?"

 

 

 

 

 

혜진은 짓궂은 웃음을 지으며 민호를 쳐다보았다. 괜히 입 안이 마르는 느낌이 들었다.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답을 하려 입을 떼려던 순간,

 

 

 

 

 

지이이잉-

 

 

 

 

 

테이블 위에 놓인 민호의 핸드폰이 무겁게 울렸다.

 

 

 

 

 

[민호야]

 

[나 아파]

 

 

 

 

 

민호는 벌떡 몸을 일으켰다. 혜진이 놀란 눈을 하고 민호를 쳐다보았다.

 

 

 

 

 

"미안, 갑자기 급한 일이 생겨서. 먼저 가봐야 할 것 같아."

 

 

 

 

 

대답을 듣지도 않고 민호는 카페를 빠져나왔다. , 전화버튼을 누르자 얼마 지나지 않아 상대방이 전화를 받았다.

 

 

 

 

 

", 어디예요?"

 

 

 

 

 

 

 

 

 

 

 

동아리 방 문을 벌컥 열자 소파에 진우가 앉아있는 게 바로 눈에 들어왔다. 빠른 걸음으로 진우에게 다가간 민호는 당장 무릎을 확인했다.

 

 

 

 

 

"많이 다친 거예요?"

 

"계단에서 넘어졌어."

 

 

 

 

 

빨갛게 맺힌 핏자국과 더러운 흙이 여기저기 묻어있는 무릎. 민호는 진우의 앞에 무릎을 꿇고 앉아 오는 길에 급하게 산 연고와 반창고를 꺼냈다. 제 마음도 몰라주는 사람 때문에 여자친구도 팽개치고 달려오고, 뭐가 예쁘다고 약도 사오는지. 바보같은 자신이 원망스러웠다. 하지만 그와는 별개로 진우의 무릎을 다루는 손길은 조심스럽기 그지없었다. 상처 주변에 묻은 먼지를 살살 닦아내고, 꼼꼼히 연고를 바르고, 반창고를 붙이고.

 

 

 

 

 

"이제 됐죠?

 

 

 

 

 

부러 퉁명스럽게 말을 하며 몸을 일으켰다. 진우는 그런 민호를 올려다보더니 헤헤, 미소를 지었다.

 

 

 

 

 

"고마워."

 

"그럼 저는 그만,"

 

"근데 나 무릎 아직 아픈데. 정류장까지만 데려다주면 안돼?"

 

 

 

 

 

... 결국 또 져버렸다. 도무지 저 미소 앞에서는 당해낼 수가 없었다. 그게 설령 진짜가 아니라 할지라도. 팔짱을 끼고 정문으로 내려가는 길에 진우는 흥얼흥얼 노래를 불렀다.

 

 

 

 

 

"진짜 아픈 거 맞아?"

 

". 나 진짜 아파."

 

 

 

 

 

괜히 입술을 삐죽 내밀며 더욱 몸을 붙여오는 진우 때문에 민호는 또 다시 크게 한숨을 쉬었다. 김진우도 문제지만, 확실히 자신도 문제였다.

 

 

 

 

 

 

 

 

 

5.

 

승훈이 형, 혹시 진우 형 못봤어요?”

 

 

 

 

 

민호는 막 수업을 끝나고 강의실을 나서던 승훈을 붙잡았다. 오늘 아침, 같이 듣는 교양 수업에 나오지 않았던 진우가 오후 네 시가 넘어가는 지금까지 연락이 되지 않았다. 이렇게까지나 연락이 안 된 것은 처음이었다. 평소에는 늦어도 두어 시간 안에 꼬박꼬박 답장을 해왔는데. 전화를 몇 통이나 해보고, 카톡도 보내봤지만 진우는 묵묵부답이었다.

 

 

 

 

 

진우? 진우 오늘 아프다던데?”

 

 

 

 

 

그래서 오늘 팀플도 빠졌어. 덤덤하게 진우의 소식을 전하는 승훈에게 짧게 감사의 표시를 한 민호는 곧장 진우의 집으로 향했다. 서로 묘한 관계가 된 이후로 몇 번 가본 적이 있었기 때문에 찾아가는 길은 익숙했다. 괜히 가는 길 내내 입술을 씹었다. 진우는 아직도 연락이 없었다.

 

 

 

띵동-

 

 

 

생각보다 문은 금방 열렸다. 빼꼼 열린 틈으로 딱 봐도 하얗게 질린 진우의 얼굴이 보였다. 미처 진우가 말을 꺼내기도 전에 민호는 문을 활짝 열고 안으로 성큼성큼 들어왔다.

 

 

 

 

 

아프다면서요? 죽 좀 사왔어요.”

 

누가 말해줬어?”

 

승훈이 형이요.”

 

 

 

 

 

현관이었지만 아랑곳 않고 땀으로 살짝 젖은 앞머리를 젖히고 이마를 짚었다. 뜨거운 열기가 전해졌다. 말릴 기운도 없는 듯 진우는 민호의 손길을 받아내고는 이내 좁은 방 한 켠에 놓인 침대로 터덜터덜 돌아갔다. , 작은 동작에도 앓는 소리를 내며 눕는 등이 부쩍 야위어 보였다. 평소에는 갖은 핑계로 잘만 불러내더니, 정작 이렇게나 아플 때는 아무도 부르지 않고 혼자 청승맞게 구는 꼴이라니.

 

 

 

 

 

왜 연락 안 받았어요.”

 

아침에 승훈이한테 연락하고 내내 잤어.”

 

뭐 좀 먹긴 했어요?”

 

 

 

 

 

왜 자신에게 연락하지 않았냐는 서운한 마음은 핼쓱한 얼굴에 대고 차마 말할 수는 없었다. 진우는 힘없이 고개를 젓는다. 민호는 그럴 줄 알았다는 듯 포장해온 죽을 주섬주섬 꺼냈다. 민호의 움직임을 따라가던 진우는 천천히 누워있던 몸을 일으켰다. 함께 포장된 반찬까지 준비해 진우의 입으로 들이미는 민호의 입에서 참다못한 잔소리가 튀어나왔다.

 

 

 

 

 

사람 좀 부르던지. 제대로 챙겨 먹지도 않으면서.”

 

뭐하러. 딱히 부를 만한 사람도 없는데.”

 

 

 

 

 

나 있잖아요. 이 말 또한 꾹 삼켰다. 죽을 호호, 불고는 진우의 앞에 내밀자 한숨을 푹 쉬더니 얌전히 입을 벌렸다. 한동안 둘 사이에는 아무 말도 오가지 않았다. 묵묵히 민호가 죽을 떠다 식혀주면 진우가 그걸 받아먹는 단순한 움직임이 반복되었다. 그래도 곧잘 먹는 진우를 보자 속상했던 민호의 마음도 풀려가는 것 같았다. 아기새같아. 기특한 마음에 진우의 머리를 쓰다듬어주고 싶어졌다.

 

가져온 죽과 약까지 다 먹이고서야 민호는 진우를 다시 눕혀주었다. 민호는 설거지와 뒷정리까지 마무리를 하고 나서 얌전히 눈을 감은 진우의 옆에 털썩 걸터앉았다. 촘촘한 속눈썹을 한 올 한 올 관찰하고 있는 와중에 진우의 입술이 작게 달싹였다.

 

 

 

 

 

손 많이 가게 해서 미안해.”

 

 

 

 

 

아프면 사람 맘이 약해진다더니, 평소에 저에게 하는 짓은 미안하단 얘기 안 했으면서 지금은 미안하단다. 피식, 짧은 웃음이 샜다. 민호는 대답 없이 이불 밖으로 삐져나온 진우의 손을 쥐었다. 손끝까지 화끈한 열기가 올라있었다. 엷은 미소를 띠며 진우가 장난스레 입을 열었다.

 

 

 

 

 

유혹하지 마. 나 아직 안 나았어.”

 

 

 

 

 

그러면서도 손에 닿는 서늘한 온기가 좋았던지 저의 이마에 민호의 손을 가져다댔다. 웃겨, 유혹은 누가 하는데. 민호는 진우의 머리를 천천히 쓸어넘겼다. 진우는 민호의 손길을 얌전히 받아내고 있었다. 빨갛게 물든 입술에서 색색, 가쁜 숨소리가 샜다.

 

 

 

 

 

,”

 

“....”

 

“... 우리 사귈래요?”

 

 

 

 

 

감겼던 눈이 살짝 뜨였다. 다음으로는 입에서 푸흐흐, 웃음이 터졌다. 침대 위에 아무렇게나 널브러진 손을 들어 올린 진우가 민호의 옆통수를 살살 쓰다듬었다.

 

 

 

 

 

아이구, 귀여워. 우리 민호.”

 

 

 

 

 

그게 끝이었다. 힘없이 팔을 떨구고 다시 눈을 감은 진우의 입에서는 평소에도 질리도록 보던 그 미소 외에 다른 반응은 나오지 않았다. 또 그 표정이었다. 처음 만났을 때 짓던 그 표정. 다른 사람들에게 늘 지어주는 그 사람 좋은 얼굴. 민호는 점점 더 그 미소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지금의 김진우는 어떤 식으로든 다른 얼굴을 해야 했다. 초조함에 절로 입술을 씹게 되었다. 한참이나 하하, 어색한 웃음을 흘리던 진우는 이내 몸을 틀어 민호를 등지고 돌아누워버렸다. 잠깐의 침묵. 표정을 알 수 없는 진우에게서 약간 갈라진 목소리가 나왔다.

 

 

 

 

 

몸이 이래서 바래다주진 못하겠네. 혼자 갈 수 있지?”

 

 

 

 

 

민호는 대답 대신 진우의 등에 고개를 끄덕이고 몸을 일으켰다. 갈게요, 짧은 인사를 건네는 민호를 진우는 끝끝내 돌아보지 않았다. - 집을 나선 민호는 일부러 문을 더 세게 닫았다. 혹시나 싶어 문 앞에서 잠깐 뜸을 들였지만 닫힌 문 뒤에서는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쿵쾅거리며 계단을 내려갔다. 기분이 나빴다. 하지만 무엇 때문에 나쁜지는 알 수 없었다. 섣부른 고백을 한 자신 때문인지, 그걸 가볍게만 받아넘긴 김진우 때문인지, 예쁜 입꼬리에 걸려있던 하염없이 부자연스러운 미소 때문인지, 민호는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6.

혜진과 헤어졌다. 어느 정도 예상했던 일이었다. 혜진이 먼저 이별을 통보했지만 굳이 그러지 않았더라도 끝날 관계였다. 진우에게 사귀자고 말 한 그 날부터 확신이 들었다. 더 이상 혜진과의 관계를 유지할 수가 없었다. 오히려 너무 늦게 끝낸 데 대한 후회가 들 정도였다. 자신과 아무 사이가 아니라는 진우의 말도 민호를 막을 수는 없었다.

 

이별을 맞이하고 돌아오는 길에 진우에게 전화를 걸었다. 무심한 통화음이 몇 번 흐른 후 전화를 받았다.

 

 

 

 

 

 

 

- 여보세요?

 

,”

 

- .

 

"몸은 좀 어때요?"

 

- 다 나았어. 몸살이었나 봐. 그 때는,

 

나 헤어지고 오는 길이에요.”

 

 

 

 

 

긴 정적이 흘렀다. 민호는 핸드폰 너머의 침묵이 길어지자 마음이 조마조마해졌다. 한참 만에 답이 돌아왔다.

 

 

 

 

 

- ... 너 어디야.

 

 

 

 

 

진우는 집 앞에서 자신을 기다리고 있었다. 뭔가를 결심한 듯 민호의 표정은 고요했다. 인기척에 뒤를 돌아본 진우는 빠른 걸음으로 민호에게 다가갔다.

 

 

 

 

 

"이게 뭐하는 짓이야."

 

 

 

 

 

진우의 입에서 튀어나온 첫마디에 민호의 단호한 표정이 흐트러졌다. 이는 제가 예상했던 반응이 아니었다. 걱정해주고, 그것도 아니라면 위로해줄 줄 알았는데. 평소의 그 태평한 김진우라면 그럴 법도 했다. 하지만 지금 진우는 전혀 웃고 있지 않았다.

 

 

 

 

"왜 헤어졌어?"

 

 

 

 

 

그러니까, 지금 김진우는,

 

 

 

 

 

 

"나 때문에 그랬어?"

 

 

 

 

 

화가 난 것 같았다.

 

 

 

 

 

"저번에 사귀자는 둥 이상한 소리하더니, 그거 때문이야?"

 

"..."

 

"너 대체 나한테 왜 이러는 거야?"

 

 

 

 

 

처음보는 진우의 화난 얼굴. 약간 상기된 낯빛과 찡그려진 미간. 평소엔 화도 안내는 사람이 자신에게 갑자기 이러는 이유가 뭘까, 민호는 약간 당황스러웠다. 하지만 그거랑은 별개로 다른 마음이 불쑥 솟아올랐다.

 

 

 

 

 

"형 화난 거 처음 보는 거 같아요."

 

 

 

 

 

솔직하게 할 말은 해야 했다. 엉뚱한 민호의 대꾸에 할 말이 턱 막힌 건 진우였다. 뒤늦게 자기가 무슨 말을 했는지 깨달은 진우는 입을 막았다. 자기도 모르게 너무 많은 것을 표현한 것 같았다. 송민호는 그런 진우의 마음을 아는지 얄궂은 미소를 지었다.

 

 

 

 

 

"왜 아무 말 안해요?"

 

"...."

 

". 그거 때문이에요. 저 형 좋아해요. 많이 사랑해요."

 

"...."

 

"형은... 어떤데요?"

 

"...."

 

“....”

 

 

 

 

 

한참동안 아무 말도 않고 움직이지도 않는 진우를 보더니 민호는 조금씩 진우에게 다가갔다. 진우의 시선은 민호에게서 떨어지지를 않았다. 코앞까지 다가간 민호는 진우의 머리를 폭 안았다. 얼떨결에 딸려온 진우의 머리가 민호의 가슴에 통 부딪혔다. 머리 위에서 민호의 목소리가 낮게 웅웅 들렸다.

 

 

 

 

 

"맘에도 없는 소리 하는 것 같아서 신경 쓰일 때 많았는데, 이렇게 화내는 거 보니까 솔직하고 좋네요."

 

 

 

 

 

이건 민호의 진심이었다. 누구라도 처음 봤을 진우의 화난 얼굴. 화를 낸다는 것 자체가 마음에 걸리긴 했지만 지금의 민호에게는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었다. 진우가 -어쩌면 처음으로- 누군가에게 솔직한 감정을 표현했다. 그것도 자신에게. 민호는 진우를 더 세게 끌어안았다. 나직한 민호의 말에 진우는 대꾸할 말을 잊었다. 밀어내지도 그렇다고 안아주지도 않아 어정쩡한 둘의 자세. 잠깐의 시간이 흐르고 민호는 천천히 진우에게서 몸을 떼어냈다. 송민호는 웃고 있었다.

 

 

 

 

 

"나는 헤어졌고, 다시 걔랑 사귈 생각 없어요. 그러니까 이제 형 마음만 말해줘요. 내가 원하는 답이면 더 좋겠지만, 그냥 형의 진심을 알고싶어요."

 

 

 

 

 

나랑 사귀기 싫으면 싫다고, 좋으면 좋다고 말해줘요. 싫다고 해도 괜찮아. 깨끗이 맘 접을게요 그러면. 다정한 목소리로 제 할 말을 마친 민호는 깔끔하게 뒤돌아섰다. 진우에게는 아마도 생각할 시간이 필요할 것이었다. 민호는 이제 보지 않아도 진우를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차마 지을 표정을 결정하지 못한 채 멀어지는 저를 바라보고 있겠지. 진우의 진심이 어떤지 아직은 본인도 알 수 없는 노릇이었지만, 그 결과가 어떠하든 딱 한 번이라도 들을 수 있었으면 했다. 김진우의 솔직한 마음을.

 

 

 

 

 

 

 

 

 

7.

 

 

 

 

 

 

 

진우의 가장 첫 기억은 낡은 결혼사진을 쓰다듬는 아버지의 모습이었다. 아버지는 틈만 나면 너네 엄마는 참 웃는게 곱다. 그래서 내가 반했지.” 라고 말하곤 했다. 하지만 그런 아버지는 진우가 커갈수록 그 예쁜 미소를 가진 어머니에게 화를 내고, 아주 가끔 집안의 물건을 깨기도 했다. 자신과 닮은 어머니를 사랑했던 어린 진우는 그런 아버지의 행동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어머니의 미소가 좋다면서, 왜 어머니를 웃게 해주지 않는걸까. 실은 그 어머니의 미소가 아버지 외에도 다른 남자들을 위한 것이었다는 것은, 그래서 아버지가 그렇게 화를 냈다는 것은 진우가 조금 더 크고 나서 알게 된 일.

결국 부모님은 갈라섰다. 진우야, 오늘부터 새 아빠가 오실거야. 부드러운 손길과 미소를 가진 어머니가 말했다. 진우의 집에 찾아온 건 정확히는 새 아빠''이었다. 짧게는 몇 주, 길게는 몇 년 단위로 아빠들이 바뀌는 풍경은 어느 새 진우에게는 자연스러운 것이 되어있었다. 새 아빠들이 매번 처음 올 때 마다 어머니에게 하는 말, '사랑해, 희정아.' 굳이 듣지 않아도 그 말이 뻔하게 떠오를 무렵, 진우는 피식, 웃음을 흘렸다. 그 사랑이란 거, 참 별 거 아니구나. 제 어머니가 짓는 가벼운 웃음 하나로도 쉽게 얻을 수 있는 것.

하지만 인생을 살아가는 데 있어 기댈만한 온기가 필요할 때가 있었다. 진우는 그걸 위해 어머니를 닮은 자신의 미모를 이용했다. 놀랍도록 쉬웠다. 웃으며 몇 번 베푼 호의에 다들 마음을 쉽게 열었다. 그렇게 관심을 받고, 사랑을 독차지하고.

 

 

 

 

 

진우는 참 웃는게 예뻐.

잘 웃는 거 봐. 성격 좋을 거라니까.

나도 저렇게 웃으면 누구한테나 사랑받을 수 있을 듯.

 

 

 

 

 

애인을 사귀는 데 있어서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가벼운 관계가 좋았다. 자신의 어머니를 진심으로 사랑했던 한 남자는 결국 어머니와 이혼했고, 진우는 살면서 그토록 미련한 감정을, 그 때문에 짊어질 상처를 감당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진우는 늘 얼굴에 가면을 썼다.

 

 

 

 

 

민호에게도 평소와 다를 바 없이 접근한 것이었다. 어쨌거나 송민호는 잘생겼고, 첫눈에 한 번 꼬셔보고 싶을 만큼 매력적이었으니까. 의외로 순진한 구석이 있는 게 더 마음에 들기도 했다. 하지만 이번에도 시들해지겠지, 다른 사람들처럼. 여전히 큰 기대를 하지 않는 진우였다.

하지만 송민호는 조금 달랐다. 다정하고, 귀엽기도 했지만 자신에게 늘 진심인 모습이 계속 눈에 밟혔다. 애인 있는 사람은 이전에도 몇 번 만나보긴 했지만 민호같은 사람은 처음이었다. 민호를 만나기 전에 만났던 사람들, 그들이 저를 두고 원래 사귀던 사람에게 돌아가는 뒷모습에는 항상 진우의 쓴웃음만이 남았다. 결국, 그들이 진우에게 속삭이던 사랑의 깊이는 딱 그만큼이었다. 하지만 민호는,

 

 

 

 

 

"이번엔 또 왜요."

 

 

 

 

 

꾸준하게 진우에게 다가오고자 했다. 뻔히 보이는 자신의 핑계에도 늘 달려와주고, 말도 안되는 이유로 부리는 투정도 받아주는. 그 때부터였을까, 쓸모없다고 취급해 잊고 있던 감정들이 불현듯 진우의 마음 속에 튀어나오기 시작했다.

가끔 혜진에게서 연락이 오면 민호가 내색하지 않으려 해도 곤란해 하던 때도 있었다. 그 때 진우는 '그냥 헤어지면 안돼?'라고 묻고 싶은 충동이 들었다. 물론 실천에 옮기진 않았지만. 그런 생각이 들 때마다 스스로를 한 대 치고 싶어졌다. 상대방에게 뭘 요구한다는 건, 자신이 바라는 게 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진우가 바라는 건 몸 이상도, 이하도 되어서는 안 됐다. 딱 그 정도가 적당하다고, 지금까지 그렇게 여기며 살아왔는데.

 

 

 

 

 

"손 많이 가게 해서 미안해."

 

 

 

 

 

아프면 사람 마음이 약해진다더니, 딱 저를 두고 하는 말이었다. 저도 모르게 튀어나간 말이었다. 하지만 신세를 많이 진 건 사실이었다. 아플 때 누가 이렇게 자신을 챙겨준 적이 있었던가. 괜히 모르는 척 민호의 손길에 기대어 열기를 식히고 있었는데, 갑자기 들려온 고백에 진우의 마음이 철렁했다.

사실 진우의 마음이 철렁할 이유는 없었다. 지금까지도 숱하게 있어온 일이다. 저가 좋다는 남자들에게 진우는 '우리가 무슨 사이라도 돼?' 비웃어주고는 떠났다. 하지만 민호를 떠나고 싶진 않았다. 진우는 마음을 애써 진정시켰다. 어쨌든 신세를 졌으니 굳이 냉정해질 필요는 없다고, 그렇게 생각하며 애써 귀엽다는 말로 어영부영 무마시키려고 했다. 하지만, 송민호는 만만치 않았다.

 

 

 

 

 

- 나 헤어지고 오는 길이에요.

 

 

 

 

 

화를 낼 생각은 없었다. 차분하게 얘기하고, 돌려보내자. 나는 나대로, 너는 너대로. 민호를 불러낼 때까지만 해도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민호의 얼굴을 보자 울컥하는 감정이 치솟았다. 따지고 보면 다 민호 때문이었다. 요며칠간 계속 사귀자는 말 때문에 잠 이루지 못한 것도, 헤어졌다는 말에 묘한 희열로 두근거렸던 마음 한구석도. 자신을 이렇게까지나 흔들어놓는 것이 싫어서, 얼굴이 절로 찡그려졌다. 네가 뭔데 내 세상을 무너트려.

 

 

 

 

 

이렇게 화내는 거 보니까 솔직하고 좋네요.

 

 

 

 

 

끝끝내 송민호는 진우의 예측을 빗나가는 사람이었다. 민호가 그렇게 뒤돌아 가버리고 난 후 며칠간, 그 얼빠진 대답이 진우의 머릿속에서 계속 맴돌았다. 처음 듣는 말이었다. 정말 민호는, 이런 나를 좋아해줄 수 있는 걸까? 김진우 본인도 아직 다 알 수 없는, 예쁘고 잘 웃는 김진우가 아닌 다른 모습들을?

애초에 쓸데없는 기대라 치부해왔건만, 진우의 마음 한 구석에 움을 튼 감정은, 하루가 지날수록 점점 자라나기만 했다. 끝없이 스스로를 속여도 이미 감정이, 표정이 진우의 마음대로 되지 않았다. 결국, 이렇게 될 것이었나. 며칠을 어두운 방안에 누워있던 진우는 잠시 고민하다 이내 결심한 듯 핸드폰을 들었다.

 

 

 

 

 

[잠깐 만나.]

 

 

 

 

 

 

 

8.

 

 

 

 

 

 

 

자신의 답장만 기다리고 있던 것 마냥 민호는 튀어나왔다. 먼발치에서부터 뛰어오는 송민호의 모습에 진우의 입꼬리가 가늘게 떨렸다. 다시 한 번 확실하게 깨달았다. 이제는 자신도 더는 어찌할 수가 없다는 것을.

 

 

 

 

 

"하아, 하아, 왔어요."

 

 

 

 

 

자신이 연락한 뒤로 줄곧 뛰었는지 숨을 거칠게 쉬고 있었다. 하지만 무릎에 손을 얹어 숨을 고르는 와중에도 자신을 향해 지어보이는 개구쟁이같은 미소에,

 

 

 

 

 

"... 내가 생각을 해봤는데,"

 

 

 

 

 

진우도 조심스럽게 입을 열 용기가 생겼다. 민호는 숙였던 몸을 폈다. 자신을 향해 성큼성큼 다가오는 발걸음에 진우의 눈동자가 떨렸다. 차마 눈을 마주볼 용기는 없어서 시선이 자꾸 다른 데로 샜다.

 

 

 

 

 

"... 이런 거 진짜 처음이고,"

 

"...."

 

"그래서... 잘 못할지도 모르는데,"

 

"......"

 

"그래도, 말 해볼게."

 

 

 

 

 

진우는 크게 숨을 들이쉬었다. 두근거리는 가슴의 박동이 손끝까지 전해지는 것 같았다. 끝을 생각하지 않았다면 거짓말이다. 시작도 하기 전부터 자신은 겁을 먹고 있었지만, 그래도,

 

 

 

 

 

"........."

 

 

 

 

 

지금 말하지 않으면 다시는 기회가 오지 않을지도 몰랐다.

 

 

 

 

 

"? 잘 안 들려요, ."

 

 

 

 

 

벙긋거리는 입 모양을 이미 다 읽었으면서 시치미를 뗀다. 이미 민호의 얼굴에는 미소가 가득 번져가고 있었다. 진우는 민호를 밉지않게 흘기고는 일부러 목소리를 키웠다. 세 번은 못할 짓이었다.

 

 

 

 

 

"나도,"

 

"나도?"

 

 

 

 

 

그러니까, 지금이 아니면 다시는 기회가 없을지도 몰라서.

 

 

 

 

 

"좋아..,,"

 

 

 

 

 

겨우 뱉어낸 고백은 곧이어 다가온 키스에 막혀버렸다. 뒷머리를 부드럽게 받치며 더 깊게 혀를 섞는 움직임에 진우의 눈이 절로 감겼다. 어디다 둘 지 몰라 잠시 방황하던 손이 민호의 옷자락을 쥐었다. 한참동안 입술을 나누다 떨어진 민호의 얼굴이 너무 가까워 진우의 가슴이 더 빠르게 두근거렸다. 조막만한 얼굴에 꽉꽉 들어찬 행복이 보여 진우의 얼굴이 붉어졌다.

 

 

 

 

 

"고마워요."

 

"뭐가."

 

"나한테 솔직해줘서."

 

“....”

 

또 나 좋아해줘서.”

 

 

 

 

 

진우는 민망함에 민호의 품으로 고개를 푹 숙였다. 민호는 그런 진우를 온 마음으로 받아주었다. 연습해야 할 것들이 산더미였다. 이 벅찬 감정을 드러내는 것도, 고맙다고 표현하는 것도, 너를 좋아한다고 말하는 것도. 하지만 오랫동안 걸어 잠근 마음의 빗장을 열어버린 사람이 곁에 있어줄 것이기에 진우는 달라질 내일이 두렵지 않았다.



 

Written By. NYOTA (Twitter Account : @star_cluster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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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을 믿지않아 (Written by. 노크)
2018. 4. 26. 15:44

사랑을 믿지않아

 


w. 노크



*3월 월간송진 [내 남자친구의 결혼식]과 내용이 이어집니다
전편을 읽고 오시면 더 재미있는 건 안비밀♡
*4월 월간송진 주제 '거짓말'과 '취중진담'을 소재로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햇살 좋은 봄날, 아기자기한 북촌 골목길에 선 진우는 조금 초조한 손목시계를 내려다보았다 오랜만의 데이트에 긴장한 진우는 약속시간보다 15분이나 일찍 도착했다

진우는 뒤를 돌아 아직 문을 열지 않은 작은 액세서리 가게 유리창에 자신의 모습을 비추어보았다 흰 스웨터에 밝은 색 청바지 그리고 단화를 입은 진우는 못 매무새를 단정하게 다듬었다


"예뻐서요"


빈말인 줄은 알지만 자꾸만 예쁘다고 하는 민호의 말이 진우는 신경 쓰였다 민호의 앞에선 예쁘지 않으면 안 될 거 같은 의무감마저 들었다


"하아... 지금 나 뭐 하니.."


문득 진우는 자신의 행동이 어이가 없어졌다 시무룩하게 돌아선 진우는 힘없이 창가에 등을 기대었다

진우는 한 번 밖에 만난 적 없는, 누군지도 잘 모르는 남자와 데이트를 하기 위해 이곳에 나와있었다


"나한테 정말 고맙고 미안하면 오늘부터 나랑 데이트 10번만 해줄래요?"


첫 만남부터 도저히 예측이 불가능한 남자였다


"축의금 되돌려 받는 건 내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고.. 그렇다고 아까 그 돈 저한테도 절대 작은 돈은 아니에요"


민호라는 이름의 남자는 그날 처음 만난 진우의 옛 남자친구에게 거액을 돈을 축의금으로 건네었다


"오늘 처음 본 저한테.. 왜 그런 제안을 하시는 거예요?"
"예뻐서요"


"사기꾼인가.."


진우의 입에서 혼잣말이 무의식적으로 흘러나왔다


"와.. 사기꾼은 너무했다.."
"앗..!! 깜짝이야.."


머리맡에서 들려오는 낯선 남자의 목소리에 놀란 진우는 온몸을 화들짝 움츠렸다 진우는 안 그래도 큰 눈을 두 배로 크게 뜨고 고개를 들어 위를 올려다보았다


"진우 씨는 원래 잘 놀라는 편인가 봐요.. 나랑 만날 때마다 놀라네요..."


오늘도 반짝반짝 빛이 나는 민호의 얼굴을 진우는 멍하니 바라보았다 진우의 심장이 주인의 허락도 없이 마구 달리기 시작했다 심장아 정신 차려라 진우는 오른손으로 가슴팍을 꾹꾹 눌렀다


"하아... 민호 씨가 저를 만날 때마다 놀래키시는 거 같은데요.."
"하하하하... 그렇게도 해석할 수 있겠네요 점심 먹었어요?"
"아니요... 점심 먹자고 불러내고선.. 점심을 먹었냐니.."


만나자마자 햄스터처럼 놀라 파르르 떠는 모습을 보여준 것이 진우는 어쩐지 창피하게 느껴졌다 조금 뾰로통해진 진우가 작게 웅얼거리자 민호가 크게 웃음을 터트렸다


"진우 씨.. 진우 씨는 나를 웃게 만드는 거 알아요?"


민호가 다정한 미소를 지으며 민호의 얼굴을 진우에게 들이밀었다 갑자기 숨결이 닿을 만큼 가까이에 다가온 민호의 얼굴에 진우는 당황하기 시작했다 진우는 목덜미와 귀 끝이 뜨끈하게 달아오르는 것을 느꼈다


"민호 씨는 저를 항상 당황하게 하구요.."


진우는 얼굴이 더 달아오르기 전에 민호의 어깨를 손으로 꾸욱 밀어내며 새침하게 대답했다


"하하하하.."





*





작고 예쁜 레스토랑에서 맛있는 점심 식사
소재 끊어지지 않는 즐거운 대화
같은 취향의 영화관람
벚꽃나무 길을 따라 가벼운 산책
거의 대부분이 완벽한 첫 번째 데이트였다
하지만 단 하나 부족한 것이 있었다

진우는 아직 누군가와 새로운 만남을 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진우가 이런 자신의 솔직한 속마음을 언제쯤 고백해야 하나 망설이는 사이 어느새 첫 번째 데이트가 끝나고 있었다

진우의 이런 마음을 전혀 알지 못하는 민호는 진우와 1분이라도 더 함께 있고 싶었다 민호는 진우의 집 주소와 조금 멀리 떨어진 곳에 차를 주차를 했다 차에서 내린 둘은 진우의 집으로 향하는 골목길을 함께 걸었다


"진우 씨가 나보다 2살이 많다는 거예요?"
"네에 제가 민호 씨보다 형인 거죠.."
"쓰읍... 못 들은 걸로 할래요 좀 많이 허술한 게 형같이 느껴지지고 않구요  곧 좀 더 달콤한 호칭이 생길 테니까.."
" . . . "


민호의 달달한 말에 진우는 적절한 대답을 찾지 못했다 민망해진 진우는 양손 깍지를 끼고 커다란 눈동자만 이리저리 굴려대었다


"어.. 여기가 저희 집이에요.."


은은한 조명을 매달고 있는 강남의 고급 빌라 앞에서 진우는 발걸음을 멈춰 섰다


"진우 씨 가족들이랑 같이 살아요?"
"아니요.. 혼자..."
"여기에 혼자 살아요?! 진우 씨 부자였구나.. 여기 내 친구도 살아서 잘 알거든요..."


민호의 말에 진우는 갑자기 말문이 막혔다 진우는 이런 고급빌라에 혼자 살 만큼의 재력을 가지지 못 했다

한때 진우는 경태와 평생을 동반자로 살아가는 꿈을 꾸었다 그때 진우와 진태가 돈을 모아서 전세로 구한 집이었다 물론 진태의 돈의 비율이 훨씬 많았지만 말이다


"아.. 원래 친구랑.. 살았었는데.. 그 친구가.... 결혼을..."


말을 하면 할수록 진우는 민호에게 창피한 기분이 들었다 단 두 번의 만남으로 진우는 민호에게 자신이 가장 숨기고 싶어 하던 모든 치부를 다 들켜버린 기분이었다


"아.."
"거.. 걱정하지 마요.. 집을 내놨는데.. 워낙에 집 가격이 비싸서.. 잘 안 나가네요.. 전세금 나오면... 진태 씨한테 다시 돌려줄...... 하아.. 제가 민호 씨한테 왜 이런 변명을..."


허둥지둥 말을 이어가던 진우가 갑자기 입을 꾸욱 다물어버렸다 이럴 때 [운수 좋은 날]이라는 표현을 쓰는 걸까 진우는 하루 종일 좋았던 기분이 바닥까지 축 가라앉아 고요해지는 것을 느꼈다


"민호 씨.. 데려다줘서 고마워요... 이제 전 들어갈게요.."


진우가 기다란 속눈썹을 아래로 내리깔고 입술을 깨물었다 민호가 좋아하는 보조개가 꾹꾹 들어갔지만 그런 진우를 바라보는 민호는 하나도 기쁘지 않았다


"데이트의 마무리 대화가 좋지 않았네요.. 미안해요 괜한 걸 물어서.."
"아니에요.. 그냥 제가 찔려서 그런 거지.. 민호 씨가 무슨 잘못이에요"
"흐음.. 몇 층인지만 알려줘요.. 불 켜지는 것만 보고 들어갈게요.."


우울해진 진우는 '그럴 필요까지 없어요' 선을 그어버리려다가 참았다 하루 종일 진우를 즐겁게 해주기 위해 노력한 민호에게 그건 너무 못된 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진우는 뒤를 돌아 고개를 들어 진우의 집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저기에요 3층 오른쪽..... 어.. 근데 왜 불이 켜져.. 있지?"





*





띠-띠-띠-

현관문 비밀번호를 누르는 진우의 오른손이 떨리고 있었다 민호는 아무 말없이 진우의 왼손을 꼭 잡아주었다


"그냥 아침에 불 켜고 나온 걸 거예요.. 아니라도 내가 있는데 무슨 걱정이야.. 내가 이번 건강검진에서 신체나이 17세가 나온 남자거든요"


민호의 가벼운 농담에 진우가 그제야 겨우 희미한 웃음을 지어 보였다 진우는 다시 한 번 마음을 추스르고 현관 비밀번호를 다시 꾹꾹 눌렀다


띠리리-
철컥-


"어.. 진우야 늦었네.."
"....!!!..."


젖은 머리를 수건으로 말리며 샤워 가운만 입고 선 경태의 모습이 진우와 민호의 시야에 화살처럼 받혔다

아무도 없어야 할 빈집에 경태가 있다는 사실에 진우는 너무 놀라 다리에 힘이 풀어졌다 민호는 휘청이는 진우의 팔을 단단히 붙잡았다


"김진우..!! 너 여기가 어디라고 저 새끼를 끌고 들어와?!"


적반하장도 유분수란 말은 이런 상황에 쓰는 말이었다 경태의 고함소리에 진우의 심장이 불안하게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진우는 민호의 손을 동아줄마냥 꼭 붙잡고 덜덜덜 떨리는 눈꺼풀을 감아버렸다 한때나마 진심으로 사랑했던 태와 진우는 눈을 마주치고 할 말을 다 할 자신이 없었다


"그러는 경태 씨는 여기가 어디라고 들어와?!! 경태 씨 아내는 당신이 이러고 다니는 거 알아?!"
"그 여자 이야기를 왜 하는데.. 내가 진심으로 사랑하는 건 진우 너밖에 없다고 내가 몇 번을 말해!!"


뭐가 그리 억울한지 경태는 발을 동동 구르며 소리를 질렀다 진우는 그런 경태의 어이없는 말에 온몸에 피가 빠져나가는 듯한 무기력함이 느껴졌다


"그리고 내가 뭘 그렇게 잘못했는데? 내 돈 주고 계약한 내 집에 와서 좀 씻은 건데!!"
"그래.. 당신 집이지.. 그런데 이 집엔 당신과 헤어진 내가 살고 있어... 내가 이 집 나갈 때까지만 좀 기다려달라고 부탁했잖아..."


진우는 이런 기가 막힌 상황에서도 경태에게 무언가를 부탁해야 하는 자신의 상황이 비참했다 진우는 온몸이 녹아내려 이곳에서 사라지고 싶다는 생각뿐이었다


"김진우.. 너 솔직히 말해!! 이 새끼랑 나랑 양다리 걸친 거지.. 나랑 헤어지자마자 다른 남자가 생긴다는 게 말이 돼?!!!"


여전히 눈을 감은 진우의 몸이 사시나무처럼 떨리고 있었다
너무 화가 나서, 너무 억울해서, 너무 슬퍼서, 너무 비참해서
진우는 경태의 말에 어떻게 대답을 해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이런 황당한 광경을 바라보고만 있던 민호가 더 이상은 참지 못하겠다는 듯 진우를 자신을 향해 돌려세웠다
진우는 민호의 손길에 그제야 눈물이 그렁그렁 한 눈을 뜨고 민호를 바라보았다


"차 어디 주차했는지 기억하죠? 가 있어요 여기는 내가 처리할게.."


민호는 자신의 차 키를 진우의 떨리는 손에 쥐여주었다


"... 민호 씨..."
"괜찮아요.. 무서우면 차 문 꼭 잠그고 나 기다려요..."


민호는 차마 발길을 떨어트리지 못하는 진우를 집 밖으로 떠밀었다


"야!! 김진우!! 어디 가??!! 나 이야기 아직 안 끝났어!!"





*





똑똑똑-


조수석에서 무릎을 끌어안고 있던 진우는 차 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번쩍 고개를 들어 앞을 바라보았다


"문... 문 열어줘요.."


운전석 창문 유리 너머에서 민호가 문을 열어달라는 표시로 자동차 버튼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진우는 얼른 자동차의 문을 열어주었다


철컥-


자동차 문이 열리자 민호는 뒷문을 열어 캐리어를 하나 싣고 운전석에 앉았다

그런 분주한 민호의 얼굴을 뚫어져라 바라보는 진우의 동공이 파르르 떨리고 있었다 민호의 콧등에는 긁힌 듯한 상처가 나있었고 입술 끝이 터져 피가 흐른 흔적이 있었다


"민호 씨... 싸웠어요?"
"그냥 뭐.. 쓰레기 분리수거 좀 하고 왔죠.."


민호의 엉망이 된 얼굴을 바라보던 진우는 겨우겨우 참고 있던  눈물샘이 와르르 무너져내렸다


"정말.. 미안해요.. 나 때문에.. 흐윽.."


진우의 눈물에 오히려 당황한 민호는 차 안에 있던 티슈를 찾아 진우에게 건네었다


"진우 씨가 잘못 한 것도 없는데 왜 울어요.."
"내가 왜.. 잘못한 게 없어요... 흐윽.. 그런 놈을 사랑했고 그런 놈을 믿고 살림을 차렸고.. 그런 놈이 집으로 올 거라는 생각도 못 했고... 흐윽.. 진짜 김진우 최악이야..."
".. 울지 마요 진우 씨..."


등을 가볍게 토닥이는 민호의 위로에도 진우의 눈물은 한참이나 멈출 생각이 없었다 결국 민호는 오늘 한 번 더 진우는 놀래키기로 마음먹었다


"아.. 아야.. 입술이 너무 아파.. 아아아..."


민호의 커다란 목소리에 놀란 진우가 눈물이 그렁그렁 한 얼굴을 번쩍 들고 민호를 바라보았다


"흐윽.. 많이 다쳤어요..? 어떻게 해... 내가 약국 가서.. 연고 사 올 테니까.. 잠깐만 기다려요"


약국으로 당장이라도 달려갈 기세로 진우는 조수석 손잡이는 잡았다 민호는 그런 진우의 팔을 다급하게 붙잡았다


"어... 이제 눈물 그쳤다.. 나도 갑자기 안 아픈데요"


민호가 한껏 장난스러운 표정으로 어깨를 들썩였다 그런 민호를 빤히 바라보던 진우의 입에서 허탈한 헛웃음이 나왔다


".... 하.. 진짜.. 이런 상황에서.."
"어.. 웃었다 웃었어요.. 하하.. 그래요 웃어요..  아.. 그리고 나도 진우 씨 사과할 거 있어요..  서로서로 미안하니까 퉁치고 없던 일로 해요.. 내가 진우 씨 집을 허락 없이 뒤졌거든요.."
"네에..? 왜.."
"그 집으론 진우 씨 다시 안 보내요.. 나 부자라고 저번에 자랑한 거 같은데.. 우리 집에 빈방 많아요 그 집 나갈 때까지 우리 집에 와서 살아요 내가 진우 씨 속옷이랑 잠옷이랑 계절에 맞는 옷.. 그런 거 내가 아무렇게나 좀 챙겨왔어요 저기 뒤에 캐리어"


민호는 엄지손가락으로 뒷좌석에 놓인 캐리어를 가리켰다 아까는 너무 놀라서 몰랐는데 지금 다시 보니 민호가 들고 온 것을 진우의 자신의 캐리어였다

진우가 캐리어 가방을 바라보며 잠시 멍해졌다 그러고 보니 진우는 혹시나 진태가 다시 찾아오면 어쩌나.. 무서워서 집으로 들어갈 엄두가 나지 않았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민호의 집에 가는 것은 너무 민폐가 되는 것이 아닐까 진우는 생각이 들었다


"... 전 그냥 모텔 같은 데서.. 잠깐 머물면..."


진우의 말에 민호는 진우의 얼굴을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아니 매섭게 노려보았다


"김.진.우. 씨.."


갑자기 무서울 만큼 탁 가라앉아 으르렁대는 민호의 목소리에 진우는 주눅이 들어버렸다


"... 네.. 네에?"
"내가 진우 씨 좋아하는 거 알면서 왜 그래요.. 내가 미쳤다고 관심도 없는 사람한테 데이트 10번이나 하자고 조르는 한가한 놈 같아요?"


민호의 날카로운 말에 진우는 말문이 막혔다 그래.. 다 알면서도 진우는 민호의 마음을 모르는 척 밀어내고 있었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 그런 데서 절대 못 재워요.."


운전석에 앉은 민호는 몸을 오른쪽으로 숙여 진우의 얼굴로 천천히 다가왔다 키스를 하려는 것일까? 진우는 질끈 눈을 감았다


드르륵-
철컥-


안전벨트가 채워지는 느낌에 진우는 실눈을 뜨고 민호를 바라보았다


"뭘 기대한 거예요? 키스?? 키스해도 되는 거면 지금 하구요"


방금까지 진지하던 민호가 사라지고 평소처럼 장난기 가득해진 민호가 당황한 진우를 보고 싱긋 웃었다 진우는 얼마나 귀로 피가 몰렸는지 귓가에서 두근거리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자.. 다 빨개졌으면 출발할게요"


진우는 아무 말 없이 조수석의 창문을 내리고 창가에 얼굴을 내밀었다 차가운 밤공기이라도 얼굴에 닿아야 이 창피함을 얼굴에서 지워낼 수 있을 거 같았다






*






민호의 집에서 샤워를 마친 진우가 잠옷을 갈아입고 쭈뼛쭈뼛 거실로 걸어 나왔다

얼떨결에 민호의 집에 따라 들어오긴 했지만 그래도 감사 인사는 정식으로 해야 할 거 같았다


"... 저 민호 씨..."
"어.. 씻고 나왔네요 맥주 한 캔 할래요?"


거실의 테이블 앞에 앉아 먼저 맥주를 마시고 있던 민호가 진우에게 물었다 진우는 고개를 격하게 위아래로 끄덕였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곤란하던 차에 먼저 말을 걸어준 민호가 진우는 고맙기만 했다


"안 그래도.. 술 한잔하고 싶었어요"


오늘 하루 너무 많은 일을 겪은 진우는 맥주 한 잔 없이 도저히 잠이 들 수 없을 거 같은 기분이 들었다





*





어느새 맥주가 소주가 되고 소주가 양주가 되었다


"짜아안-"


기분이 좋아진 진우가 민호와 잔을 부딪치며 예쁜 보조개를 쏙 집어넣고 고개를 옆으로 살짝 기울였다 민호는 그런 진우의 잔망스러운 애교를 넋을 잃고 멍하니 구경했다

경계심 많고 소심하던 평소의 진우도 충분히 예뻤지만 술에 취해 방글방글 웃는 진우는 민호의 심장을 위험하게 만들 만큼 사랑스러웠다


"민호 씨이.. 민호 씨는 참!! 멋진 사람이에요.."


언제나 자신의 감정을 숨기는데 익숙한 진우는 술기운을 빌려 솔직한 자신의 심정을 먼저 털어놓기 시작했다


"하하하.. 고백인 거예요? 나 좀 두근거리는데..."
"아니요.. 미안해서요.. 나는 지금 아-무리 멋진 남자가 와도.. 마음의 문이 꽁꽁 닫혀있어요.. 그래서 미안해요.. 민호 씨랑 데이트를 10번을 하고 20번을 해도.. 내 마음은 닫혀있을 거예요..."


진우의 단호함 선 긋기에 민호의 얼굴에 미소가 사라졌다


"그 남자 때문이에요?"


민호의 질문에 진우는 크게 고개를 좌우로 저었다가 곧 위아래로 끄덕였다


"그 사람도.. 처음엔.. 민호 씨만큼 멋진 남자였어요.. 다정하게 웃어주고.. 나만 사랑한다고 해주고... 날 따뜻하게 안아줬어요..
하하.. 아이고.. 이야기하다 보니까 또 슬퍼져버렸네.."


진우는 남아있던 양주를 입안으로 모두 털어 넣어버렸다 독하디 독한 양주로 인해 일그러지는 진우의 얼굴을 민호가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내가 그 쓰레기 같은 놈이랑 같다는 거예요?"
"아니요.. 그건 아니에요.. 하지만 사람은.. 사랑은 다 변하는 거예요... 그 사람이 했던 수 많았던 달콤한 약속들.. 그땐 아마 진심이었겠죠.. 그런데.. 시간이 흐르고.. 사람도, 사랑도 변하고 모두 다 거짓말이 되어버렸어요... 그래서 나는 이제 사랑을 믿지 않아요..."


진우가 비어버린 자신의 양주잔에 독한 양주를 가득 따랐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민호가 진우의 양주잔을 빼앗아 들었다 민호는 진우의 잔에 가득 담긴 양주를 자신의 잔에 반을 덜어 담고 대신 얼음을 가득 채웠다

내일이 아무리 일요일이라지만 이렇게 독한 술을 스트레이트로 먹으면 진우의 속이 남아나지 않을 것이다


"사랑을 믿을지 말지는 ... 저랑 남은 데이트 9번 다 하고 다시 이야기해요.."
"... 민호 씨.. 나는 민호 씨에게 상처 주고 싶지 않아서 미리 이야기하는 거예요.. 민호 씨는 좋은 사람이니까.. 민호 씨는 나한테 그냥 계속 좋은 사람.. 다정한 친구로 남아주세요.. 사랑처럼 너무 쉽게 변해버리는 감정.. 그런 거로 나랑 엮이지 말아요.."


쿵-


말을 이어가며 휘청휘청 아슬아슬하게 흔들리던 진우 고개가 결국 테이블 위로 사뿐히 쓰러졌다

테이블 위에 얼굴을 박은 진우의 빨개진 목덜미와 살짝 벌어진 빨간 입술을 민호는 한참을 바라보았다


"난 진우 씨가 점점 더 좋아지는데... 어쩌죠?
그동안 진우 씨 앞에서 자신만만한 척했지만 데이트가 다 끝나고도 여전히 날 좋아해 주지 않으면.. 나 정말 상처받을 거 같은데..."


민호는 진우의 이리저리 사방으로 흐트러진 앞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민호는 잠이 든 진우의 예쁜 입술에 몰래 입을 맞추고 싶은 생각이 들었지만 이내 꾹 참아내었다

실연의 상처로 가슴이 난도질당한 진우에게 지금 필요한 것은 낯선 남자의 키스가 아니라 편안한 침대와 깊은 잠이라는 것을 민호는 잘 알았다

민호는 남아있는 양주를 입안에 털어 넣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민호는 테이블에 쓰러진 진우의 겨드랑이와 무릎 뒤로 팔을 넣어 진우를 가볍게 안아올렸다 진우가 잠에서 깨지 않도록 민호는 조심스러운 발걸음으로 진우의 침실로 향했다













* [내 남자친구의 결혼식]을 읽고 Tesory님께서 뒷이야기가 궁금하다는 댓글 남겨주셨요 ㅎㅎ 그러다 번뜩 떠오른 아이디어가 있습니다

한 달에 한 번 월간송진에서 주어지는 소재로 즉흥적으로 글을 이어 연재해보려고 합니다ㅎㅎ 5월엔 월간송진에서 무슨 주제가 나와서 이 둘이 어떤 방향으로 흘러갈지 저도 기대가 됩니다 재미있는 도전이 될 거 같아 두근두근하네요♡

*더 많은 송진 이야기를 읽고 싶으시면 네이버 블로그 [노크의 비밀일기]로 놀러오세요♡




Written By. 노크 (Twitter Account : @jinu_knoc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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